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효녀'를 아십니까? 정은경 장관이 알아야 할 현실
[2025 공동리포트 - 국민제안위원회] 농어촌의 돌봄통합, 도시와는 다른 길을 찾자
의료계에는 '효자 MRI'(자기공명영상), '응급실 효녀'라는 은어가 있다. 연휴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이 오랜만에 본 부모의 쇠약해진 모습에 놀라 응급실로 달려오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매일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녀로서 지금 당장 무슨 검사를 해서라도 부모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의료진으로서는 모두가 쉬는 황금연휴에 밀려오는 환자, 보호자들이 그저 부담스럽고 피곤한 것도 인지상정이다.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입맛이 씁쓸해지는 은어를 써가며 이런 상황을 조롱하는 건 다소 징후적이다. 다급함 뒤에 놓여 있는 보호자의 죄책감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의료는 본질적으로 돌봄의 책무를 가진다. 이 '조롱'은 의료가 감당해야 할 돌봄의 성격과 범위를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때를 놓쳐 치료가 어려워지는 사정이 적지 않기에, 돌봄의 공백을 메우려는 정책은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도시에 사는 자녀가 명절에야 부모를 찾기 전에 누군가 먼저 문제를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식사량이 줄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진 어르신을 보며 '지금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나서는 이가 곁에 있었다면? 의사나 간호사가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가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때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끔 돕는 미래는 어떻게 가능할까.
돌봄통합지원법이 그리는 미래, 그리고 지역의 현실적 고민
이런 상상을 구체적으로 해보게 되는 이유는 새로운 정책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했다.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이 법은 일상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시설에 입원하는 대신,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는 청사진을 담고 있다. 누구라도 귀가 솔깃할 만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를 고심에 빠뜨리고 있다. 지역마다 사업 수행 여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끄는 통합돌봄정책위원회의 주된 걱정거리 역시 이 지역 격차 문제다. 관련 부처 고위직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범부처 협력을 다짐하지만 쉬이 협력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경기와 경남 부지사, 광주 북구청장, 충북 진천군수와 강원 춘천시장이 위원회에 참여하는 구성 자체가 지역별 편차와 현장의 목소리가 돌봄통합 사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돌봄통합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의 긴 목록 중 지역 간 격차가 가장 큰 영역은 단연코 의료다. 재택의료와 가정간호 등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형 의료서비스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도시 거주자들이 대부분이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재택의료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113개(49%)에 그친다. 가정간호를 제공하는 의료기관 역시 도시에 몰려 있고, 의료기관들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정간호 확대에 소극적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캐나다처럼 공공이 의료의 주축이었다면 상황은 좀 달랐을지 모른다. 20여 년 전 참여정부의 공약이 지켜져 의료의 30%를 공공이 책임지고 있다면 어땠을까? 인구가 줄고 산업이 쇠락한 지역에도 경찰서와 초등학교가 있듯 최소한의 공공의료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다면 많은 것이 다르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무망하게 만드는 것은 2025년 공공병상 비율이 5% 남짓이라는 아픈 현실이다.
한국에서 돌봄통합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의 손에 달려있다. 정부가 건강보험이나 복지바우처로 서비스 구매를 보조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엔 민간사업자가 발을 들일 리 없다. 방문진료 수가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다면, 촘촘하게 밀집해 사는 도시와 띄엄띄엄 떨어진 촌집들을 찾아가야 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수익성 차이는 명백하다. 여기에 가능하면 서울의 삶, 적어도 대도시를 선호하는 의료인들의 성향까지 보태면, 농어촌에서 재택의료가 잘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농어촌 일차의료의 마지막 보루,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정부는 모든 시군구에 재택의료센터를 한 개 이상 설치하겠다며 방법을 찾는 모양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시장 논리에 충실한 민간 의료는 움직일 리 없고, 공중보건의사가 농어촌 일차의료의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 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어촌 지자체들이 돌봄통합사업에서 의료를 아예 포기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남은 선택지는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가 거의 유일하다. 주로 농어촌 의료취약지에 자리한 이 기관들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생활기반시설이다. 보건지소에서는 공중보건의사가 일차진료를 제공하고, 보건진료소는 간호사 면허가 있는 진료전담공무원이 사전에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차진료를 맡는다.
안타깝게도 이들 기관의 역할은 강화는커녕 계속 축소되어 왔다. 공중보건의사 수는 가파르게 감소 중이고, 의료대란 시기에 현역 입대한 의대생이 많아 앞으로 더 줄어들 예정이다. 공중보건의사들이 첫해에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수련받고, 2~3년 차에는 의료취약지에서 지역의료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자는 제안도 나오지만,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의사가 되는 이들의 계급적 기반이 농어촌 의료취약지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집단으로 쏠리는 경향은 더 큰 장벽이다.
보건진료소의 상황 역시 여의치 않다. 전국 1900여 개 보건진료소에는 평균 경력 12년이 넘는 숙련된 보건진료소장들이 일하지만, 이용자는 줄고 기능은 약화하고 있다. 1인 근무 체제라 진료소를 비우고 교육받으러 가거나 환자 집 방문을 나가기도 어렵고, 의학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을 연수 기회도 부족하다. 1980~90년대부터 지역주민들과 호흡을 맞춰온 진료소장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신규 진료소장들의 역할은 예전 같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법적 근거를 갖춘 보건진료소의 역할을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농어촌의 돌봄통합, 도시와는 다른 길을 찾자
그럼에도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가능성을 다시 살피는 이유는 명확하다.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교통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늙어가는 의료취약지 주민들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길 원한다. 의사들이 도무지 가서 살고 일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지역에는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주민들이 있고, 이들이 바지런한 매일의 노동으로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기에 지역의 삶이 가능하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하는 건 농어촌 지역보건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다. 보건진료소를 고령화 시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보건을 고민하는 이들의 오래된 숙제다. 다만 지역보건기관의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과 기획을 추진해 낼 만한 정치적 동력과 의지가 부족했을 따름이다.
정부가 돌봄통합을 위한 노력을 약속한 지금, 낡은 편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농어촌의 주민들도 충분히 민간의료기관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말, 보건진료소 대신 응급이송체계를 개선하고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된다는 말은 농어촌의 사정에 대한 무지와 오만 위에 서 있다.
몇 년에 한 번 들어오는 대학병원의 의료봉사 버스, 몇 달에 한 번 들어오는 무료 검진 버스는 돌봄통합과 거의 관련이 없다. 농어촌에 필요한 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일차의료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을 돌보고, 퇴원한 환자의 콧줄과 소변줄을 집에 찾아와 돌봐줄, 역량 있는 의료인이 읍면 지역에도 있어야 한다.
의사가 방문해 재택의료를 제공한다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오지 않을 의사를 기다리다 의료를 포기하는 상황을 방치하고 조장해선 안 된다. 도시에 맞춰진 의료의 양식을 고수하는 대신, 농어촌의 사정과 주민들의 필요에 맞는 일차의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낡은 핍박과 편견을 넘어 농어촌 의료를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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