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역풍은 오지 않는다
20.12.28 13:29
최종 업데이트 20.12.28 21:39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의 인용 결정 이후 여권에는 윤 총장을 국회에서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구을)이 적극 찬성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글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하는 글도 적극 게재하겠습니다.[편집자말] |
▲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처분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0.12.16 | |
ⓒ 연합뉴스 |
결론부터 말하겠다. 권력구조 개혁과 관련하여 민주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수사권과 기소권 완전 분리,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이다.
김용민‧오기형‧황운하 의원, 김태년 원내대표의 법안이 준비되어 있다. 필자도 마련했다. 김두관 의원은 탄핵 추진을 선언했다. 열린민주당은 검찰총장이 경거망동하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공수처 가동은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므로 이 기고문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결론의 근거를 요약하자면, 네 가지이다.
첫째, 권력이 작동하는 지금의 양태가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와 윤 총장 탄핵을 재촉하고 있다.
정치의 주체인 국회는 그간 법률과 제도를 충분히 존중해 왔다. 반대로 법률과 제도 운용의 주체인 법조세력(검찰, 법원)은 정치를 유린했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검찰은 '재계-언론-국민의힘-태극기 카르텔'(아래 수구카르텔)의 대표 격으로 '검찰당화'한 상태다. 예전에는 국민의힘이 검찰에 정치적 행동을 외주했는데 지금은 반대다.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법원은 이 카르텔에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추며 동조‧협력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주권자를 서슴없이 유린하는 이 행위들을 '사법쿠데타'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담아낼 말이 없다. (임혁백, 한겨레 2020. 12. 24일자 칼럼 참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5792.html )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는 수구카르텔의 제도적 인프라를 해체하는 방법이다. 윤 총장 탄핵(②)은 그런 인프라를 딛고 서 있는 인적 동력과 역량을 무력화하는 길이다.
혹자는 ⓛ이 더 중요하고, ⓛ을 통해 나머지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②는 필요치 않다고 한다. ⓛ이 더 중요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이 준비됐다고 해서 나머지가 저절로, 혹은 부드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나 구조 혁신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인적 청산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윤 총장 탄핵까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가 제대로, 신속하게, 민주진영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다.
②없이 ①만 갈 경우 윤 총장이 '최후의 책동'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에 따른 피해가 민주진영이 감당할 만한 정도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예컨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윤 총장 체제 검찰의 '선택적 정의'가 어떻게 작동할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제도개혁(ⓛ)과 인적 청산(②)의 동시 추진 필요성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과 ②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둘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수구카르텔의 화력과 동력을 분산시키고, 민주진영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권력구조 외 다른 개혁과제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민주진영의 피해까지를 관리해야 한다.
둘째, 민주진영 지지층이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와 윤 총장 탄핵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밖에서 압박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여의도 민주당에 대해 지지층의 짜증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미 임계치를 넘어 이탈 또는 화살을 거꾸로 날리는 분노의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와 달리 수구카르텔은 행동을 한 뒤 명분을 확보하는,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국 일가를 난도질하고 대통령의 결재를 무력화시켰다. 수구카르텔의 선봉장 윤석열은 직무정지 틈새의 시간에 결재를 하고, 크리스마스에 출근했다. 이들의 움직임에서 국민들은 치열함, 간절함을 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행동이 늦다. 역풍을 우려하고 안전장치를 찾느라 그러는 것 같다. 이 모습은 치열하지도, 간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 맞고 있는 바람이 초대형 태풍인데 이보다 더한 역풍을 걱정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지층은 답답하다. 국민들은 치열하고 간절한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지지율이 출렁이는 이유다.
소셜미디어를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최소한 ⓛ을 선취하지 않으면 지지까지 철회할 기세이다. 이 경우 내년 4월 보선 패배는 물론, 대선에서 까지 밀리는 부정적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 ②를 동시에 선취해야 지지층의 이탈을 막고 개혁동력을 보존할 수 있다.
승리는 오지 않는다, 만드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은 "헌재에서 뒤집어질 수 있으므로 무리수다"는 의견이 있다. 이 같은 '서생의 계산법' 때문에 근래 '윤석열 전투'에서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안전한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없는 길을 개척하는 담대하고 창조적인 시도가 정치이고, 그것이 승리를 만든다. 그렇다. 승리는 오지 않는다. 만드는 것이다.
