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정치인이여, 이제 다음 세대를 키워라
386 정치 20년 명암
민주당 386 정치인(386은 3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의 준말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이제 50대가 되어 586이라 불러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386이라 적는다. - 편집자 주)들의 '5.18 술판' 논란이 뜨거워졌던 2000년 5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영춘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김 당선자는 그 글에서 "나무라십시오, 그러나 죽이지는 마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사망한다면,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현실로서 이 나라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정치권 내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변할 일각은 무너집니다"라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5.18 전야제에 참석하러 광주에 간 민주당 386 정치인들이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와 질타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때였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났고, 그때 술판에 있었던 정치인들 가운데 이제는 여러 명의 중진 정치인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나무람을 받고 생존했던 386 정치인들은 김 당선자가 보증 섰던 대로 국민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해온 것인가.
5.18 술판 사건 그후 20년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의 김민석 의원이 국회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4년 뒤 16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새로운 피 수혈' 경쟁에 적극 나섰고, 그때부터 2004년 17대 총선까지 거치면서 민주당에서 임종석·송영길·우상호·이인영·오영식, 한나라당에서 원희룡·김영춘·오세훈 등 많은 386후보들이 기성 정치인들을 꺾고 당선되어 국회로 들어가게 됐다.
386 정치인들의 국회 진출은 오랜 3김 정치 시대 속에서 지체되어있던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정치문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온갖 탄압을 받아가며 민주화와 진보적 운동에 앞장 섰던 세대가 제도 정치 한복판에 들어감과 아울러, 낡은 정치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갈 계기라는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학생운동 명망가들의 정계진출이라는 일부의 냉소도 있었지만, 20년 전 그들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기대주이고 희망일 수 있었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어갈 정치개혁의 선봉이 되어주기를 주문했다. '5.18 술판'에 대한 비판이 비등했던 것도 그만큼 컸던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섰기 때문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386 정치인들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86정치를 무조건 '주사파 운동권 정치세력'으로 매도하는 보수정치세력의 공격이야 그러려니 할 성질의 것이었지만, 386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질서 유지에 장식물 역할을 하는 순치된 정치세력일 뿐이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자신들을 향한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386 정치인들은 각자의 정치적 생존과 기회를 위해 기존 질서에 대한 충성의 태도를 보여줄 뿐 기대했던 쇄신의 반란을 시도하지 않았다. 2000년 무렵, 한 386 정치인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하는 사진은 그러한 386들의 충성서약 장면으로 받아들여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386 정치인들의 역할이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그들이 정치권에 진출했던 배경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386 정치인 대부분은 큰 선거를 앞둔 각 정당 지도부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 뿐, 그것이 정치의 주도권을 새로운 세대에게 넘겨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또한 그 시기가 정권교체를 이루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어지던 때였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해치는 수준의 독자적인 깃발을 들기 어려웠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20년의 세월이 흘러 386은 이제 586으로 불리고 있고 그들 자신이 권력이 되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배출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제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386 운동권 출신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386 정치인들의 절대 다수가 속한 당이 집권세력이 되었고 이들이 그 가운데서 핵심이 되었으니, 386 아니 586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정치의 주류가 되었다.
한국 정치사의 가장 독특한 집단, 386
386 정치 20년의 최대의 명(明)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살아남았다.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수혈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한 세대가 집단적으로 수혈되어 끝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386 세대가 처음이다. 이후 등장한 청년 정치인들의 명멸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짐작 가능하다. 이들이 이런 성공을 거둔 요인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현실 정치판에서 집단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정도를 넘어 자신의 생각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이 정치의 주류가 된 만큼 세상은 바뀌었는가.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제 역할을 다 했는가. 보수야당이 입에 달고 사는 정략적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집권세력의 주류가 된 386은 여러 한계를 드러낸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386 정치는 능력의 정치가 아니라 이념의 정치에 갇혀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촛불시민혁명을 거쳐 9년여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 아래서 386 출신 정치인들은 청와대와 여당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드러날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어려워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 교육 문제, 환경 문제, 중소기업살리기 문제 등에서 386 출신 정치인들은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에게 각인될만한 정책대안과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60대 중반의 이낙연, 박원순이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오늘, 386 출신 정치인들은 아무도 그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살아남았을 뿐이니 의미있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잘못은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젊은피 수혈'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면서 정작 다음 세대는 키우지 않은 것이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의 "386 세대의 마지막 정치적 임무는 새로운 세대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촉진자 역할"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대교체의 주역에서 세대교체의 걸림돌로
386 정치인들은 30대의 나이에 대거 정치권 진출을 한 이래 15~20년 가량의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386을 끝으로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집단적 정치권 진출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늘날 20~30대 청년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반짝 영입의 소재로 활용될 뿐 의미 있는 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0대 당선자 비중은 5.7%(2000년·16대) → 9.5%(2004년·17대) → 1.6%(2008년·18대) → 1.2%(2012년·19대) → 0.4%(2016년·20대)로 2004년 이후로 급감 추세를 보여왔다. 직전 선거인 2016년의 경우는 당선자 비율이 30대 0.4%, 40대 16.6%, 50대 55.3%, 60대 이상 27.7%를 차지해, 50대 이상의 비율이 무려 83%에 달하고 있다. 19~39세 유권자 비율은 35.6%였지만, 이들을 연령적으로 대표할 19~39세 당선인은 전체 의원 숫자의 1%에 불과했다.
