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식 복제한 중국 희토류 통제... 한국이 갈 길은 하나뿐

 [강명구의 뉴욕 직설] 한국 겨냥하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외교로 시간 벌고 공급망 다각화해야

25.10.16 06:51최종 업데이트 25.10.16 06:51

중국 장시성의 희토류 광산AP/연합뉴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했던가? 지난 9일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중 전략 경쟁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는 한국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미칠 파장이 엄청난 조치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 추가 관세와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를 예고했고, 미국 증시에서는 하루 만에 1100조 원이 넘는 시총이 증발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미국을 겨냥하지만, 실질적 피해는 한국·일본·대만 등 반도체 생산 국가를 향한다. 한국 증시는 이미 요동치고 있다.

한국 언론은 10월 31일~11월 1일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지에 주목한다. 결국 미중 타협 여부에 따라 12월 1일 예정된 중국의 수출 통제가 실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링 밖에서 미중 간 권투를 지켜보는 방관자여서는 안 된다. 링 안에서 직접 뛰어 해결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해당사국으로 적극 대처해야 한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즉흥적 보복이 아니다. 미국이 3년간 사용해 온 수출 통제 도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복사했다. 역외 적용, 임계치 설정, 사안별 심사 등 수출 통제 구조가 같다. 다만 미국이 기술로 한 것을, 중국은 소재로 바꿨을 뿐이다.

미국 편에 서면 너희를 친다

2022년 10월, 미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에서 명확한 기준선을 제시했다. 로직칩 14나노미터(nm) 이하,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장비·기술을 중국 기업에 수출할 경우 별도 허가를 받게 했고, 인공지능 학습·슈퍼컴퓨터용 고성능 칩의 수출을 제한했다.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늦추기 위한 조치였다.

2025년 10월 9일, 중국은 희토류 통제에서 사안별 심사 대상을 명시했다. 14nm 이하 로직칩 생산용, 256단 이상 메모리 생산용, 잠재적으로 군사 용도를 가진 인공지능 연구용 희토류가 대상이다.

논리는 대칭적이다. 미국이 중국의 14nm 개발을 막으면, 중국은 미국 동맹국의 14nm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를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갖고 있는 한국의 최첨단 생산 라인이 중국의 사안별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이 조치의 지정학적 의도는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한국이 희토류 공급난에 직면하면 산업계가 정부에 압박할 것이다. 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통제 완화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중국 압박을 줄이려면 미국과의 협력 수위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 반도체 수출도 중국 허가 받아라?

지난 7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4차 5개년 계획 기간 고품질 상업 발전 성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왕원타오(王文?) 중국 상무부장EPA/연합뉴스

2022년 미국은 역외 적용(extraterritorial application) 원칙을 도입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은 어디서 만들든 미국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ASML이 만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장비는 반도체 회로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새기는 기계인데, 7nm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도, TSMC도, 인텔도 ASML 장비 없이는 최첨단 칩을 못 만든다. 대체재가 없다. ASML이 독점이다.

문제는 이 장비 안에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레이저, 광학 렌즈, 제어 소프트웨어 등. 비중은 25%를 넘었다. 미국은 이것을 근거로 "ASML이 중국에 EUV를 팔려면 미국 허가를 받아라"고 명령했다.

네덜란드 회사가 네덜란드에서 만든 제품을 제3국에 파는데, 미국이 개입한 것이다. 네덜란드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하지만 미국은 밀어붙였다. ASML EUV를 막으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이 사실상 멈추기 때문이다. 단 한 회사, 단 한 장비를 통제함으로써 중국 반도체 굴기 전체를 봉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에서 같은 논리를 적용했다. 중국 희토류가 들어간 제품은 어디서 만들든 중국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만든 완제품에 중국산 희토류가 가치 기준으로 단 0.1%만 들어가도, 그 제품을 미국이나 유럽에 팔 때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의 스퍼터링 공정에서 중국산 이트륨 (희토류) 타깃을 쓸 확률이 높다. 이 타깃의 가치는 완제품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0.1% 기준에 걸린다. 이 반도체를 미국 애플에 납품할 때 중국 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준수선언서 제도도 도입했다. 미국의 준수 증명서(Compliance Certificate)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중국 기업이 희토류를 팔 때 중국산 함량과 재수출 허가 필요 여부를 명시한 문서를 발급한다. 이 문서는 공급망을 따라 계속 전달된다. 희토류 → 자석 → 전기차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에서 선언서가 따라붙고, 최종 수출 시 중국 허가가 필요하다. 한 번 중국산이 섞이면 글로벌 공급망 어디를 가든 꼬리표가 붙는다. 중국 정부가 직접 추적할 필요 없이, 기업들이 서류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감시망을 만든다.