정치를 정치답게 하라고 지지층은 민주진영에 '180석'을 만들어 주었다. 민주진영 지지층은 '180석'을 가지고서도 안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민주당을 더 이상 봐주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만약 법무부 징계위가 윤석열 징계수위를 '해임'으로 가져갔다면 법원이 '쉽게' 인용할 수 있었을까? 징계위가 법원의 판단까지 미리 고려해 '2개월 정직'을 결정함으로써 법원의 짐을 덜어주었다. 법원의 판단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짐을 덜어준 '우리의 문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지금처럼 비상한 시기에는 먼저 최대치를 추구하고, 이후 그것의 관철을 압박하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그 치열함에서 지지층은 간절함과 진정성을 확인하고 신뢰의 힘을 보태준다. 민주진영 지지층의 특성이 그렇다.
이른바 '중도층' 호소 전략과 관련해서도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 중도층을 합리적 선택자로 전제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민주진영의 지지자들이 비합리적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중도층은 힘 있는 쪽, 치열하고 간절한 쪽으로 쏠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힘'을 발휘할 때 지지세가 회복되곤 했다. 이른바 '역풍론'은 민주정권의 발목을 잡기 위한 저들의 논리일 뿐이다. 역풍을 우려하다가 대형 태풍을 맞고 쓰러지는 험한 꼴 당할 수 있다. SNS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가 민주당에 대한 지지층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셋째, 경험칙의 관성을 막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반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수구카르텔은 자신들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 그 크기의 최대치를 경험하는 중이다. 당장 제어하지 않으면 갈수록 더 큰 최대치를 탐색하면서 지금까지 확보한 '허용 가능한 힘'을 마음껏 활용할 것이다.
언론은 주권자 시민의 눈을 가리고, 검찰은 민주진영을 난도질할 것이며, 법원은 최후의 합법 도장을 마구 찍어댈 것이다. 이미 구축된 사법쿠데타의 알고리즘이 더 크게 확대 재생산되면서 수구카르텔의 힘은 더 커진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수구카르텔은 탱크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민주당은 빨간 신호등으로 멈출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나마 빨간 신호등마저 법원이 파란색으로 바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앞으로도 법원이 파란신호등을 계속 켤 것이니 그 싸움은 피하자는 것인가?
탱크보다 큰 힘으로 맞서야 한다. 민주진영은 그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의 소유자가 국회인데 그걸 쓰지 않고 있다. 더 큰 힘을 쓰면, 법원도 '편하게' 합법 도장을 찍지 못한다. 법원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법원의 판단은 언제나 '합리적 예측'을 벗어났다. 다시 말해 법원의 행위를 전제하고 우리의 행동을 설계할 필요성을 필자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직면한 눈앞의 싸움을 회피하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린다는 정신승리나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청산의 대상과 타협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여의도 우물 안'에 갇혀 있지 않은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현 정국을 타개하는 '신의 한 수'는 없다. 더 큰 힘으로 수구카르텔을 제어하느냐, 못하느냐만 남았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내일의 경기를 위해 오늘의 게임을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일전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구카르텔 대 민주진영의 쟁투가 이와 같다. 오늘 지면, 그냥 지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모든 싸움에서 성실하고 치열하게 임하는 정치적 정공법만이 승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기는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앞으로 있을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넷째, 민주진영 지지층의 열정뿐 아니라 지혜로움까지를 신뢰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현재 추진 중인 개혁과제들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 더 깊이 논의하고 말 것이 없다. 지지기반도, 개혁 열망도 튼튼하다. 자잘한 계산 없이 밀어붙여도 이른바 '역풍' 따위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 지지층의 기반과 열망이 허약할 때 역풍이 부는 법이다.
생각해보자. 20대 국회에서 유치원3법을 통과시키면 엄청난 역풍이 불 것 같았다. 지금, 바람 한 점 없다. 엊그제 21대 국회 검경수사권 조정 개정법안,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 등에서도 역풍 같은 건 없었다. 사회적 합의의 바탕, 지지층의 기반과 열망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의 징계 추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지지층 가운데 "잘못했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후확증편향의 평론가들이나 "내 이럴 줄 알았다"고 하나마나 한 소리를 떠들 뿐이다.
