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포스코와 싸워 이긴 30년 하청노동자의 눈물
[대우조선 파업 이후 ③-1] 포스코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최종 승소한 양동운 전 지회장
▲ 포스코사내하청 노조를 30년간 이끈 양동운(62)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지난 7월 28일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11년만에 최종 승소했지만, 정년이 지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 |
ⓒ 김성욱 |
"오늘도 소송 문의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설명하고 노조 가입 원서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지난 16일 전남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에 있는 포스코 사내하청 노조 사무실. 양동운(62)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웃었다. 50평 남짓한 사무실은 노조 가입과 소송 참여를 문의하러 온 하청 노동자들로 북적였다. 선풍기 한 대 없는 방엔 A4용지로 된 소송 자료 더미가 벽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난 7월 28일, 양씨를 비롯한 하청 노동자 59명은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무려 11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이 포스코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라며 포스코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판결에 따르면 포스코는 그간 하청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 명령하며 사용해왔으면서 직고용이 아닌 도급 계약만 맺어 파견법을 위반했다. 자동차가 아닌 제철업계에서 불법 파견이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 이후 포스코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소송 참여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 사측의 탄압으로 한때 40명까지 졸아들었던 노조 조합원은 800명으로 늘었다. 포스코에는 광양·포항 제철소를 포함해 총 1만 84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원청 정규직(1만 7000여 명)보다 많다. 아직 정확한 규모가 알려지지 않은 2·3차 하청 노동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양씨는 스물 여덟이던 1987년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했다. 공장 11미터 높이에 달린 천정크레인 기사로 일했다. 3조 3교대로, 한 달에 쉬는 날은 이틀뿐이었다. 명절도 없었다. 그렇게 일해도 하루 일당 6000원, 월급 20만 원대였다.
반면 당시 정규직은 4조 3교대, 한 달에 8일을 쉬고도 같은 연차 급여가 30만 원 대였다. 원·하청 노동자는 출퇴근복, 작업복, 안전모 색깔까지 모두 달랐다. 격차는 세월이 갈수록 벌어졌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20년차 포스코 하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연 5500만 원 정도로, 같은 연차 정규직 연봉(1억 3000만 원대)의 절반도 안 된다.
양씨는 1989년 스무명 동료들과 함께 포스코 사내하청 노조를 처음 세웠다. 포스코는 50년간 무노조 경영을 표방해왔다. 하청도 그에 발맞췄다. 사측은 버젓이 노조와해 문건을 만들다 발각됐고, 조합원이 지역 조폭에 의해 폭행을 당한 사건까지 있었다.
33년 동안 하청 노조를 지켜낸 양씨는 총 세 번(1998년, 2001년, 2015년) 해고됐다. 상황이 어려워 아무도 앞장서지 않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총 네 번(1990~1992년, 2001~2002년, 2011~2012년, 2014~2015년) 지회장을 맡았다. 2011년 5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것 역시 양씨를 포함한 15명이 처음이었다.
소송이 끝난 지금 양씨 머리는 하얗게 셌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온갖 부당한 처사를 겪는 걸 봐온 양씨의 둘째 딸은 어느덧 다 커서 노무사가 됐다. 양씨는 이제 지회장직을 내려놓고 노조 법률국장으로 소송 지원을 도맡고 있다.
11년 소송 끝 승리했는데... 정년 넘겨 정규직 전환 안 된 그들
▲ 노조 불모지였던 포스코에서 사내하청 노조를 30년간 이끈 양동운(62)전 지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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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양씨는 이번 승소 판결을 적용 받지 못한다. 소송이 11년이나 지연되는 사이 정년을 넘겨버린 것이다. 양씨는 2021년 12월 31일부로 정년을 맞았다. 대법원은 양씨 등 4명에 대해 정년이 지나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양씨는 연신 웃었다. "같이 노조 하느라 해고됐던 동지들이 길게는 15년이나 밖에서 노가다 판을 전전하고 다녔는데, 이번에 포스코 정규직 인사 명령 받고 사내 교육 받으러 복귀하는 걸 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 손뼉을 쳤다. 양씨 등 4명을 제외한 55명은 대법원 판결 당일 오후 포스코로부터 정규직 인사 발령을 받고 16일부터 포항 연수원에 입소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승소한 얘기를 하며 웃는 양씨에게 대법원 판결 때 가장 생각난 얼굴이 누구냐 물었다. "양우권 열사". 양씨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이지테크분회장이었던 고 양우권씨는 지난 2015년 5월 '단결 투쟁'이 적힌 빨간 노조 머리띠를 목에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양우권씨가 일했던 하청업체 이지테크에는 50여 명 조합원이 있었지만, 사측의 해고와 징계, 따돌림, 회유로 결국 모두 나가고 고인 혼자 남은 상황이었다. 노조 한다고 해고됐던 고인 역시 힘겹게 복직됐지만, 빈 책상에 앉아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받아야 했다.
