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100일째, 사과도 반성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는 국가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한 명, 한 명의 국민이 살아야 국가가 삽니다. 국민을 버린 권력은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시민 이준호)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경남 합천군 가회초등학교 3학년 이연)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에 차려진 천막농성장. 천막 주변에는 지난해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이 쏜 물대표에 맞은 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응원 편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백남기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전국 도보순례 중이어서 이종혁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부장이 홀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 부장은 “지나가는 시민들이 선뜻 모금에 동참하거나 제주도 농민이 감귤을 보내주는 등 시민들의 온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 선생이 누워계시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면 안된다”며 “하루빨리 깨어나야 이 천막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백씨가 병상에 누운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백씨는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강한 외부 충격으로 인한 ‘외막성 경막하 출혈’ 진단을 받은 백씨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백씨의 큰딸 백도라지씨는 “의사는 기다려보자고 말하지만 현재 아버지의 뇌 뿌리와 대뇌 절반 이상이 손상됐기 때문에 의식이 깨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16박17일 일정으로 지난 11일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을 출발한 도보순례단은 이날 대전시청 앞에서 백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보순례단은 성명서를 통해 “백남기 농민 사건은 공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가한 명백한 국가폭력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짓밟힌 사건”이라며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국가폭력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언제라도 국가폭력의 대상이 될 것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남기대책위 정현찬 공동대표(가톨릭농민회 회장)는 규탄발언에서 “오늘로 백남기 농민이 정권의 폭력에 의해 쓰러진 지 100일 되었는데 이 정권은 지금까지 일언반구도 없다”며 “이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 소리쳤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도 “세월호 참사는 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고, 백남기 농민을 혼수상태에 빠트려놓은 것은 이 정부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아 진짜 주인인 국민들이 부당한 권력 밑에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은 모두 한가지다”라고 말했다.
앞서 도보순례단은 전날 저녁 대전시청 앞에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100일 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백씨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외치는 내용의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전남 장흥에서 올라온 초등학생 신고구려군은 “백남기 ‘큰아빠’가 내 이름을 지어줬다”며 백씨가 가장 좋아했다는 ‘직녀에게’를 기타 반주와 함께 열창해 300여명의 시민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백도라지씨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100일이 지나가건만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정부나 경찰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며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 쾌유를 바라는 시민들 덕분에 힘이 난다”며 “책임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네덜란드에 있는 막내딸 백민주화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은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신 지 백일째 되는 날”이라며 “살인미수를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경찰, 어처구니없는 이 나라의 현실”이라고 적었다.
도보순례단은 대전을 지나 공주, 천안, 평택, 수원, 안산, 안양을 거쳐 오는 27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제4차 민중총궐기 및 범국민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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