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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 세 가지

 


[기고] 방요한 고려신학대학원 전도사

  • 기자명 방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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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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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1945년 분단 아래 수많은 단일 민족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여러 참사를 겪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를 망각하는 방법으로 현재 사회를 영위했다.

불과 작년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는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정의는 사라지고, 유가족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유족의 슬픔을 닦아주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실종 사건(폭파 사건)’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진실이 점점 희미해졌다.

사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항공 858편의 폭파범으로 지목된 두 명의 의문의 남녀. ‘김승일(金勝一)’과 ‘김현희(金賢姬)’의 정체. 그리고 항공사고 조사의 기본인 ‘CVR(음성 녹음 장치)’, ‘FDR(비행 기록 장치)’의 회수 및 기체 잔해 수거. 마지막으로 정확한 폭탄과 폭약 종류에 관한 조사. 삼위일체와 같이 기본적인 세 가지 조사만 이루어진다면,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실체는 규명될 수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세 가지 의혹 중 어느 하나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 이 점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도 400쪽의 조사보고서에서 인정한 대목이다. 그러므로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원인은 불명확하다. 아래 의혹을 살펴보면 쉽게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주범이 북한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 대한항공 858편의 탑승객 ‘김승일’은 누구인가?

1987년 11월 29일에 사건이 발생한 이래, ‘KAL858기 가족회’는 끊임없이 김현희의 정체에 관한 의문을 제시했다. “그녀가 과연 북한의 공작원이 맞는가?” 김현희의 다양한 의문점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 학자들이 정리하였으므로, 본 소고는 김승일의 정체에 관한 의혹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1) 김승일의 언어 구사에 관한 의혹

현재 외교부는 생산 30년이 지난 문서들은 정리 후 공개하고 있다.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김승일은 일본의 위조여권(성명: 蜂谷 真一, 여권번호: MG 5741632)을 통해 일본-동유럽을 거쳐 중동으로 향했다.

김승일은 김현희와 함께 바그다드 공항에서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고,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하기를 한 후, 난데없이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항공편을 발권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바레인 암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승일이 김정기 대리대사와의 필담 시 남긴 필적(주소와 이름).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김승일이 김정기 대리대사와의 필담 시 남긴 필적(주소와 이름).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이때 김승일의 행적은 수상한 측면이 많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와 외교부 전문과 모순적인 부분이 많다. 가령 국가안전기획부는 김승일을 4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로 소개했다(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하지만 유시야 참사관의 지시에 따라 김승일의 정체를 파악한 김정기 대리대사의 전문에 따르면, 리젠시 호텔(Regency Hotel)에서 김승일을 만났을 때,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일본인이라 한자 필담으로 겨우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바그다드와 암만에서는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를 구사했으며,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구사했다는 외교부 전문 보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김승일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인 셈이다.

2) 김승일은 과연 폭약 전문가인가?

이제 김승일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발표와 같이, 북한의 능숙한 폭탄 전문가인지 따져봐야 한다. 김승일이 장갑을 끼고 화약을 만졌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손톱에 화약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의아하다. 1987년 12월 28일. 국가안전기획부장 앞으로 회보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감정서에 따르면, 김승일의 손톱에서는 화약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과거 50~80년대는 종종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국과수 화학과에서 총기 사건을 감정했었다. 화학에 일가견이 있는 화학과가 김승일의 손톱에서 폭약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점은, 과연 김승일이 폭약을 만진 적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김승일은 폭약 전문가였는가? 과학적으로만 따지면, 그는 화약을 만진 적이 없다. 단지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조작된 정체불명의 테러범에 불과하다.

3) 김승일의 담배 필터 의혹

국가안전기획부 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김승일이 청산가리 작은 유리병(aempeul)이 든 담배 필터를 깨물어 자살한 것은 명백한 북한 공작원의 자살 수법과 같다. 그러나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 의해 부정된 사실이다.

또한 황적준 박사, 이정빈 교수에 의해 이뤄진 김승일의 부검에 따르면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들이 폐와 기관지 모두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감정서 결론부에서는 청산가리에 의해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져, 일직선의 골절이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강제로 약물을 주입했거나, 타격했다는 증거로는 활용될 수 없다는 내용을 첨부했다.

하지만 이는 최소 10일이 지난 시신을 부검한 것이며, 당시 현장 사진을 보거나 방문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안전기획부의 진술을 바탕으로 부검한 결과다. 반증하듯 부검의 이유 자체가 ‘하치야 신이치’의 진짜 정체를 밝혀,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노인을 부검한다고 해서, 그의 신원이 밝혀질 리가 없다. 또한 법의학자가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 부검했다가 패착을 본 사례가 많다. 공교롭게도 김승일을 부검했던 두 명의 법의학자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995)’에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서는, 피해자의 시반을 잘못 파악하여 사망 시간을 오판했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폐와 기관지에서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고 해서 그가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4) 김승일의 시신 처리와 부검감정서의 행방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통일뉴스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공개한 김승일 부검감정서 일부. [자료 사진 - 통일뉴스]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통일뉴스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공개한 김승일 부검감정서 일부.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면 현재 진실을 명백히 밝혀 줄 김승일의 시신과 부검감정서는 어디 있을까? 김승일의 시신은 사진과 영상을 모두 촬영한 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화장 처리를 하여 경기도 파주의 북한군/중공군 묘지에 안장했다. 따라서 김승일의 시신이라는 주요 자료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시체를 촬영한 영상(VTR)은 어디 있는 걸까? 대한항공 858편을 주제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박강성주 박사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김승일의 사진과 영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다른 답변을 했다.

