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충고 '군에서 아들 죽으면 장례 치르지 마라'
▲ 2013년 5월 24일 개최된 대한민국 국회 최초의 '국회의원 주최' 군 사망사고 명예 회복 관련 행사 당시 만든 자료집.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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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명예회복 법안 제정을 위해 그간 두 달에 한 번꼴로 모임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나온 유족이 연인원 150명 정도 되는데 이들 유족의 사연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의무복무 중인 아들을, 또 어떤 이들은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딸을, 또 누군가는 육사 출신 장교로 근무하던 아들을 영문도 모른 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피해 사례를 가진 유족분들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할 줄은 몰랐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군에서 자살했다고 하면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바보같이 목숨을 끊나"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남의 일이 '거짓말처럼 내 일이 되면서' 유족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거대한 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사망한 군인에 대한 '국가의 예우 문제'입니다.
유족 모임을 할 때마다 눈에 띄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유족 중 대개 어머니 혼자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부는 늘 함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더구나 회의가 열리는 곳이 서울 여의도 국회였는데 부부는 먼 지방에서 새벽부터 차를 끌고 한 번도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2010년 6월 군 복무 중 사망한 고 윤영준 이병의 부모님이 바로 그분들이었습니다.
죽은 군인 아들 순직 위해 5년간 싸운 부모
고 윤영준 이병이 군에 입대한 때는 2010년 2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입대한 지 불과 넉 달 만에 윤 이병은 숨진 채 발견됩니다. 군 헌병대는 수사 결과 "윤 이병이 신병으로 자대를 배치받은 후 선임병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질책, 폭언으로 힘들어했으며 결국 이로 인해 자살하게 된 것"이라고 부모에게 통보했습니다.
이처럼 선임병에 의한 괴롭힘 끝에 복무 중인 군인이 자살했다면 국가는 어떻게 예우할까요? 육군본부는 윤 이병이 선임병에 의해 괴롭힘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국가와 군의 책임은 없다며 순직 요구를 기각했습니다.
한편 이 같은 육군본부의 순직 기각 결정에 윤 이병의 부모님은 격분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라고 군에 보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나라를 지키다 죽은 것이 아니라 선임병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이러한 괴롭힘을 막아줄 의무가 있는 군 당국의 방임 끝에 결국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통을 받은 것인데 왜 이것이 국가와 국방부의 책임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후 윤 이병의 부모님은 근 5년 동안 생업마저 포기한 채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국가와 국방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다 찾아서 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부터 행정 심판, 그리고 보훈처를 상대로 한 국가유공자 지정 소송부터 순직 결정을 요구하는 전공사상자 재심의 요구까지.
고 윤영준 이병이 숨지고 만 5년이 다 되어가던 지난 2015년 5월 14일. 마침내 국방부 전공사상자 심의위원회는 윤 이병의 부모가 낸 순직 요구 재심에 대해 순직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불과 2012년 7월 이전만 해도 '자살한 군인은 절대 순직 될 수 없던' 군 내부 훈령을 생각해 본다면 그나마 다행인 결정이었습니다. 2010년 아들을 잃고 이처럼 잘못된 군 내부 훈령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군 사망사고 유족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마침내 다가온 2015년 8월 6일. 유난히 무더웠던 그 날, 윤영준 이병이 5년 2개월 만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동안 이 부부가 어떻게 싸워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 역시 이날의 안장식에 갔습니다.
그날, 저는 참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봤습니다. 이날 안장식에는 고 윤영준 이병 말고도 다른 사망 군인의 안장식도 함께 거행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오랫동안 군 복무를 한 공적으로 현충원에 안장 자격을 가진 분들인데 대부분이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로 장례를 치르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들 유족이 영정을 안은 모습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다른 일반 유족들은 고인의 영정 얼굴이 보이도록 든 반면 윤 이병의 어머니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속 얼굴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지난 5년 2개월 동안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왔던 이 어머니.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싸움 끝에 아들을 현충원에 안장하는 날,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가슴에 품고 그렇게 울었습니다.
▲ 윤영준 이병의 안장식이 열린 2015년 8월 6일. 윤 이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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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죽었는데 순직은 뭐고 이까짓 현충원이 뭐냐"고 하는 분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안된다며 매정하게 대하는 국가와 국방부의 행태에 유족들의 가슴은 두 번, 세 번 무너지고 또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들을 묻던 날, 이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눈에 밟혀 저 역시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13년 동안 군 병원 냉동고에 방치된 시신
이런 부모에게 '그래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군 복무중 사망한 아들을 길게는 십수 년에서 수년씩 군 병원 냉동고에 시신으로 둔 유족들입니다. 2015년 6월 말 당시까지 이렇게 방치된 군인의 시신이 15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군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3년 1월 사망한 강아무개 상병입니다. 그나마 군 병원 냉동고에 안치된 군인의 시신 숫자가 줄어든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군 유족과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군 병원 냉동고에 안치된 군인의 시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자 국방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나마 줄어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분들은 아들의 시신을 차디찬 냉동고에 두고 장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요. 군대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부대 측은 군 헌병대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유족에게 '일단 시신부터 화장하라'고 재촉합니다. 대부분 유족은 경황이 없는 중에 장례를 하게 됩니다.
