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늘 푸른 소나무는 늘 변하는 소나무

 [우리말로 깨닫다] 늘 푸른 소나무는 늘 변하는 소나무

 조현용 교수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늘 푸른 나무라는 말은 한자어로 하면 상록수입니다. 심훈 선생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김민기 선생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상록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추억이 다를 것입니다. 상록수의 노래 가사와 힘든 역경을 이겨내는 장면들은 늘 감동적입니다. 늘 푸르고 싶다는 것, 거친 세상을 꿋꿋이 이겨내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은 처절한 아름다움입니다.

푸르다는 풀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말의 푸른색은 풀색인 셈입니다. 푸르다라는 말이 하늘이나 바다를 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푸름의 기본은 풀이나 나뭇잎의 색깔입니다. 많은 언어에서 풀색과 하늘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색깔의 구분도 중요한 문화의 특징인 셈입니다. 우리말에서도 구별하지 못하는 색이 많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언어보다 세밀하게 색을  구분해 내기도 합니다. 
   
푸름의 상징으로는 소나무를 들 수 있습니다. 보통 상록수라고 하면 소나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솔잎이 사철 푸르기에 생긴 상징일 겁니다. 애국가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소나무는 사군자 중의 하나가 아닌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보다 소나무를 더 좋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철 푸르게 우리와 늘 함께 있기 때문이겠죠.

늘 푸르다는 말을 우리는 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생각하고 칭송합니다. 잎이 나고 자라고 색이 변하고 낙엽이 되는 나무와는 달리 늘 푸르기에 지조라든가 정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산을 걷다가 소나무에 대한 설명을 보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 텐데 무감각하게 지나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늘 푸른 소나무의 비결을 설명해 놓은 글이었습니다.

소나무는 늘 잎이 떨어지고 다시 생겨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푸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죠. 한 번 생겨난 잎이 오랜 세월을 지켜나갈 수는 없겠죠. 늘 똑같은 잎으로 푸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상록수라는 말에서 같은 푸름, 변하지 않는 푸름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상록은 늘 같은 푸름이 아니고 늘 변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늘 푸른 소나무는 늘 변하는 소나무이고, 늘 새로운 소나무입니다. 저는 이 말을 쓰면서 가슴이 뜁니다. 달리 말하면 늘 새로워지는 나무가 상록수인 셈입니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어, 마침내 어제가 내일이 된 소나무입니다. 그래서 늘 푸른 소나무, 시시각각 새로운 소나무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늘 똑같기 때문이 아니라 늘 새롭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저는 걷는 일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답답한 마음을 떨치려 걸었는데 요즘에는 걷는 것 자체에 힘든 기쁨을 얻습니다. 몇 시간을 걷다보면 조금 전과 달라져 있는 스스로를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걸으면서 땀을 흘리고 물을 마시며 새로운 내가 됩니다. 나를 바꾸고 있는 시간인 셈입니다. 바뀜을 느끼는 고마운 순간인 셈입니다. 

제가 주로 걷는 숲에서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를 만납니다. 대관령과 안면도의 소나무 길도 참 좋습니다. 축령산의 잣나무 숲길은 위로와 치유를 선물합니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은 참 평화롭습니다. 늘 푸르기에 계절마다 느끼는 감정도 다릅니다. 고마운 감정입니다. 문득 늘 새로우려면 늘 덜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늘 푸르려면 집착을 버리고 날마다 새로운 일을 찾아서 앞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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