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없어진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지구를 위한 플랜 A] 대통령 없는 나라의 저속노화
25.04.09 18:43최종 업데이트 25.04.09 18:43
"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기자말] |

▲2024년 12월 12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친구를 만났다가 들은 이야기이다. 가속노화의 반대말, '저속노화'가 일종의 밈이자 새로운 가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시대이기에 다들 조금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계엄과 탄핵의 기간을 거치며 정치 뉴스를 보다 신경질적으로 인터넷 창을 꺼버린 일이 많아졌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아야겠다는 생각과 정신건강을 위해 뉴스를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매번 충돌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배움이 정치권에 반영되었는지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여전히 광장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이 정치권에 닿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더 크다. 오히려, 꼭 나와야 할 이야기가 탄핵 정국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차별과 모욕,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생태 위기는 어느새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로 급격히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지금까지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응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말하는 정치인도 늘어났다.
탄핵해야 하는 것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상의 문제라는 사실을 배운 광장에서 물러날 때, 변하지 않는 일상과 정치가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그때마다 왜 시민의 성장이 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쉽게 이해가지 않았다.
4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을 선고했다. 긴 시간 광장에서, 일상에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시민의 승리로 이 시간은 마땅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이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제부터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일상과 정치는 계엄령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달성한 모습일 것이다. 기후위기와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대한민국, 불평등과 차별이 시정되는 대한민국, 공정하게 나라의 재원이 사용되고, 사회적 연대감이 회복되는 대한민국 등, 이미 여러 비전은 시민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이다.
정치의 저속노화를 위하여

▲봉황기 내리는 대통령실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관계자들이 봉황기를 내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이 없어진 지금, 필요한 것은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따위가 아니다. 늘 그렇듯 원래 한 술에 배부르기란 어려운 법이며,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숟가락질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불통의 정치가 초래한 거대한 위기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눈앞의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보다 생물처럼 변화하는 민주주의의 역동을 느끼며 장기적인 비전을 만드는 일이 정치에도 세상에도 필요하다. 내 몸뿐만이 아니라 정치와 세상에도 저속노화가 필요한 것이다.
안티에이징의 시대가 가고, 늙음의 과정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저속노화가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극과 중독, 더 빠르고 더 강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훼손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치가 시민과 시대의 성장과 발맞추어 나아가야 한다면, 정치 또한 '느리지만 건강하게'라는 표어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적인 승부와 감정적 동원에 집중하는 지금의 정치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관점을 갖자는 의미이다.
느리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하는 의제는 경제위기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 기후 생태 위기의 극복이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목표로 보일 수 있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떠한 산업에 투자하여 경제를 살릴 것인지,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 정하는 과정은 기후 생태위기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후 생태위기가 산업과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히 2025년은 기후 생태위기 문제에서 아주 중요한 해이다. 파리 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해이며, 28년 만에 국제 환경의 날이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해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어쩌면 이 모든 이벤트는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대한민국이 오명을 벗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시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결단을 내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 나는 시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제안하고 싶다. 천천히 정치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나가고, 시민들의 삶 속에서 정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요구들이 정치에 수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 운용에 있어 시민의 감시와 피드백이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시민이 정책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사라진 이후,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이 불통이 아닌 포용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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