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손으로 버스 노선 결정한다...‘공공버스’ 공론화 시작

 


[사유와 민영에서 공유와 공영으로2] 막대한 재정 투입되지만 버스 업체 배만 불리고 있는 준공영제

  • 최지현 기자 cjh@vop.co.kr
    울산 울주군 율리공영차고지에 배차를 앞둔 시내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자료사진. ⓒ뉴시스

    내 집 앞 정류소에 멈추던 버스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학교나 일터까지 직행하던 버스가 사라지고 환승을 거듭해야 한다면? 10분을 기다리면 탈 수 있던 버스가 30분 넘게 기다려도 안 온다면? 이러한 답답한 현상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서울과 부산 등 인구가 밀집돼 있는 대도시가 아닌 준도시 또는 농어촌 주민들이 이로 인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버스는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이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민간 업체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한 탓에 '대중교통'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치권에서는 진보당이 앞장섰다. 진보당은 1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대토론회의 두 번째 세션으로 '모두를 위한 공공버스' 토론회를 개최했다. 좌장을 맡은 장진숙 진보당 정책위의장은 "시민의 발이 되어야 할 버스가 민간 업체의 배만 불리는 실체를 밝히고 진보정당이 급진적 대안을 내야 할 때"라며 "공공버스의 노선 소유권과 운영권 문제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막대한 재정 투입되지만 버스 업체 배만 불리는 준공영제

    2004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선 버스 준공영제를 운영하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는 민영제와 공영제의 중간 단계로, 민간 버스운수업체가 서비스를 공급하되, 노선 입찰제나 수입금 공동관리제, 재정 지원 등을 통해 버스 운영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한 제도다. 하지만 실제로는 준공영제도 민영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편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다. 버스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감축된 버스 운행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현재 버스 준공영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에 철도, 지하철, 버스 이용률이 줄어들었지만, 철도와 지하철은 회복세를 보인 반면 버스는 그 회복력이 상당히 낮다. 특히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이 심각하다"며 "사람들이 버스를 안 타니까 버스의 운행을 줄이고, 그러다보니 버스를 이용하는 게 불편해지니 또 버스를 타지 않아 버스가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민영화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버스 민간업체가 자신들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돈이 안 되면' 시민들의 불편과 공공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는 버스 민간업체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작 공적 권한의 개입은 취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지적된다. 

    우선 법과 제도에 구멍이 있다. 업무 범위와 기간을 제한하는 '한정 면허'가 아닌 일반 면허가 주어지면서 버스 민간업체는 사실상 노선을 독점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이들에 대한 지자체의 사업 면허 취소 권한 자체도 미약해 버스 민간업체에 대해 도덕적 해이 등 문제가 발생해도 정부와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제제 어려운 상황이다. 

    이 연구위원은 "보조금 문제가 제일 크다"며 "횡령 등 보조금과 관련된 문제가 많이 불거지는데, 면허 취소가 안 된다. 기껏 해야 감차명령"이라며 "사업자들은 면허 취소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법 천지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편법을 통해) 면허를 상속까지 할 수 있으니 영구적으로 계속 지대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간 버스업체를 당장 대체할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만약 감차명령이나 행정명령을 통해서 (문제가 된) 사업자에게 영향을 주고 싶으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공공수단이 있어야 한다. 감차한 버스 대수만큼 공공 전세버스 등을 넣어서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어떤 지자체도 이런 행정명령을 유효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노선 결정에 있어서도 버스 민간업체가 '갑'의 위치에 서있다. 김 센터장은 "민간 사업자가 수용하지 않는 노선안이 관철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탄식했다. 