지지층은 오히려 적폐세력이 커밍아웃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원칙 있는 실패'에 대해 민주진영 지지층은 추 장관을 격려해주면서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있다.
전 세계 최고의 촛불시민들이 이 나라 민주진영의 지지층이다. 이들이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 및 윤 총장 탄핵을 요청하고 있다. 여의도의 계산법이 민주진영 지지층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열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그 열망의 근원이 촛불시민이라면, 이미 지혜로운 검토까지 끝낸 것으로 여기는 게 자연스럽다. 민주진영 지지층의 열망과 지혜로움을 신뢰한다면 '원칙 있는 성공'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연인 윤 총장'을 단죄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와 윤 총장 탄핵 두 가지를 주장했다. 탄핵 부분에서 이견이 적지 않다. 윤 총장 한 명이 수구카르텔의 전부는 아닌데 굳이 그를 '키워줄' 필요가 있느냐고들 한다.
탄핵은 자연인 윤 총장에 대한 단죄가 아니다. 수구카르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검찰조직의 예봉을 꺾어야 나머지 과제들의 합리적, 효율적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탄핵은 꼭 필요하다.
우리정치의 역사에서 검찰총장 탄핵이 낯선 것도 아니다. 국민의정부 시절, 지금 국민의힘 전신인 야당은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검찰총장 탄핵안을 발의했다.
법원이 탄핵을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무용하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는 탄핵 요건이 적법한지만 따져본 다음 할 일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사법부 몫이고, 그것이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한편으로는, 그간 우리들의 무기력이 법원으로 하여금 '엉뚱한 판단을 해도 괜찮겠구나'라는 마음이 들도록 방조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당 정권이 '약해' 보이니까 최근의 '판결들'이 나왔다고 추론하는 입장이다. 그런 '판결들'에서는 누가 더 강한가, 누가 이기는가에 따라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관련하여 법원의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판결문을 보면, 판사사찰은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모순된 논리가 버젓이 쓰여 있다. 나는 이 모순을 '법원의 퇴로 마련'이라고 해석한다. 민주진영의 힘이 커지면 '다른 판결'을 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미리 심어 놓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까지 논지에 따라 결론을 다시 주장한다. 국회는, 민주당 정권은 촛불시민의 명령을 잘 받아 적어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 촛불을 든 시민이 전위라면 정치는 반걸음 뒤에 선 후위가 되어야 한다. 이 순간 촛불보다 앞서 계산하고 촛불 몰래 타협하는 정치는 주권자를 유린하는 범죄다. 혁명의 아침, 정치인과 지식인의 유일한 의무는 시민들의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던 4년 전 이맘때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가 한겨레에 쓴 칼럼( http://naver.me/FgiUuUIZ)의 일부이다. 그때처럼 오늘도 우리 정치는 시민들의 말을 받아써야 한다.
송구한 말씀 드린다. 나를 포함해 민주진영의 국회의원들은 지지자들보다 한 걸음 앞선 수준의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진보적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 엘리트주의가 "촛불보다 앞서 계산하고 촛불 몰래 타협하는 정치"라는 의심을, 다름 아닌 지지층으로부터 받고 있다.
우리를 뽑아준 지지층에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면, 지금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지지층이 가리키는 방향이 행동의 준거틀이다. 주권자 시민들, 지지자들의 명령을 잘 해석하고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기획, 입법행동의 디테일을 설계하는 데 진보적 엘리트주의의 유용성이 있다. 방향 결정은 주권자 지지층의 몫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따라서 옳으면서도, 상당량의 제도적 힘을 갖고 있는 강한 민주진영이 질 이유는 없다. 민주당 정권의 악습이라 할 수 있는 '햄릿의 고뇌'에서 벗어나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민주진영이,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민주당 정권이,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명분은 충분히 쌓았다. 이제 쓸 수 있는 입법권력의 최대치를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다시 암흑이 덮칠 수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로 빠져들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지지자들의 지시, 우리를 탄생시킨 촛불시민의 명령에 잘 따르면 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폴란드‧영국, 1925~2017)은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나아가 "정치는 일이 되게 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욕망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만약 힘이 있다면…"이라고 부연했다.