고인은 결국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내다보이는 인근 야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하청 노조 조합원들을 향해 쓴 유서에서 "양동운 지회장을 위시하여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서 정규직화 소송, 해고자 문제 꼭 승리하십시오. 멀리서 하늘에서 연대하겠습니다"라는 유지를 남겼다.
양씨는 "이번 판결로 우권이의 유언을 이룬 것 같아 그 무엇보다 기쁘다"며 울었다. 양씨를 지난 16일 광양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포스코, 하청 노동자 없인 제품 단 하나도 생산 못한다"
▲ 16일 전남 광양 포스코사내하청 노조 사무실. 현재는 법률국장을 맡고 있는 양동운(오른쪽)전 지회장이 쇄도하는 소송 참여, 노조 가입 문의에 분주했다. 양 전 지회장은 지난 7월 28일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11년만에 최종 승소했지만, 정년이 지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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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8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소감은.
"진짜 너무 행복했다. 11년이나 걸렸지만, 저희들이 옳았다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아서. 제철소 다니는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 같아서.
사실 소송 준비하는 동안 정말 힘들었다. 저는 컴맹이었고 지금도 독수리 타법이다. 회사에서 노조 전임자를 인정해주지 않아 3교대 출근하면서 밤잠 줄여가며 노동조합 일을 봤다. 2근(오후 3시 ~ 밤 11시) 출근 하는 날이면 오전에 먼저 사무실 와서 소송 준비하고, 1근(오전 7시 ~ 오후 3시) 출근하는 날이면 그날 밤 순천 가는 10시 30분 막차 시간 전까지 노조 사무실에 남아 소송 준비를 했다. 그러고도 부족해 집에 가서 문서 작성을 했다. 컴퓨터가 한 대뿐이라 딸들과 많이도 싸웠다(웃음). 제 신념이 '엉덩이가 일을 한다'이다.
그렇게 컴퓨터도 못하는 하청 노동자들 힘으로 포스코 같은 거대 기업과 그를 대리하는 김앤장을 눌렀다. 돈은 없지만 남한테 고개 숙이지 않았고, 내 나름 열심히 살아온 삶이 인정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날 법정서 나올 때 재판관님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차별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정년이 넘어 직접 고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4명이 정년을 지나 결국 포스코 옷을 입어보지 못하게 됐다. 나, 채규향 동지, 김명국 동지, 윤영록 동지다. 김 동지는 2019년이 정년이었고, 나머지는 동갑이라 작년이 정년이었다. 모두 오랫동안 싸웠는데 아쉽다.
이미 2010년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 파견이라는 최병승 동지 대법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2011년 소송 시작할 때 6~7년 정도면 되겠지 하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포스코와 김앤장은 어떻게든 재판을 질질 끌려고 했다. 2심에서 여덟 번이나 선고가 밀렸고 대법원에서도 두 번 선고가 밀렸다. 우리를 고사시키겠다는 작전이었다. 당초 대법원 선고일도 작년 12월 30일이었다. 정년 맞기 하루 전날이었는데… 결국 해를 넘겨서 이렇게 됐다."
- 2011년 5월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는.