    공영제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이유는  

    현실이 이렇다 보니 버스 운영을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하자는 공영제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기도에서 버스 공영제 또는 준공영제를 설계하고 연구해온 김채만 경기연구원 모빌리티연구실 선임연구원은 공영제를 하면 좋은 이유로 ▲사고 감소로 인한 사회적 편익이 크게 늘고 ▲재정 사용과 이윤 구조가 투명해지며 ▲특정 기업의 이윤으로 들어간 돈이 노동자의 임금 인상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무리 저희들이 관리를 한다고 해도 버스 업체는 결국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재정 지원의 기준이 되는) 운행 횟수는 혼잡한 시간에 갔다 오든, 아주 새벽에 갔다 오든 모두 한번으로 쳐주다보니 차가 하나도 안 막히는 새벽에 일찍 다녀온다. 타는 사람도 없는데 다녀와서 운행 횟수를 채운다"며 만약 공영제로 바꾼다면 재정 지원을 투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공영제로 전환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버스 민간업체들의 반발을 진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버스 민간업체들은 버스 소유, 차고지 운영 등의 재산권을 주장하며 이를 정부나 지자체가 회수해가는 것에 반대한다. 같은 논리로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도 버스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 연구위원은 이런 논리는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버스 민간업체에 투입된 세금이 이미 4조원을 넘겼다면서 "(민간 버스업체들은) 자기 투자를 했다고 하지만 이미 정부에서 돈을 다 대주고 있던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서 민간 버스업체들이 투자했으니 그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한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며 "돈을 준 만큼 그 값어치를 할 수 있는 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문제도 있었다. 김 선임연구원은 지자체장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많은 예산이 소요되다보니 민주당 출신 단체장이 의지를 가지고 공영제를 추진했는데, 국민의힘이 다수인 시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서 하지 못한 사례도 있고, 공영제를 하다가 중지하고 다시 민영제로 돌아간 곳도 있다"며 "공영제 추진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고 평가했다.

    진보당이 1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정책대토론회의 두 번째 세션으로 ‘모두를 위한 공공버스’ 토론회를 개최했다. ⓒ진보당

    진보당, 법개정안 발표 "최소한 노선 관리형 버스 준공영제로 전환해야"

    이에 진보당은 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통해 버스 공영화를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대중교통이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대중교통법) 개정안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통해 버스 공공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는 버스공영제 또는 노선관리형 버스 준공영제의 정의 규정을 신설하고, 이를 실시한 지역에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또 버스업체의 적자에 대해 재정을 지원하는 면허의 경우 그 사업기간을 5년 이하로 정해 '한정 면허'를 발급하며, 면허 취소 사항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렇게 하면 지자체장이 면허를 넘겨 받게 되고, 버스 공영제 등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보다 쉽게 열리게 된다는 구상이다.

    박태우 진보당 기후위기대응 특별위원회 간사는 "공영제로 가거나 공영제로 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선 관리형 버스 준공영제로 바뀌어야 한다"며 "한마디로 정부와 지자체가 노선 면허권과 운영권까지 원칙적으로 다 쥐는 것이다. 민간 경쟁 입찰 등을 통해 일정 기간을 운영권만 위임하는 형태가 노선 관리용 버스 준공영제인데, 이렇게 가는 것이 상식이고 정상화"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버스 노선의 신설·변경·폐지 시 주민들의 참여를 의무화한 '주민참여 노선결정제도'를 신설하겠다는 점이 주목된다. 최근 울산시가 27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 노선을 개편했다가 주민들의 저항에 맞닥뜨린 사례에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 간사는 "노선을 신설·변경·폐지할 때 대중의 삶이 휘청거린다. 그 버스에 의존해서 살던 사람들, 예를 들어 새벽에 버스를 타고 와서 장사를 하는 그런 주민들의 삶 자체가 굉장히 위태로워 진다"며 "그래서 이들의 참여를 의무화한다는 것을 (법 개정안에)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여론은 이미 충분히 형성돼 있다. 진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초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면조사 결과, 모든 대중교통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운영하는 완전공영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68%가 공감했다. 그 이유 중 1위는 '교통 소외지역도 수익성에 상관 없이 유지될 수 있어서'(43.7%)이다. '주민 요구에 맞는 필요한 노선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서'(20.1%), '노선의 급작스러운 폐지나 변경 등이 줄어들 것 같아서'(12.3%)가 뒤를 이었다. 나아가 82.8%가 '공공교통 활성화가 기후위기 완화 및 탄소배출 감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박 간사는 "교통은 주민생활 밀착 의제이며, 공공교통에 대한 국민적 찬성 여론이 높고, 공공성 증진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확보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공공교통은 모든 시민의 이동권 보장, 교통비 경감 및 지역사회 활성화, 온실가스 감축 등 1석 3조의 효능감 높은 유력한 정책임이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김 센터장은 "공영화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유능한 지방정부의 등장이다. '공영화 했더니 정말 주민의 삶이 좋아졌다'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정책위의장도 "모든 정책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지방의회 권력을 통해 공공버스 정책을 현실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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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5-10-15 16: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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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0-15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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