1980년 5월에, 1987년 6월에, 2016년 겨울에, 그토록 갈망했던 힘이 민주진영에 있다. 공적 욕망도 충만하다.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 다시 촛불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내지 말아야 한다. 온라인에서 이미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
촛불시민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박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촛불이 민주진영의 대표들, 곧 민주당 정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지지층의 분노야말로 민주진영의 정치적 대표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역풍'이다.
정치의 주체인 국회는 그간 법률과 제도를 충분히 존중해 왔다. 반대로 법률과 제도 운용의 주체인 법조세력(검찰, 법원)은 정치를 유린했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검찰은 '재계-언론-국민의힘-태극기 카르텔'(아래 수구카르텔)의 대표 격으로 '검찰당화'한 상태다. 예전에는 국민의힘이 검찰에 정치적 행동을 외주했는데 지금은 반대다.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법원은 이 카르텔에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추며 동조‧협력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주권자를 서슴없이 유린하는 이 행위들을 '사법쿠데타'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담아낼 말이 없다. (임혁백, 한겨레 2020. 12. 24일자 칼럼 참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5792.html )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는 수구카르텔의 제도적 인프라를 해체하는 방법이다. 윤 총장 탄핵(②)은 그런 인프라를 딛고 서 있는 인적 동력과 역량을 무력화하는 길이다.
혹자는 ⓛ이 더 중요하고, ⓛ을 통해 나머지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②는 필요치 않다고 한다. ⓛ이 더 중요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이 준비됐다고 해서 나머지가 저절로, 혹은 부드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나 구조 혁신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인적 청산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윤 총장 탄핵까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가 제대로, 신속하게, 민주진영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다.
②없이 ①만 갈 경우 윤 총장이 '최후의 책동'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에 따른 피해가 민주진영이 감당할 만한 정도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예컨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윤 총장 체제 검찰의 '선택적 정의'가 어떻게 작동할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제도개혁(ⓛ)과 인적 청산(②)의 동시 추진 필요성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과 ②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둘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수구카르텔의 화력과 동력을 분산시키고, 민주진영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권력구조 외 다른 개혁과제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민주진영의 피해까지를 관리해야 한다.
둘째, 민주진영 지지층이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와 윤 총장 탄핵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밖에서 압박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여의도 민주당에 대해 지지층의 짜증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미 임계치를 넘어 이탈 또는 화살을 거꾸로 날리는 분노의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와 달리 수구카르텔은 행동을 한 뒤 명분을 확보하는,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국 일가를 난도질하고 대통령의 결재를 무력화시켰다. 수구카르텔의 선봉장 윤석열은 직무정지 틈새의 시간에 결재를 하고, 크리스마스에 출근했다. 이들의 움직임에서 국민들은 치열함, 간절함을 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행동이 늦다. 역풍을 우려하고 안전장치를 찾느라 그러는 것 같다. 이 모습은 치열하지도, 간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 맞고 있는 바람이 초대형 태풍인데 이보다 더한 역풍을 걱정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지층은 답답하다. 국민들은 치열하고 간절한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지지율이 출렁이는 이유다.
소셜미디어를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최소한 ⓛ을 선취하지 않으면 지지까지 철회할 기세이다. 이 경우 내년 4월 보선 패배는 물론, 대선에서 까지 밀리는 부정적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 ②를 동시에 선취해야 지지층의 이탈을 막고 개혁동력을 보존할 수 있다.
승리는 오지 않는다, 만드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은 "헌재에서 뒤집어질 수 있으므로 무리수다"는 의견이 있다. 이 같은 '서생의 계산법' 때문에 근래 '윤석열 전투'에서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안전한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없는 길을 개척하는 담대하고 창조적인 시도가 정치이고, 그것이 승리를 만든다. 그렇다. 승리는 오지 않는다. 만드는 것이다.
정치를 정치답게 하라고 지지층은 민주진영에 '180석'을 만들어 주었다. 민주진영 지지층은 '180석'을 가지고서도 안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민주당을 더 이상 봐주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만약 법무부 징계위가 윤석열 징계수위를 '해임'으로 가져갔다면 법원이 '쉽게' 인용할 수 있었을까? 징계위가 법원의 판단까지 미리 고려해 '2개월 정직'을 결정함으로써 법원의 짐을 덜어주었다. 법원의 판단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짐을 덜어준 '우리의 문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지금처럼 비상한 시기에는 먼저 최대치를 추구하고, 이후 그것의 관철을 압박하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그 치열함에서 지지층은 간절함과 진정성을 확인하고 신뢰의 힘을 보태준다. 민주진영 지지층의 특성이 그렇다.
