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최고, 최장...윤석열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앞에서 열린 ‘100만 시민총집중의 날 -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5차 범시민대행진’에 참석한 야당과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소속 단체 및 시민들이 깃발, 응원봉 등을 흔들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지하든 반대하든, 이건 객관적 사실입니다.

이미 그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권위주의와 파시즘을 연구해온 루스 벤치앗(Ruth Ben-Ghiat) 뉴욕대 교수가 지난달 19일 <와이어드(WIRED)>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독재자'에 대한 강의 영상을 올렸는데, 여기에 윤 대통령이 언급됩니다. '친위 쿠데타(self-coup)'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화면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장면으로 바뀌고, 루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기보다는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 경우는 즉시 해제되었고, 그는 구금되었습니다." 이 강연은 업로드한 지 약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조회수가 200만이 넘었고, 좋아요는 13만에 달합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수많은 최초, 최고, 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후세 역사가들이 한국 역사를 쓸 때, 별도 인물열전을 쓸 만합니다. 이 기사는 그 집필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그날 이후 122일동안, 그가 세운 10가지 기록입니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여의도 국회앞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해제 생중계를 듣고 있다. ⓒ 권우성

1. 친위 쿠데타를 실패한 대통령

본인과 일부 지지자들은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한 충격 요법'이라는 의미로 "계몽령"이라고 주장하지만, 12.3 계엄령의 성격이 '친위 쿠데타'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도 이미 친위 쿠데타 항목에 중요한 예시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친위 쿠데타 자체가 아니라 '실패한'이라는 형용사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친위 쿠데타가 처음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박정희의 1972년 10월 유신과 이승만의 1952년 부산정치파동(발췌 개헌)이 있는데, 모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첫 대통령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인공은 일으킨 사람이지만, 실패한 쿠데타의 주인공은 기도한 인물에서 저지시킨 국민들로 완전히 바뀌기 때문입니다.

2. 계엄 포고령에 '의사 처단' 명시한 대통령

12.3 계엄의 포고령은 과거와 좀 달랐습니다. 콕 집어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이는 이번 계엄령이 지극히 사적 감정의 발로임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꺾어놓겠다는 것입니다. 체포 대상에 야당 인사들 뿐 아니라 여당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계엄 조건)가 발생한 건 국가가 아니라 윤 대통령 한 개인의 마음 속이었습니다.

3. 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보낸 대통령

3시간 25분. 헌법이 독립성을 명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이번에 군대가 장악한 시간입니다. 선관위 과천청사에 도착한 계엄군은 야간 당직자 등 직원 5명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이들의 행동을 통제했습니다. 계엄군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들이닥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은 선관위 군 투입 지시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선거 의혹 팩트 확인 차원'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지도자가 비이성적인 음모론에 빠지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 공수처 도착'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들어가고 있다. 2025.1.15 ⓒ 공동취재사진

4.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된 대통령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가 됨으로써 우리 역사상 이 불소추 특권을 스스로 버린 첫 대통령이 됐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 출국금지, 체포, 구속, 기소, 모든 것이 헌정사상 최초입니다. 그는 탄핵심판 결과와 무관하게 당분간 계속 형사법정에 피고인 윤석열로 서야 합니다. 형법 87조는 내란 우두머리에게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만 적고 있습니다.

5. 체포영장 집행을 경호처를 동원해 막은 대통령

1995년 12월 3일, 전 대통령 전두환씨는 경남 합천에서 검찰 수사관들에게 순수히 검거됐습니다. 전날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골목성명'까지 발표하고 고향마을로 피신한 그였지만, 공권력과 지지자들이 충돌할 위기를 모른 척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관저를 지키는 경호처 직원들을 방패막이 삼았습니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김건희 여사가 윤 대통령 체포 뒤 총기를 언급하며 경호처를 질책했다는 증언도 나온 상황입니다. 흔히 윤석열과 전두환을 비교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윤 대통령이 윗길입니다.

6. 구치소에 갔다가 풀려난 대통령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법원과 검찰에서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은 법조문과 70년 실무 관행을 무시한 채 새로운 구속기간 계산법으로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했고, 검찰은 늘 기계적으로 해오던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윤 대통령을 풀어줬습니다. 3월 7~8일 이틀 동안 벌어진 일들은 우리 사법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습니다. 최소한 둘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윤 대통령만큼 인권을 보장하거나, 아니면 윤 대통령도 다른 사람들만큼만 인권을 보장하거나.

아직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전인 2024년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집회에 가수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7. 자신의 탄핵심판에 직접 출석해 발언한 대통령

'피청구인 노무현'과 '피청구인 박근혜'는 헌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피청구인 윤석열'은 달랐습니다. 탄핵심판 3차 기일 때 처음 나온 그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웅변했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 증인신문에는 직접 질문을 던졌고, 직접 질문을 제한받자 수시로 법률대리인에게 귓속말 하는 등 변론을 주도했습니다. 최후진술도 직접 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미디어 환경은 유튜브 등을 통한 전체 영상 시청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윤 대통령 헌재 변론 영상은 그냥 올리기만 해도 조회수 톱에 올랐습니다. 윤 대통령의 직접 발언은 그에게 득이었을까요, 독이었을까요.

8. 탄핵소추부터 선고까지 가장 오래 걸린 대통령

헌재는 변론 종결 후 38일 만에 결론을 내놓습니다. 역대 최장입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11일이 걸렸습니다. 너무 선고일이 안 나오자 각종 루머가 난무했고, 4월 1일 마침내 '4월 4일 오전 11시 선고'가 공지됐을 때, 누군가 '만우절 거짓말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요? 헌재 선고에서 국민들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를 엿볼 수 있을까요?

9. 선고 일반방청 경쟁률 역대 최고 대통령

관심이 어마어마합니다. 탄핵심판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5시 마감된 일반방청 신청자 수는 9만 6370명. 20명 정원이니 경쟁률이 무려 4818.5 대 1입니다. 2004년 노무현(20 대 1), 2017년 박근혜(795.7 대 1) 탄핵심판과 비교해도 압도적입니다. 한 신청자는 자신의 SNS에 "이거 당첨되면 10년동안 로또 당첨 안되어도 괜찮다"라고 올렸습니다. 국민들은 직접 확인해고 싶은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이 언론에 짧은 시간 공개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헌재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예정된 기록

10-1. 인용 : 87년 직선제 이후, 재임기간이 가장 짧은 대통령

10-2.기각 : 친위 쿠데타에 실패했지만, 다시 복귀한 첫 대통령

마지막입니다. 4일 헌재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윤 대통령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렇게 울려퍼지면,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됩니다. 재임기간 2022년 5월 10일 ~ 2025년 4월 4일. 약 2년 11개월. 1987년 직선제 이후 재임기간이 가장 짧은 대통령이 됩니다. 역시 중도에 파면됐던 박근혜씨의 재임기간은 그보다 훨씬 긴 4년 1개월이었습니다.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이렇게 결론이 나오면, 윤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 복귀합니다. 친위 쿠데타에 실패했는데도, 다시 복귀한 첫 대통령이 됩니다. 우리 역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입니다. 또 역사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기록한 10가지는 한 저널리스트의 관점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2024년 12월 3일부터 오늘까지 뜨거웠던 122일을 어떻게 기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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