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으로 실패를 거듭했던 ‘통합신당’의 추억

정당으로 실패를 거듭했던 ‘통합신당’의 추억
임병도 | 2020-02-06 09:00:0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중도와 보수통합 신당을 추진하는 혁신통합추진위(이하 혁통위)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준비위원회’가 6일 발족합니다.
혁통위는 5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박형준 혁통위원장, 장기표 국민소리당 창당위원장과 함께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 이언주 대표를 공동대표로 확정했습니다.
원래 공동대표는 5명으로 새로운보수당도 한 명 포함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보수당에서 ‘통합신당’에 당 차원으로 참여할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해 공석이 됐습니다.
‘통합신당준비위원회’는 당명으로 ‘통합신당’, ‘대통합신당’, ‘대통합한국신당’ 등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 모든 당명에 ‘통합신당’이라는 명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3일 최고위원회에서 당명을 ‘통합신당’으로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중도와 보수를 통합하겠다며 내세운 ‘통합신당’,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정당명으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 17대 대선에서 참패
▲2007년 열린우리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여러 정치 세력이 합쳐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
2007년 8월 5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포함한 한나라당 탈당파와 일부 시민세력은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탈당파로 세가 약해진 열린우리당을 흡수하면서 의석수로는 한나라당을 뛰어넘는 원내 제1당이 됐습니다. 그러나 지지율은 여전히 10%대로 50%가 넘는 한나라당을 넘지 못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러 계파가 뭉쳤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했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정치 세력이 합친다고 무조건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가 됐습니다.
‘통합신당’, 창당 중에 국민의당과 통합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박주선 의원은 ‘통합신당’을 추진했고, 이후 국민의당과 통합했다.
‘통합신당’이라는 정당명을 가장 최근에 사용한 사람은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입니다.
박주선 의원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통합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을 추진했습니다. ‘통합신당’은 창당 준비 중에 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하고 박 의원은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됩니다.
통합이라는 명칭은 ‘중도통합민주당”, ‘ 대통합민주신당’, ‘중도개혁통합신당’, ‘통합신당’ 등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통합신당이 실패한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그저 뭉치는데 급급해 정당의 성격이나 방향성이 선명하지 못했고, 준비 과정 중에 잡음이나 불협화음이 계속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수명이 짧거나 자주 정당명이 바뀌는 것은 정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증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통합신당’이 성공할지 여부는 지금 단정하기 어렵지만, 단순히 통합을 내세운다고 국민이 무조건 지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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