"하청 노동자 없이 포스코는 단 하나의 제품도 생산 못한다. 원료 하역부터 제품 출하까지 그 어떤 공정에서도 하청 노동자가 중단하면 생산이 중단된다. 예를 들어 만약 라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저희 같은 천정크레인 하청 노동자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구가 안 된다. 제철소에 있는 것들은 다 3톤 이상, 수십 톤에 이르는 중량물이다. 외부의 지게차나 큰 차들이 들어올 공간 자체가 없다. 천정크레인으로 들어내고, 다시 얹혀주는 과정이 필수다. 정규직들과 같이 일하고 그들의 지시를 받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게 30년 일했다.
제가 입사했을 땐 아침 조회도 같이 했다. 포스코 주임이 원하청 노동자를 한데 모아놓고 체조도 같이 시키고 훈시도 했다. 대기실도 함께 있어서 주임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수시로 지시했다. 이게 법 위반이라는 걸 알고 우리가 2004년에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에 불법 파견 진정을 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불법 파견 판결이 없었던 시절이다. 회사에서도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 그때부터 사무실과 대기실 사이에 칸막이를 쳤다. 직접 지시하는 대신 현장 반장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 파견 판결이 나왔다. 최병승 동지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소송자료 좀 보게 해달라고. 최 동지가 허락해줘서 3000페이지 넘는 서류를 받았다. 그걸 밤새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우리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히려 확보한 증거는 우리가 더 충실해 보였다. 현대차처럼 제조 라인에 하청 노동자와 정규직이 옆에 붙어있진 않았지만, 우린 공장 상부에서 천정크레인 운전을 하고 정규직들은 그 아래에 있었다."
- 이번 판결로 직접 고용 대상이 된 55명의 현 상황은.
"7월 28일 판결 당일 오후에 바로 포스코로부터 인사 명령을 받았다. 오늘(16일)부터 포스코 포항 연수원에 3개월 교육 일정으로 입소했다. 55명 중에 특히 해고 상태였던 동지가 8명이다. 2007년에 3명, 2010년에 3명, 2015년에 2명이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됐다. 모두 그간 포스코에서 일 못하고 밖에 나가 건설 현장 노가다를 전전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이 끝내 복직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걸 보니 정말 뛸 듯이 기쁘다. 행복하다."
- 이번에 승소한 노동자들이 주로 하던 업무는 무엇이었나.
"다 비슷하다. 천정크레인으로 작으면 3톤, 크면 35톤까지 가는 코일(정해진 두께에 따라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려진 상태의 철강 원재료)을 다음 공정으로 운반한다든지, 압연(회전하는 기계 사이에 쇠붙이를 넣어 다양한 종류의 철강 제품을 만드는 공정) 작업 중 발생한 불량 코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슬래브(쇳물을 가공해서 나온 널빤지 모양의 반제품)를 투입하고, 도금에 필요한 아연을 보급하는 등 필수적인 업무들을 했다.
모든 작업은 원청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모니터를 통한 실시간 작업 지시, 무전 지시, 수신호 지시, 그리고 MES(전자 생산관리시스템)까지 동원됐다. 대법원에서 MES가 원청 지시로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철소뿐만 아니라 MES가 보편화돼 있는 제조업 전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내하청 노동자만 1만 8400명... 정부, 사용자측 불법엔 왜 눈감나"
▲ 전남 광양 포스코사내하청 노조 사무실에 소송 자료가 쌓여있다. 지난7월 28일, 포스코사내하청 노조 조합원 59명은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무려 11년 만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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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숫자는 얼마나 되나.
"1차 사내하청이 98개 업체, 총 1만 8417명이다. 이 역시 소송을 통해 알게 된 숫자다. 포스코는 하청 업체 현황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2차, 3차 하청 업체들에 대한 정보는 노조도 갖고 있지 못하다. 조합원이 있는 2차 하청 업체가 아직 한군데밖에 없어서 그렇다. 2·3차 하청까지 합하면 포스코 하청 노동자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정규직은 1만 7000여명 정도다.
하청 노동자들, 지금 같은 여름이면 소금 먹어가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안 먹으면 쓰러지니까. 열연공장에서 조금만 일해도 등에 하얗게 소금꽃이 핀다. 1200℃ 넘는 빨간 쇠판이 계속 지나다니는데 얼마나 뜨겁겠나. 거기에 물을 쏴서 냉각하면서 압연을 하는데, 그러면 수증기가 생긴다. 습도가 높으니 온도는 더 오른다. 찜질방보다 뜨겁다.
