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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마다 ‘김용균’ 스러지는데…중대재해법 지운 국회

 등록 :2020-12-09 04:59수정 :2020-12-0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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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 이후 열 달 산재사망
72명이 ‘끼임사’…나흘에 1명꼴
안전설비 미비 등 변한게 없어
지난 6월23일 충남 아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도중 유압 성형기와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에 끼였다가 이튿날 숨진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프리 푸가한의 빈소가 회사 기숙사에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고 현장 유압 성형기의 모습이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지난 6월23일 충남 아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도중 유압 성형기와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에 끼였다가 이튿날 숨진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프리 푸가한의 빈소가 회사 기숙사에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고 현장 유압 성형기의 모습이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제공

기계 밑으로 들어가 몸이 끼였을 때, 그는 혼자였다. 28명의 직원과 관리자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등과 팔이 끼인 채 한참을 발버둥 쳤다. 윙윙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기계가 소리 없이 멈춘 걸 이상하게 생각한 직원들이 뒤늦게 그를 발견했다. 10여분이 지난 뒤였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하루 뒤 숨을 거뒀다.

28살 제프리 푸가한은 6년 전 한국에 왔다. 고향은 필리핀 마닐라 북쪽에 있는 라트리니다드라는 곳이다. 그는 충남 아산의 제조업체인 ㅊ사에서 철근 받침대의 모양을 만드는 유압 성형기 운전 일을 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의견서와 아산이주노동자센터(센터)의 조사를 종합하면, 지난 6월23일 오전 11시19분께 유압 성형기의 센서가 오류를 일으키며 작동을 멈췄다. 공장 내 먼지나 흙, 진동으로 유압 성형기가 작동을 멈추면, 푸가한은 늘 홀로 기계 안으로 들어가 수리했다. 그는 이날도 위쪽의 유압 성형기와 아래쪽의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 사이에 몸을 집어넣고 센서 정비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센서가 작동했고, 유압 성형기가 아래쪽으로 움직여 푸가한의 몸을 짓눌렀다.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청소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현장에는 안전보건관리자도 없었죠. 동료 노동자들은 평소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우삼열 센터 소장이 말했다.

기계에 끼인 채 홀로 방치됐던 상황도, 재해 발생 뒤 누군가의 청소로 흔적이 사라져버린 현장도, 안전보건관리자가 부재했던 환경도, 모두 헬멧을 쓰고 방진 마스크를 쓴 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우리를 바라봤던 그를 떠올리게 했다. 2년 전 한국 사회를 공분하게 한,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4살 김용균의 산업재해는 그렇게 변한 것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는 10일 김용균씨 2주기를 맞아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추모위원회 기획으로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전시실에서 ‘꽃이지네 눈물같이’ 전시가 열렸다. 김용균이라는 꽃이 피었다가 산업재해로 시들어버렸음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전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오는 10일 김용균씨 2주기를 맞아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추모위원회 기획으로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전시실에서 ‘꽃이지네 눈물같이’ 전시가 열렸다. 김용균이라는 꽃이 피었다가 산업재해로 시들어버렸음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전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8일 <한겨레>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김용균의 죽음 이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시행된 지난 1월16일부터 집계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인 10월31일까지의 산재 사망사고를 취합한 결과, 모두 72명의 노동자가 ‘끼임사’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푸가한이나 김용균과 같은 죽음이 나흘에 한번꼴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푸가한은 그 72명의 죽음 가운데 40번째 사망자에 해당한다.

72건의 끼임사 산재 가운데 강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재해조사의견서 64건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근로감독관들은 전체의 68%에 해당하는 44건의 끼임사 발생 사업장에서 안전과 관련해 중복되는 문제들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44건 가운데 안전설비가 미비한 사례는 16건이었고, 작업 때 안전을 위해 기계를 덮어주는 덮개나 노동자의 끼임을 방지하는 센서 등 방호 장치가 없었던 경우는 10건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낙후 장비를 활용하다 사고가 난 사례도 2건 있었다.

