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생존’, 운이 좋았을 뿐…서울은 ‘기후재난’ 취약 도시
등록 :2022-08-20 09:00
수정 :2022-08-20 09:44끝나지 않은 ‘기록적 폭우·폭염’
수해 대책 넘어선 역대급 폭우
지나간 자리엔 참담한 피해들
참사 겨우 면한 현장들도 여럿
폭우-폭염-가뭄 악순환 끊어야
큰비가 잇따라 내리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제주, 충남 부여 등에 하루 100㎜에서 최대 300㎜ 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앞선 8일 서울에 내린 폭우는 적잖은 충격을 줬다. 10명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치로, 지난 115년 사이 겪어보지 못한 폭우였다. 이날 서울에만 시간당 강우량 130㎜, 하루 360㎜가 쏟아졌다. 강남 한복판이 물에 잠기고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도시 곳곳에서 빗물에 취약한 지역이 드러났다. 서울시와 자치구의 치수 대책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도 구체적인 대책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문제는 강남구 한 곳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배수 처리 한계 넘는 폭우 잇따라
이번 비는 2010년 추석과 2011년 7월 폭우를 능가했다. 지금 서울의 치수, 즉 수해 방지 대책은 앞선 두차례 충격적인 비 피해를 겪으면서 마련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구조 개선에 한계가 있었음이 다시 드러났다. 실제 이번 비 피해를 통해 서울시의 강남구를 비롯한 자치구의 배수시설이 시간당 90㎜ 내외를 처리하도록 설계됐다는 게 확인됐다. 하지만 한반도 기후 현실은 이미 시간당 100㎜를 훌쩍 넘는 비가 내리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전국적으로 시간당 100㎜ 이상, 일일 강우량 300㎜ 이상 강우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은 세계적인 인구 밀집 도시다. 그래서 재해·재난이 발생하면 피해를 보는 시민들도 많다. 이번에 여실히 드러난 것은 서울이 큰비에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번 비를 뛰어넘는 비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매우 크다.
차량 수천대가 물에 잠기는 심각한 침수 피해 탓에 가려졌지만, 이번 폭우 때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산사태도 함께 찾아왔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참사로 이어질 뻔한 위험한 현장이 눈에 띈 것만 세 곳이나 있었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개웅산에서는 산 정상에 방치된 국가시설물의 진입도로가 무너져 내리면서 토사가 그 아래 아파트를 덮쳤다. 큰 참변으로 이어질 뻔했다. 사당동 극동아파트 축대 붕괴, 동작동 경문고등학교 산사태 등도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뻔한 위험천만했던 현장이다. 수도권인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 산사태에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산 정상 주변에서 무너진 토사가 마을을 덮쳤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가 없었을 따름이지,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해마다 반복될 수 있는 하루 3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때 주택가 인근 산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2011년 7월의 서울 우면산 산사태 참사와 2020년 8월의 곡성 산사태, 가평 산사태 등의 피해 기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수도권을 비롯하여 인구 밀집 지역 주변 산사태 위험 지역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2020년 가평에서 세 모녀가 산사태로 참변을 당했다.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까지 현장을 다녀갔지만, 분명한 재발 방지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경기도 가평, 양평, 남양주, 용인 등의 산자락에 위치한 전원주택, 식당, 카페 등의 시설에 대한 산사태 위험 점검과 안전진단 그리고 실효적인 조처들도 이어지지 않았다.
서울도 별다르지 않다. 북한산, 도봉산, 아차산, 관악산, 청계산, 구룡산, 대모산 등의 산자락에 밀집한 주택들의 산사태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수도권의 산지 인구 밀집 지역은 여전히 산사태 위험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행정안전부와 산림청의 관련 업무가 애매하게 나뉘고 있는데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 등으로 수해 방지 대책이 시급한 지역이란 사실을 알리기를 꺼리는 것도 대책 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해뿐만이 아니다. 예측하기 힘든 날씨가 한반도의 여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 수도권은 물난리인데 영남지방 곳곳은 가뭄이었다. 대구와 진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말라가는 농작물을 걱정할 정도다. 대구·경북에선 고추가 바짝 타들어가며 농민들의 시름이 이어졌다. 서부 경남의 진주에서는 ‘상추가 녹아내릴 정도’로 물이 부족했다. 진주시와 가까운 지리산 주 능선에는 폭우가 내렸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지리산국립공원의 주 능선 세석대피소의 자동기상관측장비에 450㎜ 강우량이 기록되었다. 지리산의 남쪽 진주, 하동 등은 비가 적어 농사를 걱정하고 있다. 불규칙하고 변덕스러우며 수시로 매우 공격적인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폭우와 가뭄 그리고 폭염 등이 교차하면서 기후위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날씨가 계속 ‘기록적’ 또는 ‘경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재난을 몰고 오고 있다.
‘경고음’에 본격 대응해야
전지구적 기후위기는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서 폭우로 150명 이상이 죽었다. 유럽에 충격을 준 폭우였다. 반면, 지금 유럽은 ‘열돔’이라 할 정도의 폭염에 난리다. 6월 인도의 폭염에 이어 유럽도 살인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건조로 인한 산불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탄소를 줄이는 감축의 노력과 재해·재난에 대비하는 적응 노력으로 집약된다. 건조와 가뭄, 폭우와 폭염 등은 시민들의 일상에 재난으로 다가온다. 봄부터 여름까지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구의 위기인 기후위기는 남극부터 북극까지, 적도 한가운데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삶에 영향을 준다.
기후위기가 전지구를 휩쓰는 상황에 한반도라고 예외일 리 없다. 올해 우리도 기후위기를 다시 한번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다. 연초부터 초유의 겨울 가뭄이 이어지면서 역사 이래에 가장 크고 많은 대형 산불이 이어졌다. 그리고 폭염과 폭우가 들이닥쳤다. 여름은 아열대로 변하고 있다. 장마는 당연하다는 듯 8월 중순을 넘기고 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예측하기 힘든 흉측할 정도의 강력한 기상 변화가 재해·재난으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적응은 이런 현실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현실적인 답을 찾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 모두가 마련해야 할 생존의 지침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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