그렇게 일해서 받는 돈은 정규직의 40% 선이다. 우리가 소송을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정규직들의 연봉 수준을 정확히 알게 됐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하청 조합원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못 믿어 했다. 저는 입사 30년이 되도록 연봉 5000만 원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년차 정규직들 연봉이 1억 3000만 원대였다. 성과급이 800%였다. 현금성 복지 포인트 100만 원도 있었다. 하청 노동자들은 성과급도, 복지 포인트도 없었다."
- 이번 판결 이후 어떤 변화가 있나.
"이번 판결은 포스코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법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현재 포스코는 오로지 판결문에 있는 55명에 대해서만 정규직 명령을 냈다. 그 55명이 속한 2개 하청 업체에 총 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조차 정규직 인사명령을 내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소송하지 않으면 정규직은 없다는 뜻이다. 포스코의 이런 태도를 본 하청 노동자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회사에 속았다는 거다. 노조 가입 문의도,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참여 신청도 크게 늘고 있다."
- 얼마나 늘었나.
"조합원은 1000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 참여 인원도 비슷하게 늘 것 같다. 지금이 8차 소송단 모집인데, 앞서 1~7차 소송단 인원이 총 808명이다. 8차까지 1800여 명이라면 포스코 1차 사내하청 전체 노동자의 10% 정도가 소송에 참여하게 된다. 이번에 판결이 난 노동자들은 1차(15명)·2차(44명) 소송단이었다."
-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개별 소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다른 하청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될 수 없다는 얘기다.
"집단소송제(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어서다. 이게 말이 되나. 분명히 포스코가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명 났는데, 노동자들은 개별 소송을 해야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게. 상식이 아니지 않나. 그럼 또 우리처럼 소송해서 11년 버티라는 건가. 그렇게 또 정년 지나고? 왜 정부와 검찰, 국가는 노동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선 엄단하면서, 사용자들의 불법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나.
포스코는 이 틈을 타 무슨 수를 써서든 하청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으로 가는 걸 막으려 한다. 급하게 하청 노동자 처우를 신경 쓰겠다고 회유하려 드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포스코가 최하 1500억원은 풀 거라고 본다. 하청 노동자들 임금 인상 해주고, 복지 포인트 100만 원에, 일시금으로 200만 원 부여한다는 얘기가 벌써 공공연히 나온다.
왜 그럴까? 그게 더 싸니까. 이번 소송에서 포스코가 낸 자료를 보면, 1만8417명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1년에 9640억 원이 들어간다고 논문까지 제출했더라. 매년 1조 원이라는 거다. 포스코가 지금껏 그만큼의 불법적인 이익을 취했다는 뜻이다. 그게 하청 노동자들이 빼앗겨온 가치다.
2016년 8월 2심에서 승소했을 때도 회사는 똑같은 태도였다. 2013년 1월 1심에서 패소했을 땐 콧방귀도 안 뀌더니, 우리가 이기자마자 갑자기 하청 노동자들에게 두 자리 숫자 퍼센트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다. 몇몇 하청 업체에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회사가 먼저 회유에 나선 것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소송을 접은 하청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래도 소송 참여 움직임이 이어지자 포스코는 하청사 상생협의회라는 걸 만들어 정규직에만 주어지던 자녀 학자금 지급까지 약속했다. 그러면서 소송을 진행하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선 학자금 지급을 제외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소송을 중간에 포기한 하청 노동자들도 꽤있었다. 당장 학자금들이 급하니까. 회사가 이렇게 치사하다. 노조는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요즘도 포스코는 지금 논의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 복지 포인트 100만원 신설에 대해서도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지급하지 않겠다고 여론전을 펴고 있더라.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가 좋아진 건 늘 하청 노조 덕이었는데, 정작 하청 노조 조합원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유감은 없다. 그러려고 노조 한 거니까."
[인터뷰②] "벼슬이 된 정규직... 노동운동, 원하청 분리 정책에 제대로 대응 못했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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