이른바 '중도층' 호소 전략과 관련해서도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 중도층을 합리적 선택자로 전제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민주진영의 지지자들이 비합리적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중도층은 힘 있는 쪽, 치열하고 간절한 쪽으로 쏠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힘'을 발휘할 때 지지세가 회복되곤 했다. 이른바 '역풍론'은 민주정권의 발목을 잡기 위한 저들의 논리일 뿐이다. 역풍을 우려하다가 대형 태풍을 맞고 쓰러지는 험한 꼴 당할 수 있다. SNS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가 민주당에 대한 지지층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셋째, 경험칙의 관성을 막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반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수구카르텔은 자신들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 그 크기의 최대치를 경험하는 중이다. 당장 제어하지 않으면 갈수록 더 큰 최대치를 탐색하면서 지금까지 확보한 '허용 가능한 힘'을 마음껏 활용할 것이다.
언론은 주권자 시민의 눈을 가리고, 검찰은 민주진영을 난도질할 것이며, 법원은 최후의 합법 도장을 마구 찍어댈 것이다. 이미 구축된 사법쿠데타의 알고리즘이 더 크게 확대 재생산되면서 수구카르텔의 힘은 더 커진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수구카르텔은 탱크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민주당은 빨간 신호등으로 멈출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나마 빨간 신호등마저 법원이 파란색으로 바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앞으로도 법원이 파란신호등을 계속 켤 것이니 그 싸움은 피하자는 것인가?
탱크보다 큰 힘으로 맞서야 한다. 민주진영은 그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의 소유자가 국회인데 그걸 쓰지 않고 있다. 더 큰 힘을 쓰면, 법원도 '편하게' 합법 도장을 찍지 못한다. 법원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법원의 판단은 언제나 '합리적 예측'을 벗어났다. 다시 말해 법원의 행위를 전제하고 우리의 행동을 설계할 필요성을 필자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직면한 눈앞의 싸움을 회피하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린다는 정신승리나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청산의 대상과 타협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여의도 우물 안'에 갇혀 있지 않은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현 정국을 타개하는 '신의 한 수'는 없다. 더 큰 힘으로 수구카르텔을 제어하느냐, 못하느냐만 남았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내일의 경기를 위해 오늘의 게임을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일전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구카르텔 대 민주진영의 쟁투가 이와 같다. 오늘 지면, 그냥 지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모든 싸움에서 성실하고 치열하게 임하는 정치적 정공법만이 승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기는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앞으로 있을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넷째, 민주진영 지지층의 열정뿐 아니라 지혜로움까지를 신뢰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현재 추진 중인 개혁과제들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 더 깊이 논의하고 말 것이 없다. 지지기반도, 개혁 열망도 튼튼하다. 자잘한 계산 없이 밀어붙여도 이른바 '역풍' 따위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 지지층의 기반과 열망이 허약할 때 역풍이 부는 법이다.
생각해보자. 20대 국회에서 유치원3법을 통과시키면 엄청난 역풍이 불 것 같았다. 지금, 바람 한 점 없다. 엊그제 21대 국회 검경수사권 조정 개정법안,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 등에서도 역풍 같은 건 없었다. 사회적 합의의 바탕, 지지층의 기반과 열망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의 징계 추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지지층 가운데 "잘못했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후확증편향의 평론가들이나 "내 이럴 줄 알았다"고 하나마나 한 소리를 떠들 뿐이다.
지지층은 오히려 적폐세력이 커밍아웃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원칙 있는 실패'에 대해 민주진영 지지층은 추 장관을 격려해주면서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있다.