이것은 한국 기업의 해외 수출 활동 자체를 중국이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모터에는 중국산 네오디뮴 자석이 들어간다. 이 차를 미국에 수출하려면 중국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다. 한국 회사가 한국에서 만든 한국 차인데도 말이다. 삼성이 베트남 공장에서 스마트폰을 만들면 진동모터에 중국산 희토류가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유럽에 팔려면 중국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중국 마음대로 허가한다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연합뉴스

미국 수출통제의 진짜 위력은 법적 처벌이 아니라 행정 불확실성에 있다. 허가 신청을 내도 6개월, 1년씩 결정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기준이 모호해서 같은 제품도 케이스마다 결과가 다르다. 국가안보 고려, 외교 정책 목표, 인권 상황 등 모든 것이 변수가 된다. 기업들은 실제 제재보다 허가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를 더 두려워한다. 납기를 지켜야 하는데 허가가 계류 중이면 고객이 떠난다. 차라리 아예 그 시장을 포기하거나 통제 품목 사용을 줄인다.

ASML은 EUV 장비의 대중 수출을 추진했지만, 2019년 이후 네덜란드 정부가 수출허가를 부여하지 않아 출하가 차단됐다. 이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이 작용한 정책적 비허가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장기간의 정책 불확실성과 허가 불부여 속에서 시장·투자 결정을 보수화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도 이 방식을 채택했다. 공고 어디에도 구체적 처벌 조항은 없다. 허가 거부, 목록 등재, 사안별 심사 같은 행정 수단만 언급된다. 이것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다. 사안별 심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뜻이다. 같은 제품도 기업에 따라 허가 기간이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상황, 기업의 과거 행적, 미중 관계, 한중 관계 등 모든 것이 변수다. 어느 기업은 일주일 만에 허가를 받고, 어느 기업은 석 달을 기다릴 수 있다. 어느 기업은 조건부 허가를 받고, 어느 기업은 거부 당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이 했던 대로 중국도 행정 허가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명확한 규칙과 예측 가능한 법 집행이 아니라, 모호한 기준과 재량적 허가로 상대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다.

외교로 시간 벌고 공급망 더 다각화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미국의 수출 통제를 복사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칭 보복을 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희토류가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번 희토류 수출 통제와 함께 추가규정도 발표했다. 초고순도 금속, 제련 기술, 자석 제조 설비 등 밸류체인 전체를 통제망에 넣고 있다. 다음은 배터리 소재일 수 있다. 중국은 리튬·니켈·코발트 정제의 약 70%를 장악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배터리기 업의 중국 소재 의존도가 높은 이유다. 그 다음은 의약품 원료, 태양광 폴리실리콘일 수 있다. 중국이 폴리실리콘의 85%를 생산한다. 중국의 공급망 무기화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미중 경쟁의 일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높은 대중 의존도를 갖고 있으면 언제고 중국의 공급망 차단 위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빨리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현재와 같은 80~90% 의존은 협상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미국이 대가 없이 보호해 주리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실제로 2017년 사드 배치 때 중국이 한한령을 발동했을 때도 미국은 실질적 도움을 주진 않았다.

당장 외교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경주 APEC에서 공급망 무기화 방지를 합의문에 올리고, 미국의 반도체 성숙 공정 통제 완화와 중국의 희토류 역외 적용 유예를 맞교환할 수 있도록 양자·다자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야 한다. 외교가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대체성을 확보할 시간을 줄 수는 있다. 그 시간 동안 호주·베트남·인도 등과 광물 동맹을 구축하고, 국내 재활용 라인을 상업화하며, 대체 소재 R&D 투자 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중국 의존도를 60~70% 수준으로 낮추면 중국이 압박해도 버틸 수 있다. 대체 공급망이 작동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고문 발효일은 12월 1일이다. 50일 남았다. 물론 미중 정상 간 타협으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는 실제 발효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국가는 늘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최소 10년 프로젝트'다. 쉬운 길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기다. 오늘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샌드위치'로 남을 것이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희토류 #반도체 #수출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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