“저희는 부검할 때, 따로 영상을 촬영하지 않습니다(202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김승일의 시체 처리 문서의 내용과 전혀 대비된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현재 국가정보원 또한 김승일의 부검 및 시체를 촬영한 영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2022년). 하지만 간혹 노태우 정권 때 의문사를 당한 대학생의 부검 영상들이 있다는 사례를 볼 때, 과거나 현재나 따로 부검 영상을 촬영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여러 의혹을 부른다.

김승일의 부검감정서는 현재 나라기록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로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부분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됨). 그러나 2022년 만 해도 나라기록관은 김승일의 감정서를 ‘부존재 문서’로 인지했다. 왜 문서를 찾는데, 무려 1년이나 걸렸을까? 이에 대해 국가 기록관의 직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문서 이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국과수 감정서 문서가 어떻게 등록이 되냐면, ‘감정서 회보’ 딱 다섯 글자로 나가요. 그걸로 저희는 못 찾아요. 날짜도 없고, 문서 번호도 없고…(2023년 국가 기록관).”

2. 대한항공 858편 기체 잔해는 어디 있는가?

당국이 KAL858기 잔해물이라고 발표한 비행기 잔해. 국과수 감정결과 폭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을 의뢰한 안기부가 잔해를 회수해가지 않아서 국과수는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당국이 KAL858기 잔해물이라고 발표한 비행기 잔해. 국과수 감정결과 폭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을 의뢰한 안기부가 잔해를 회수해가지 않아서 국과수는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항공사고 조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사고 항공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CVR’과 ‘FDR’의 회수. 그리고 기체 잔해의 수거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기체가 수장된 안다만해 수색을 게을리했다. 더불어 1990년대 발견된 일부 기체 잔해는 태국의 어부가 그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그것도 1988년 서울 올림픽 특수 도장이 아니었다면,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태국에서 촬영한 기체 잔해 사진은 국가정보원에서 소유하고 있다. 의아한 점은 기체 잔해 원본 사진들이 ‘비밀정보 2급’으로 분류되어, 열람만 가능한 상태다. 더불어 국가정보원이 2020년 11월에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로 대여했으나, 2023년에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회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놀랍지 않다. 정작 놀라운 것은 1990년도에 국가안전기획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감정 의뢰한 기체 잔해들이 모두 폐기 처분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얀마 정국이 안정되어, 안다만해에서 나머지 기체 잔해를 수거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 볼 점은 기체 잔해 사진이 정확하게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이며,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기체를 감정한 감정서는 현재 위치가 묘연하다는 점이다.

“그쪽에서(국가정보원) 보내준 사진이 몇 개 있는데, 707기…손상된 사진이 858편 동체하고 관련된 게 있는데…기체 잔해가 폭파되어서…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기체 도면하고 CVR. 이런 사진들이 몇 개 있어요…이것일 것이다. 기체를 안다만해서 꺼내지도 못했어. 몇 개는 이럴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몇 개가 있는데…(2023년 국가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국과수에 지금 요구해도 국과수에 그 시스템을 담당하는 담당자도 그 감정서에 접근을 못해요. 기체 감정서 때문에, 혹시 문서 번호라도 확인할 수 있는지 요청했는데 접근조차 안 돼요(2023년 국가 기록관).”

3. 대한항공 858편을 추락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한 이후, 여러 가설이 나왔다. 첫 번째 가설은 기체 결함으로 인한 비상착륙 시도다.

1971년 대한항공에 도입된 보잉 707(HL-7406)은 구형 기체로서 1977년, 1987년 랜딩 기어 문제로 김포국제공항에 두 번이나 동체착륙을 한 사례가 있다. 1977년은 항공기관사의 조작 실수, 1987년은 기체 결함으로 인해 앞의 기어가 나오지 않아, 뒷부분의 기어만으로 동체가 활주로에 미끄러지듯이 착륙을 강행했고, 다행히 두 사건 모두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1987년 교통부 항공국에서 조사한 조사보고서는 현재 국가 기록관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국가 기록관은 수사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문서’로 처리하고 있다. 두 달 뒤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의 기체 상태를 알 수 있는 주요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 기록이 비공개 상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정말 기체 결함으로 인해, 미얀마와 교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단지 구형 보잉 기체이며, 미국에서 수리받은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가설은 폭탄테러 설이다. 1988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는 대한항공 858편이 라디오로 가장한 폭탄에 의해 추락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1-2권에서 폭약에 관한 황당한 진술로 인해 여러 의혹이 나왔다.

그중 특기할 진술은 김승일이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TNT가 든 배터리를 복대에 숨기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는 것. 그러나 외교사료관을 통해 공개된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보도문에 따르면,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 RF-085’에 은닉된 폭약은 분명 ‘컴포지션 C-4’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1987년 12월 회보)에 따라, 김현희의 진술서에서 폭약이 컴포지션 C-4에서 급하게 TNT로 변경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TNT 배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2006년 국방과학연구소도 이에 부정적인 회신을 보냈다.

또한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의 조사보고서의 부록에 국가안전기획부-외교부의 전문이 실려 있는데, 김승일과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기 전 받은 보안검사에서 ‘양주병’으로 가장한 ‘PLX’ 액체 폭탄이 발견되지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라디오와 양주병으로 가장한 폭탄으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했다는 허위 사실을 발표했다.

1988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외교부 문서 그 어디에도 PLX 액체 폭탄의 실험 결과가 없다. 단지 컴포지션 C-4의 실험 결과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350g). 이러한 내용만으로는 대한항공 858편의 추락 원인이 폭탄인지, 기체 결함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위한 비밀 작전인 “무지개 공작(1987. 12월 2일 작성)”에 따라 북한의 소행으로 서둘러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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