재해조사의견서는 현장 동료나 관리 인력의 부재도 끼임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2인1조를 이루지 않고 홀로 작업하다 사고를 당한 사례가 확인된 것만 9건이었다. 또한 사망사고가 잦은 위험 작업임에도 현장에 작업 지휘·감독자가 없거나 ‘신호수’ 등 필수 보조인력이 없었던 경우도 6건 있었다. 안전환경 미흡 및 교육 미비 사례는 모두 31건이었는데, 세부적으로는 교육 미비 5건, 전원을 끄지 않았거나 관리 미비가 4건, 작업계획서 미비가 6건, 낮은 조도가 2건 등이었다.

두달 새 끼임사와 추락사가 발생한 삼표시멘트

72명의 죽음 가운데 30번째 사망에 해당하는 김동석(가명·62)의 끼임사에도 똑같은 문제가 여러 겹으로 중첩돼 있었다. 강원 삼척에 있는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김동석은 지난 5월13일 합성수지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변을 당했다.

재해조사의견서 내용과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동석은 사고 당일 청소를 위해 보조 컨베이어벨트를 작동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자 오전 9시20분께 점검구를 열고 컨베이어벨트 내부를 들여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대로 상체가 끼였다. 다른 작업에 투입됐던 동료가 김동석을 발견한 건 2시간 정도가 지난 오전 11시10분께였다.

회사 쪽은 “당시 2인1조 근무 수칙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랬다면 왜 김동석이 기계에 끼인 채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방치되어 있었는지, 회사는 답하지 않고 있다. “7개월이 지났지만 사망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기계 점검을 하는 동안 누가 기계를 움직인 건지, 혼자 일하신 게 맞는 건지도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어요.” 지난 6일 <한겨레>와 만난 김동석의 아들 김수찬(34)이 이렇게 말했다.

김동석을 끼어 숨지게 만든 기계는 약 한달 만에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이 2인1조 근무를 조건으로 가동을 허가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조처일 뿐이었다. “한 기계당 한명이 맡는 방식을 두 기계당 세명이 맡는 방식으로 근무 형태가 바뀌었어요. 정확한 2인1조 근무가 아닌 거죠.” 이재형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장의 말이다.

형식적인 조처는 곧 또 다른 죽음을 낳았다. 김동석의 죽음 이후 두달이 지난 7월31일 또 한명의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컨베이어벨트가 문제였다. 멈춘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가 작업하다 기계가 작동하며 추락한 것이다. 올해 초에는 한 노동자가 원료 이송 장치 수리를 위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갑작스레 기계가 작동하며 중상 재해를 입기도 했다. 삼표시멘트의 반복되는 재해와 풀리지 않는 진상을 보며 김수찬은 “몇년을 싸워도 제자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 큰아버지도 동양시멘트(삼표시멘트의 전신)에서 3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분도 일하다 위에서 구조물이 떨어져서 사망하셨다고 해요. 할아버지·할머니는 그러니까, 30년 전에도 그 공장에서 큰아들을 잃었던 거죠.”

삼표시멘트 관계자는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중대재해 사고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재발 방지와 안전한 작업 현장 조성을 위해 시설물 보완, 관리감독 강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이주화 막지 못하는 개정 산안법

