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습게 보는 트럼프, 돌 던지고픈 심정” 광화문서 타오른 시민 분노

 


대학생도, 노동자도 광장 나와 ‘NO 트럼프’…외국 관광객들도 주목

트럼프 위협 저지 공동행동이 18일 서울 광화문 서십자각터에서 'NO트럼프 범시민 대행진'을 열었다. ⓒ진보당

한바탕 가을비가 쏟아진 뒤 서늘한 기온이 감돌았던 주말 오후, 광화문광장 일대는 ‘NO 트럼프’ 분노로 뜨겁게 타올랐다. 새내기 대학생부터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 머리 희끗한 노년층까지 직업 불문, 세대 불문 공통된 외침이었다. 광화문 일대를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도 관심을 보이며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으로 구성된 ‘트럼프 위협 저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18일 서울 광화문 서십자각터에서 ‘NO트럼프 범시민 대행진’을 진행했다.

집회 시작 30여분 전부터 속속 자리를 채운 이들 중 눈에 띈 것은 삼삼오오 모여있던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상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미국의 요구를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강새봄(27) 씨는 “AI한테 3,500억 달러가 있으면 어떤 복지 정책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무상 교통을 몇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돈이고, 대학 등록금 전체를 무상화해도 몇 년 동안 할 수 있는 돈이고, 공공 주택을 지어도 몇 년간 지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더라. 이런 돈을 아무런 이유 없이 미국의 요구만으로 줘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당하고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강 씨는 열흘 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데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런 식으로 한국 입장을 우습게 아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오면 정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제학도인 성경헌(경희대학교 경제학과·24) 씨는 “미국의 요구는 경제학적 상식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당장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할 수 있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고, 이건 우리의 원화 가치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성 씨는 “경제학에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데, 자본주의의 선봉이라는 미국이 이 두 가지를 모두 무시하는 상황이니 저희 입장에서는 상식을 다시 세워야 하나 생각이 든다”며 “우리 정부에도 함부로 물러서지 말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주 시험을 앞둔 김지호 씨(경기대 정치외교학과·20)도 “미국은 우리나라를 단순히 돈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 같다”고 규탄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3,500억달러를 선불 지급하면 제2의 IMF가 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제가 아무리 시험을 잘 보더라도 우리나라 경제 상태가 멀쩡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나라 경제 조건을 지키고 더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를 향해서는 “미국의 경제 수탈 시도를 막아내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서 우리나라 경제주권을 지켜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8일 'NO트럼프 범시민 대행진'에 참여한 후 주한 미대사관 인근으로 행진하고 있다. ⓒ민주노총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이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생산을 늘리게 되면,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최근 미국에 맞서 국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범국민 투쟁에 나선 배경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날 집회 시작 전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케팅을 하고, 시민들에게 대미 투자 중단 요구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규탄 발언을 통해 “미국이 관세를 높이고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자국의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미국에 굴복하고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미국의 제조업 붕괴와 맞닿게 된다”며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우리 경제를 지탱했던 버팀목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수십,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 위원장은 “트럼프의 강요에 굴복한다면 단순히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훼손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흘 후 방문하는 트럼프에게 우리 민중의 목소리를,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잔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18일 'NO트럼프 범시민 대행진'에서 발언하고 있다. ⓒ진보당

국회에서 선명하게 대미 투자 중단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진보당은 이달을 ‘약탈적 미국투자 강요 거부 국민행동의 달’로 규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투쟁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청년진보당은 이날 집회를 앞두고 주한 미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투자 강요를 규탄하는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낼 항의서한을 작성했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지금 대미 투자 방식만을 논할 게 아니다. 3년 안에 내라는 거, 10년 동안 나눠서 내겠다고 하거나 통화 스와프로 우리나라에 조금 덜 위험하겠다고 하는 조삼모사식으로 대미 투자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APEC 정상회의까지 어떻게든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고 하는 속도전에 매우 큰 우려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는 분명히 요구한다. 국익이 우선이다. 우리의 주권이 우선”이라며 “여러분 함께 싸워달라. 함께 목소리 내달라. 대한민국 정부가 APEC이라고 하는 시한을 두지 않고 국민의 요구대로 당당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집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세종대로와 종각, 을지로입구를 거쳐 주한 미대사관 방면으로 행진했다. 이날 서울뿐 아니라 대전과 울산, 부산에서도 ‘NO트럼프’를 외치는 시민대행진이 진행됐다.

공동행동은 오는 21일 광화문 일대에서 각계 시국선언을 열고, 시국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내주 주말인 25일에도 서울 숭례문과 울산 등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관련 기사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