청년정치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50대 이상 세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 국회가 되어버린 것은 386 세대가 워낙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20년 전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던 386이 이제는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가로막고 있는 두터운 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16대 총선을 1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총선 승리를 위해 젊은 세대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젊은피 수혈'에 나섰다. 그 덕분에 198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386들은 정치권의 영입 대상 1순위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그런 386이지만 자신들이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를 이제는 창고 속에 치워놓은 모습이다. 자신들을 끌어올려 주었던 큰 리더십의 수혜자인 386들은 자신이 받은 만큼 다음 세대들에게 베풀어주지 못하는 인색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20년의 세월 동안 시대는 크게 변했다. 386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목표 가운데 이루어진 것도 있고 요원해 보이는 것도 있다. 미완의 숙제가 있다 해서 자신들만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다른 발상과 접근법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보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국민의 실질적인 행복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 정치의 패러다임도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정치의 주체들이 교체되지 않으면 정치 패러다임은 바뀌기 어렵다. 이제 386 정치인들에게 남아있는 소명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후배 청년세대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일이다. 이제 한 시대의 문을 닫는 역할을 할 때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린다.
등록 2020.02.18 07:15 수정 2020.02.18 09:35
오늘의 뉴스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기상천외한 사건사고를 보면 이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자주 비관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비관을 발판 삼아 조금씩 진보해왔습니다. 때때로 퇴행을 반복했을지라도요. <오마이뉴스>가 '2000년 사건, 그후'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오늘은 비관하되, 내일을 낙관하려는 의지는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편집자말] |
▲ 2000년 5월 29일 김영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오마이뉴스> 기고. 그는 당시 '5.18 전야제 술판 사건'으로 비난에 직면한 민주당 386 정치인을 변호하면서 "나무라십시오, 그러나 죽이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 386 정치인(386은 3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의 준말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이제 50대가 되어 586이라 불러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386이라 적는다. - 편집자 주)들의 '5.18 술판' 논란이 뜨거워졌던 2000년 5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영춘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김 당선자는 그 글에서 "나무라십시오, 그러나 죽이지는 마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사망한다면,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현실로서 이 나라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정치권 내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변할 일각은 무너집니다"라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5.18 전야제에 참석하러 광주에 간 민주당 386 정치인들이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와 질타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때였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났고, 그때 술판에 있었던 정치인들 가운데 이제는 여러 명의 중진 정치인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나무람을 받고 생존했던 386 정치인들은 김 당선자가 보증 섰던 대로 국민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해온 것인가.
5.18 술판 사건 그후 20년
▲ 2005년 당시 임종석, 이인영, 우상호 의원 ⓒ 오마이뉴스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의 김민석 의원이 국회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4년 뒤 16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새로운 피 수혈' 경쟁에 적극 나섰고, 그때부터 2004년 17대 총선까지 거치면서 민주당에서 임종석·송영길·우상호·이인영·오영식, 한나라당에서 원희룡·김영춘·오세훈 등 많은 386후보들이 기성 정치인들을 꺾고 당선되어 국회로 들어가게 됐다.