김용균의 죽음 이후 28년 만에 산안법이 전면 개정됐을 때부터 이런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우선 2인1조 문제다. 푸가한이나 김동석이 재해를 당했을 때 2인1조로 작업하는 동료가 유압 성형기나 컨베이어벨트 비상정지장치를 눌러줄 수 있었다면, 이들은 사망에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산안법 개정 때 ‘위험 작업 2인1조 근무’ 원칙을 법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반영되지 않았다. 김치년 한국산업보건학회장은 “건설업의 추락사만큼 부각되지 않았지만, 제조업의 끼임사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고질적인 문제”라며 “현장의 끼임 방지 설비 마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수리하다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작업을 중지하는 원칙을 세워야 하며, 작업 현장의 조도 관리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도록 기업에 산업안전관리 의무를 강하게 부과해야 한다. 현장 감독관을 늘리고, 안전 매뉴얼을 정립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산안법에 포함된 위험 작업에 대한 도급(하청) 금지 규정도 문제다. 푸가한이 일하던 사업장이나 김동석이 일한 사업장은 이 규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심지어 ‘김용균법’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김용균이 일했던 태안화력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개정 산안법이 도급 금지 위험 사업 분야를 도금·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위험 작업을 도급하려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행령에서 이 승인 대상 위험 사업 분야도 ‘1% 이상의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 등으로 한정했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끼임과 추락이 반복되는 위험 작업에 도급 금지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관되게 나왔고, 구체적인 안까지 나왔던 상황인데도 개정 산안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두는 규정도 사실상 건설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의무가 아닐 정도로 허술하다. 개정 산안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자가 다른 업무를 겸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푸가한이 일했던 회사도 28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이어서 전임 안전보건관리자가 없어도 되는 곳이다.

위험이 외주화 혹은 이주화하는 현실도 문제다. 앞서 재해조사의견서를 입수한 64건의 끼임사 가운데 피해자가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일용직 노동자였던 경우는 30건으로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김동석과 그의 사망 두달 뒤 추락사한 노동자 역시 모두 하청노동자였고, 푸가한은 이주노동자였다. 특히 64건 가운데 81.2%에 이르는 52건이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100인 미만 사업장은 6곳(9.4%), 100인 이상 사업장이 6곳(9.4%)이었다.

이 때문에 산안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손익찬 변호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도입되면, 원청 등 사업장에서 처벌받기 싫어서라도 안전 조처를 강화할 것”이라며 “그게 형벌의 효과라고 본다. 반드시 (사업장 내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과점 열고자 했던 꿈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푸가한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동생과 부모님을 보살피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육남매 가운데 둘째인 푸가한은 대부분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처럼 네 동생과 부모를 위해 한국에서 받은 월급 대부분을 필리핀으로 보냈다. 내년에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했고, 한국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에 제과점이나 가구점을 열고 싶어 했다. 그는 직장을 옮기지 않고 4년10개월 동안 일하고 귀국하면, 3개월 뒤 다시 같은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성실외국인근로자 재입국’ 대상자로 선정될 만큼 열심히 일했다. 푸가한이 숨지기 전달인 지난 5월 그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한달 노동 시간은 모두 213.5시간, 연장 및 휴일근로 시간 61.5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일주일 평균 50시간꼴로 일한 셈이다. 푸가한은 생전 센터에서 필리핀어 통역자로 일하는 리가쵸 잘리에게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시키면서도 위험에 대한 대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센터의 면담 기록을 보면, 푸가한이 일했던 제조업체에선 2007년과 2018년에도 노동자의 팔이 기계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끼임 사고가 발생했고, 2016년에도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했다. “사장님들은 회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직원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사장님한테 ‘일하기 무서워요. 진짜 필요한 안전장치가 없어요’라는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워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죠.” 푸가한과 같은 필리핀 출신 친구이자 ㅊ기업 인근 업체에서 일했던 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ㅊ사 쪽은 <한겨레>에 “사업장 내에 주기적으로 안전교육을 했다. 사고 이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왔다”며 “예전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지는 파악 중”이라는 입장을 보내왔다.

결국 푸가한의 가족에겐 아픔만 남게 됐다. “오빠가 한국어시험에 합격해서 한국에서 일하게 됐을 때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문화 차이로 힘들어하다가 시간이 흘러 적응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푸가한의 여동생 말은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닮아 있었다.

박준용 선담은 기자 juney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73373.html?_fr=mt1#csidx0bcb9919654ab64b5be8b0e710f10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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