사람 목숨값 담보로 기업하기 참 좋은 나라


[김용균의 죽음 1주기] 생명안전보건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2019.12.10 10:25:42


오늘은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는 우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1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 노동자들인 '김용균들'의 노동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만들어진 중대재해 사업장 조사위원회들의 조사보고서들이 이행되지 않은 채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수는 2016년 2040명, 2017년 2209명, 2018년 2142명으로 매년 2000명을 넘고 있다. 매일 6명 내외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015년 통계에 따르면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이 0.4명으로 최저이고, 한국은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으로 최고다. 2017년 기준으로 1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한국은 1.19명으로 유럽연합의 5배, 네덜란드의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1994년 이후 통계가 제공되는 2016년까지 23년 동안 두 차례(2006, 2011년)만 터키에 1위를 내줬을 뿐 '산재 사망률 1위국'의 불명예를 벗은 적이 없다.

왜 우리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매일같이 이렇게 많이도 죽어가야 할까?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 과연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노동자들의 희생은 기업 운영을 위해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렇게 많은 죽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도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이렇게 태평한 것일까? 아니 이토록 뻔뻔한 것인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주는 노동자의 안전 및 건강을 유지‧증진하고 국가의 산업재해 예방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처럼 법은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과 건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기업에 출근한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일까. 

지난 10년간 산업재해 사고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0.5%,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 원에 그쳤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행정처분으로 부과한 과태료 수준 또한 평균 126만 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침해한 기업의 책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관대한지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해 납세의무와 고용창출 기회를 보다 많이 만들어낼 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는 것은 모두 비용으로 취급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효율로 포장되어 기업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결국, 이윤 극대화를 기업의 최고 가치로 숭상하는 사회에서는 안전을 위한 투자는 비용으로 취급되어 최소화되고 안전은 개별 노동자의 책임과 주의의무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취해온 견해다. 

이에 반해 기업은 사회적 존재 형식의 하나이므로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기업 내외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두루 고려하는 사회적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기업이 이해관계자 공동의 이익과 경제적 공생 관계를 추구할 때 사회에 가장 유용한 기여를 하고, 이를 통해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될 때 노동자 안전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업의 필수적인 의무이자 덕목이 된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 취해야 할 견해이자 방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업과 노동자의 인권, 기업 경영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부상해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는 일찍이 정부 정책 및 법제도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을 주요한 의제로 다루어왔다. 문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을 어떻게 추동해낼 것인지 여부이다. 이윤 추구를 일차적 목표로 하는 사업주로부터 자발적인 윤리적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경제적 요인을 통해 사회적 책임 경영을 선택하도록 법적‧제도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여 2008년 4월 6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이 법 시행 이후 기업이 안전주의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을 기업살인죄로 처벌하고 상한 없는 벌금을 물리도록 정하고 있다. 노동자 사망의 결과에 대해 기업의 연 매출액의 250%에 이르는 54억 6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액의 벌금 판결 때문에 기업이 파산할 수 있다고 하자 영국의 판사는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노력의 결과 영국은 산재 사망률이 우리의 20분의 1에 불과한 가장 안전한 국가로 정착했다.

노동자의 안전을 소홀히 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예상되는 형사처벌의 수위와 민사소송으로 지급해야 할 피해배상액의 규모가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기업은 사회적 책임 경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과 생명을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사회라면 사람의 목숨값을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사람의 목숨으로 지탱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올라선 지 오래다. 사람의 목숨값을 담보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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