386 정치인들의 국회 진출은 오랜 3김 정치 시대 속에서 지체되어있던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정치문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온갖 탄압을 받아가며 민주화와 진보적 운동에 앞장 섰던 세대가 제도 정치 한복판에 들어감과 아울러, 낡은 정치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갈 계기라는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학생운동 명망가들의 정계진출이라는 일부의 냉소도 있었지만, 20년 전 그들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기대주이고 희망일 수 있었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어갈 정치개혁의 선봉이 되어주기를 주문했다. '5.18 술판'에 대한 비판이 비등했던 것도 그만큼 컸던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섰기 때문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386 정치인들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86정치를 무조건 '주사파 운동권 정치세력'으로 매도하는 보수정치세력의 공격이야 그러려니 할 성질의 것이었지만, 386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질서 유지에 장식물 역할을 하는 순치된 정치세력일 뿐이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자신들을 향한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386 정치인들은 각자의 정치적 생존과 기회를 위해 기존 질서에 대한 충성의 태도를 보여줄 뿐 기대했던 쇄신의 반란을 시도하지 않았다. 2000년 무렵, 한 386 정치인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하는 사진은 그러한 386들의 충성서약 장면으로 받아들여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386 정치인들의 역할이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그들이 정치권에 진출했던 배경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386 정치인 대부분은 큰 선거를 앞둔 각 정당 지도부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 뿐, 그것이 정치의 주도권을 새로운 세대에게 넘겨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또한 그 시기가 정권교체를 이루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어지던 때였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해치는 수준의 독자적인 깃발을 들기 어려웠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20년의 세월이 흘러 386은 이제 586으로 불리고 있고 그들 자신이 권력이 되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배출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제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386 운동권 출신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386 정치인들의 절대 다수가 속한 당이 집권세력이 되었고 이들이 그 가운데서 핵심이 되었으니, 386 아니 586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정치의 주류가 되었다.
한국 정치사의 가장 독특한 집단, 386
▲ 지난 2003년 10월 30일 당시 국립 5.18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신계륜 전 의원과 안희정 전 지사와 그 외의 386 인사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386 정치 20년의 최대의 명(明)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살아남았다.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수혈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한 세대가 집단적으로 수혈되어 끝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386 세대가 처음이다. 이후 등장한 청년 정치인들의 명멸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짐작 가능하다. 이들이 이런 성공을 거둔 요인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현실 정치판에서 집단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정도를 넘어 자신의 생각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이 정치의 주류가 된 만큼 세상은 바뀌었는가.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제 역할을 다 했는가. 보수야당이 입에 달고 사는 정략적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집권세력의 주류가 된 386은 여러 한계를 드러낸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386 정치는 능력의 정치가 아니라 이념의 정치에 갇혀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촛불시민혁명을 거쳐 9년여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 아래서 386 출신 정치인들은 청와대와 여당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드러날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어려워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 교육 문제, 환경 문제, 중소기업살리기 문제 등에서 386 출신 정치인들은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에게 각인될만한 정책대안과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60대 중반의 이낙연, 박원순이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오늘, 386 출신 정치인들은 아무도 그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살아남았을 뿐이니 의미있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잘못은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젊은피 수혈'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면서 정작 다음 세대는 키우지 않은 것이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의 "386 세대의 마지막 정치적 임무는 새로운 세대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촉진자 역할"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대교체의 주역에서 세대교체의 걸림돌로
▲ 386세대 정치인들이 2009년 8월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공식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386 정치인들은 30대의 나이에 대거 정치권 진출을 한 이래 15~20년 가량의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386을 끝으로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집단적 정치권 진출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늘날 20~30대 청년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반짝 영입의 소재로 활용될 뿐 의미 있는 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0대 당선자 비중은 5.7%(2000년·16대) → 9.5%(2004년·17대) → 1.6%(2008년·18대) → 1.2%(2012년·19대) → 0.4%(2016년·20대)로 2004년 이후로 급감 추세를 보여왔다. 직전 선거인 2016년의 경우는 당선자 비율이 30대 0.4%, 40대 16.6%, 50대 55.3%, 60대 이상 27.7%를 차지해, 50대 이상의 비율이 무려 83%에 달하고 있다. 19~39세 유권자 비율은 35.6%였지만, 이들을 연령적으로 대표할 19~39세 당선인은 전체 의원 숫자의 1%에 불과했다.
청년정치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50대 이상 세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 국회가 되어버린 것은 386 세대가 워낙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20년 전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던 386이 이제는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가로막고 있는 두터운 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16대 총선을 1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총선 승리를 위해 젊은 세대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젊은피 수혈'에 나섰다. 그 덕분에 198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386들은 정치권의 영입 대상 1순위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그런 386이지만 자신들이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를 이제는 창고 속에 치워놓은 모습이다. 자신들을 끌어올려 주었던 큰 리더십의 수혜자인 386들은 자신이 받은 만큼 다음 세대들에게 베풀어주지 못하는 인색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20년의 세월 동안 시대는 크게 변했다. 386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목표 가운데 이루어진 것도 있고 요원해 보이는 것도 있다. 미완의 숙제가 있다 해서 자신들만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다른 발상과 접근법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보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국민의 실질적인 행복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 정치의 패러다임도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정치의 주체들이 교체되지 않으면 정치 패러다임은 바뀌기 어렵다. 이제 386 정치인들에게 남아있는 소명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후배 청년세대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일이다. 이제 한 시대의 문을 닫는 역할을 할 때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린다.
▲ 2018년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 연합뉴스
▲ 원내대책회의 주재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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