전 세계 최고의 촛불시민들이 이 나라 민주진영의 지지층이다. 이들이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 및 윤 총장 탄핵을 요청하고 있다. 여의도의 계산법이 민주진영 지지층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열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그 열망의 근원이 촛불시민이라면, 이미 지혜로운 검토까지 끝낸 것으로 여기는 게 자연스럽다. 민주진영 지지층의 열망과 지혜로움을 신뢰한다면 '원칙 있는 성공'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연인 윤 총장'을 단죄하자는 게 아니다
▲ 대검 앞 윤석열 총장 응원 화환 지난 12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놓여있다. | |
ⓒ 연합뉴스 |
지금까지 나는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와 윤 총장 탄핵 두 가지를 주장했다. 탄핵 부분에서 이견이 적지 않다. 윤 총장 한 명이 수구카르텔의 전부는 아닌데 굳이 그를 '키워줄' 필요가 있느냐고들 한다.
탄핵은 자연인 윤 총장에 대한 단죄가 아니다. 수구카르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검찰조직의 예봉을 꺾어야 나머지 과제들의 합리적, 효율적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탄핵은 꼭 필요하다.
우리정치의 역사에서 검찰총장 탄핵이 낯선 것도 아니다. 국민의정부 시절, 지금 국민의힘 전신인 야당은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검찰총장 탄핵안을 발의했다.
법원이 탄핵을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무용하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는 탄핵 요건이 적법한지만 따져본 다음 할 일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사법부 몫이고, 그것이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한편으로는, 그간 우리들의 무기력이 법원으로 하여금 '엉뚱한 판단을 해도 괜찮겠구나'라는 마음이 들도록 방조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당 정권이 '약해' 보이니까 최근의 '판결들'이 나왔다고 추론하는 입장이다. 그런 '판결들'에서는 누가 더 강한가, 누가 이기는가에 따라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관련하여 법원의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판결문을 보면, 판사사찰은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모순된 논리가 버젓이 쓰여 있다. 나는 이 모순을 '법원의 퇴로 마련'이라고 해석한다. 민주진영의 힘이 커지면 '다른 판결'을 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미리 심어 놓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까지 논지에 따라 결론을 다시 주장한다. 국회는, 민주당 정권은 촛불시민의 명령을 잘 받아 적어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 촛불을 든 시민이 전위라면 정치는 반걸음 뒤에 선 후위가 되어야 한다. 이 순간 촛불보다 앞서 계산하고 촛불 몰래 타협하는 정치는 주권자를 유린하는 범죄다. 혁명의 아침, 정치인과 지식인의 유일한 의무는 시민들의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던 4년 전 이맘때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가 한겨레에 쓴 칼럼( http://naver.me/FgiUuUIZ)의 일부이다. 그때처럼 오늘도 우리 정치는 시민들의 말을 받아써야 한다.
송구한 말씀 드린다. 나를 포함해 민주진영의 국회의원들은 지지자들보다 한 걸음 앞선 수준의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진보적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 엘리트주의가 "촛불보다 앞서 계산하고 촛불 몰래 타협하는 정치"라는 의심을, 다름 아닌 지지층으로부터 받고 있다.
우리를 뽑아준 지지층에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면, 지금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지지층이 가리키는 방향이 행동의 준거틀이다. 주권자 시민들, 지지자들의 명령을 잘 해석하고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기획, 입법행동의 디테일을 설계하는 데 진보적 엘리트주의의 유용성이 있다. 방향 결정은 주권자 지지층의 몫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따라서 옳으면서도, 상당량의 제도적 힘을 갖고 있는 강한 민주진영이 질 이유는 없다. 민주당 정권의 악습이라 할 수 있는 '햄릿의 고뇌'에서 벗어나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민주진영이,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민주당 정권이,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명분은 충분히 쌓았다. 이제 쓸 수 있는 입법권력의 최대치를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다시 암흑이 덮칠 수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로 빠져들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지지자들의 지시, 우리를 탄생시킨 촛불시민의 명령에 잘 따르면 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폴란드‧영국, 1925~2017)은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나아가 "정치는 일이 되게 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욕망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만약 힘이 있다면…"이라고 부연했다.
1980년 5월에, 1987년 6월에, 2016년 겨울에, 그토록 갈망했던 힘이 민주진영에 있다. 공적 욕망도 충만하다.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 다시 촛불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내지 말아야 한다. 온라인에서 이미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
촛불시민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박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촛불이 민주진영의 대표들, 곧 민주당 정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지지층의 분노야말로 민주진영의 정치적 대표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역풍'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구을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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