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하다 죽은 직원에 대한 사과가 그리 어려운 일일까
김진오 에어팰리스지부장이 지난 7월26일 열린 투쟁승리 결의대회에서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선진그룹의 사죄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에어팰리스지부 제공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경기도 김포시 선진그룹 인근 농성장에서 만난 김진오 에어팰리스지부장은 3개월 전 사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은 뒤로한 채 거리에서 투쟁 중이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사측의 당연한 사과를 요구하기 위한 싸움이다.
벌써 거리에 천막을 친 지도 90일째(23일 기준)다. 그의 수염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듯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농성장에 옹기종기 모인 에어팰리스지부 조합원들도 모두 3개월째 월급을 받지 않고 투쟁 중이다.
사고가 난 그날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힘겹게 노조를 만들고 두 번째 교섭이 예정됐던 날이었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일터를 꿈꿨을 그 무렵, 무전기 너머로 들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헬기가 추락했다. 산 한 가운데서 정신없이 119 구급대를 부르고,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통신이 불안정한 탓에 산비탈 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날, 그는 "처참했다"고 말했다.
당연히 고인이 일했던 에어팰리스와 에어팰리스를 설립한 선진그룹 측이 이후 필요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망연자실한 가족에게 곧장 찾아가 사고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진정한 사과를 하고, 위로를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고가 난 다음 날 밤 느즈막히 찾아온 회사 관계자는 대뜸 유족에게 '얼마를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빈소에 온 선진그룹 부회장은 '자신은 책임이 없는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말로 유족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았다. 14명의 에어팰리스 조합원 전원이 사과를 촉구하는 파업 투쟁에 나선 이유다.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고 나서야, 선진그룹 측은 사과받으려면 파업한 조합원들이 징계를 받고 이후 파업권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내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지만 사측은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기에 바빴다. 이같은 회사의 태도를 두고 노조 탄압이라는 말 외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장기기증으로 4명에게 새 삶을 선물해주고 떠난 30대 청년 노동자 고 박병일 정비사의 숭고한 희생이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가 일했던 회사의 잔인하고도 무책임한 대응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막막한 그의 동료들은 천막 농성에 이어 경기도 청원, 국회 국민동의청원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진그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게 참 쉽지 않더라"는, 답답함이 가득 묻어난 김 지부장의 목소리에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선진그룹. 이름은 생소하지만, 수도권에서 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탑승해 봤을 것이다. 김포에서 취재를 마친 뒤 서울로 이동할 때 탔던 버스 역시 선진그룹 계열사인 버스회사가 운영한 버스였다.
선진그룹은 주로 수도권 동북부·서부 등에서 시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소속 버스만 2천 대에 달하며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는 게 노조 측 설명이었다. 선진그룹은 주력으로 하는 버스 사업 외에도 고인이 일한 에어팰리스가 속한 항공기 사업부터 에너지 사업, 정비 및 부품사업까지 수십개의 법인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일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직원과 그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그 기업이 그리 작은 규모의 회사도 아니었다. 수많은 악덕 사업장을 봐왔을 노조 간부도 비교적 큰 규모의 회사 대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어이가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당연한 줄 알았던 그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한 투쟁이 어느덧 100일을 앞두고 있다. 7년 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딸에 이어 산재 사고로 하나 남은 아들마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경은 어떠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유족은 사고 이후 큰 충격을 받아 현재 치료를 받고 있지만 큰 차도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은 언제쯤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가늠할 순 없지만, 선진그룹의 사과가 그 첫 시작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선진그룹 신재호 회장의 진심어린 사과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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