유족들은 이후 성급히 장례부터 치른 것에 대해 대부분 후회했습니다. 장례를 하기 전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순직 처리를 위해 도와주겠다고 군부대 측이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장례가 끝나면 누구도 연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례 전에는 순직 처리가 될 것처럼 말하지만 알아서 순직 처리를 해 주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경우가 달랐다고 합니다. '아들의 순직 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장례를 할 수 없다'고 버티면 군 부대측에서 유족에게 연락이 온다는 겁니다. 물론 대부분 장례를 재촉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안부도 묻고, 또 "어떻게 하면 장례를 거행하겠느냐"며 의사를 묻는 전화도 온다고 합니다.
일부 유족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군대에 간 아들이 죽었다면 일단 장례부터 거부해라. 왜 죽었는지 이유도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장례가 뭐가 급하다고 장례부터 치르느냐'는 것입니다. 장례가 급한 것은 부대 측이지 유족이 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부대 측이 원하는 대로 장례부터 치르면 결국 사건의 진실을 감추고 싶은 군 당국의 의도대로 될 뿐'이라는, 참으로 잔인한 충고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들은 이렇게 하지만 지금 군 병원 냉동고에 자식을 둔 유족 중 장례 자체를 거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르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그 부모입니다. 아들을 저 차가운 냉동고에서 꺼내 그만 따뜻한 대지에 안장해 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명예 회복이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억울하게 아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유족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1달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결국 만 13년이 지나가는 올해까지 어느 사망 군인은 군 병원 냉동고에 시신 상태로 '사실상'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에 김광진 의원실에서는 그동안 국방부에 이들 냉동고 안 시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국방부에 전달했습니다.
국정감사를 통해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이 문제를 줄기차게 지적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군 병원 냉동고에 안치된 군인들의 시신 문제를 방치할 것인지 따졌습니다. 조속히 빠른 시일 내에 유족이 원하는 방식대로 '순직 안장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 국방부와 육군이 극비리에 추진했던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 계획' 문서 일부. 법령개정을 통해 '3년 이상 미인수시 화장'이라는 계획이 쓰여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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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국방부와 육군 본부가 비밀리에 추진한 해결 방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2014년 8월 김광진 의원실이 '밝힐 수 없는 제보자'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국방부는 유족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3년 이상 인수 거부한 군인의 시신을 '강제 화장' 처리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려 했습니다(관련 기사 : 국방부의 '의문사 시신' 강제화장 계획, 그 끔찍한 전말).
충격적인 '3년 이상 미인수 시신 강제 화장' 시도
국방부가 이러한 계획을 세운 것은 2013년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 기조 때문이었습니다. 부처별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를 선정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했는데 당시 국방부가 '장기 미인수 영현 처리'를 '정상화' 과제로 선정한 후 그 해결 방안으로 '장기 미인수 영현 처리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육군본부 차원에서 계획을 수립한 후 '장기 미인수 영현 처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방부는 유족이 인수를 거부하여 3년 이상 군 병원 냉동고에 안치될 경우 이후 유족에게 화장 절차를 통보한 후 강제로 시신을 화장하고 그 유해를 군 병원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유족의 부모는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식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강제로 내 아들을 화장하겠다는 것이냐"며 울었습니다. "군인 아들이 죽으면 부모 권리도 없느냐"며 따졌습니다.
이처럼 유족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이내 추진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국방부가 언제 다시 이 계획을 꺼내 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대체 이처럼 야만적인 계획을 '군인 시신 해결 방안'이라고 처음 생각해 낸 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현재 군 병원 냉동고에 있는 군인 시신들은 모두 군 헌병대 수사 결과 '자살'로 처리된 경우입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순직 처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족의 요구는 '아들이 죽어간 경위에 대해 의혹이 많으니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주고 이에 따라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여 순직 안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를 국방부가 수용하라는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시신 인수 거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한 유족의 심정을 국방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10년이 넘도록 군 병원 냉동고에 아들을 두고 있는 한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날이 몹시 추운 이 겨울에 어찌 지내시는지 안부 차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어디 편찮으시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답했습니다.
"우리 아들 군에서 죽은 때가 어제였어요. 그래서 매년 이맘때만 되면 늘 병이 나는데 올해는 좀 더 심한 것 같아요."
날이 너무 추운데 몸이 아프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안타까워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하니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이 또 가슴 아팠습니다.
"아들 죽고 난 후 방에 불을 피운 적이 없어요. 아들을 차가운 냉동고에 넣어 두고 엄마는 따뜻한 방에서 자겠다며 어떻게 불을 피우고 편하게 잘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말에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계속되어야 할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들 장례를 치르시겠냐"고 물으니 어머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냉동고에서 꺼내 장례 치러 주는 게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는 억울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어요. 군대 가서 아들이 죽었는데 왜 국가가 책임이 없습니까? 전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내 아들을 국립묘지에 안장만 달라는 것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안 되나요? 국가가 징병해 군에 가서 죽은 건데 왜 국가가 책임이 없나요? 그럼 내 자식을 왜 데려갔느냐고요?"
그렇습니다. 군 입대 후 사망하는 군인은 모두 국가의 책임입니다. 이 당연한 요구가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되는 날까지' 저는 유족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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