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북한' 러시아는 공개적, 중국은 암묵적 인정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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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안보

  • 입력 2025.10.21 19:40

  • 수정 2025.10.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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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회담 중국 발표에 '한반도 비핵화' 빠져

'핵보유국 북한' 인정한 러 따른다는 신호?

전문가 "중국, 비핵화에 새로운 공개적인 침묵"

한미, 미중 회담 때 '중국 진의' 확인될 듯

7~8년 전 한·미·일·중·러 북 비핵화 한목소리 격세지감

지난 10일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열병식이 성대히 거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2025.10.11 연합뉴스

"러시아는 이제 거의 이것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였다. 베이징 역시 그런 프로세스를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산하 아시아정책연구센터의 에번스 리비어 선임연구원은 20일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나'란 글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스탠스 변화를 이렇게 해석했다. 리비어는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차관보와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지낸 한반도와 중국 전문가로 통한다.

브루킹스 연구소 사이트에 실린 이 글에서 리비어는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을 계기로 9월 4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양자 회담 결과 발표문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가 제외된 점에 주목했다. 중국의 이런 모습은 같은 달 28일 최선희-왕이 외교장관 회담 발표문에서도 되풀이됐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리셉션 장에서 함께 서 있는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본경제신문 9월 3일

북중 회담 중국 발표에 '한반도 비핵화' 빠져

'핵보유국 북한' 인정한 러 따른다는 신호?

심지어 지난 7일 왕 부장은 한국의 조현 외교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조 장관은 "북·중 관계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실현에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했지만, 왕 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역내의 평화·안정"을 위한 중국 측의 노력을 설명했다.

이를 두고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재단의 이성현 선임연구원은 6일 '더인터프리터' 기고를 통해 "수년간 이 표현은 중국의 대북 외교에서 상투적으로 써왔다. 갑자기 없어진 건 단순한 사무적 실수나 일회성 예우도 아니다"라면서 "베이징에선 언어가 곧 정책이다. 한 달 안에 여러 문서에서 판에 박은 문구가 사라진 건 실수가 아닌 신호다"라고 풀이했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한 러시아의 뒤를 따르겠다는 신호란 얘기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은 지난달 25일 모스크바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종결된 사안"(closed issue)으로 본다고 말하고, 아태 지역에서의 한미일의 '핵 확장 억제'에 저항하는 북한 곁에 서 있겠다고 밝혔다. 북핵 이슈가 '종결'됐다는 표현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거의 수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2023년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 작년 3월 대북 제재 모니터링을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에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그리고 6월 평양 정상회담과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담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작년 10월 북한 전투부대의 쿠르스크 파병 등을 거치면서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예고됐다.

지난 14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조선로동당 만세'가 성황리에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2025.10.15 연합뉴스

"중국, 비핵화에 새로운 공개적 침묵"

러시아 걸어간 길에 이제 막 접어들어

러시아가 간 길로 중국이 이제 막 접어든 걸로 리비어와 이성현은 봤다. 리비어는 "비핵화에 대한 베이징의 새로운 공개적 침묵은 냉소적이고도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평양이 비핵화 대화의 여지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하며,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문을 닫으려는 상황에서 중국이 공개적 침묵을 택했기 때문이다"라며 "이를 부각하고자, 북한은 대화 재개를 원한다면 미국이 비핵화 이슈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동의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정은은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비핵화 포기를 전제로 한 북미대화 용의를 밝혔다. 그러면서 '핵 보유'가 북한 헌법에 명시된 점을 거론하고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 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에서 반파시즘 운동인 '안티파'(Antifa) 대책 회의 도중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말을 듣고 있다. 2025. 10. 08. [UPI=연합뉴스]

트럼프 방한 때 김정은과 '회동' 가능성

한미, 미중 회담 때 '중국 진의' 확인될 듯

이러한 맥락에서 리비어는 '중국이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는 주장에 고개를 흔든다. 그가 보기에, 가속화하는 북·러 간 군사협력이 역내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이를 "침묵한 채 방관"하는 건 중국이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비어는 "중국의 접근법은 비핵화보다 대북 관계를 우선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중국이 비핵화에 도움 될 거란 추정이나 기대를 할 수 있는 때는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성현도 "베이징은 이제 '핵을 가진 북한'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실질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렇게 최근 중국의 말과 행동이 바뀌는 중인 점에 비춰 중국이 러시아의 행로를 따라 '핵보유 북한'에 대한 정책까지도 바꿀 것인지다.

그래서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주를 찾을 때 김정은과의 회동 가능성도 제기하고, 그 이후 내년 초 베이징을 방문할 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가 아닌 '리스크 감소'에 초점 맞춘 북·미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리비어는 "평양이 핵보유국으로 남는 걸 사실상 용인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상황에서 북·미 대화의 초점은 △ 평양이 보유할 핵무기 규모 △ 추가 핵실험 여부 △ 미사일 전력 제한 여부 등에 맞춰질 걸로 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5.9.24 연합뉴스

한·미·일·중·러, 7~8년 전 한편

이젠 한·미·일 대 북·중·러 '3대 3'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일단'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한 △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 축소의 과정을 거쳐 △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전날 한미일 외교장관들은 뉴욕에서 3자 회담을 갖고 △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대북 제재 체제 유지,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 증가하는 북한-러시아 군사협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 3자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의 정기적 시행을 포함해 강력한 안보협력 증진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엇박자가 아닐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 방문일정을 마치고 19일 밤 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국제공항에 나와 푸틴을 환송했다. 2024.6.20 연합뉴스

한·미·일·중·러 5개국은 불과 7~8년 전만 해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한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북한은 수없이 유엔의 제재를 받았고 당시엔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동참했다. 당시 북한은 한·미·일·중·러와 '1 대 5' 구도로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의 '공개적', 중국의 '암묵적' 지지를 바탕으로 '3 대 3' 구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스탠스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는 시진핑 주석의 경주 방문이다. 이 기간에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각각 양자 회담을 갖고 최대 현안인 관세 협상과 경제협력뿐 아니라, 북핵 문제도 논의하면서 비핵화에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시 주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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