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벌금, 기업한테는 껌값...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인터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국회 농성 강은미·김미숙·이용관
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
▲ 나흘째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 |
ⓒ 유성호 |
14일 오후 2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인터뷰 시간에 맞춰 텐트에서 나왔다. 검은색 털모자에 연보라색 목도리를 매고 두툼한 바지와 겉옷을 껴입은 그는 살짝 지친 얼굴이었다.
이날로 단식 나흘째. 김 이사장은 "머리가 아프거나 그런 건 없는데 그냥 힘이 없다,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도 "아직 심하진 않은데 기운이 없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뒤늦게 온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씨익 웃으며 "저는 괜찮다"고 했다.
김미숙 이사장의 다른 이름은 '김용균 어머니', 이용관 이사장은 '이한빛 아버지'다. 김용균은 비정규직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고, 이한빛은 정규직 PD였음에도 극심한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하다 세상을 등졌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두 사람은 지난 11일부터 강은미 의원,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국회 본청 현관 쪽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곡기도 끊었다. 물에 효소를 타서 수시로 마시고, 약간의 소금만 섭취하고 있다.
전날 서울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인터넷에는 모처럼 펑펑 내린 눈을 반기는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김미숙 이사장은 "사고 이후부터는 그런 게 별로 감흥이 안 온다"며 "그냥... 제 자식이 죽고 나니까...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아프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용관 이사장도 "어제 셋이 15분 정도 함박눈을 맞으며 걸었다"며 "옛날 같았으면 참 설렐 텐데... 저희는 이제 날이 너무 좋으면 쓰라리고, 명절이나 좋은 날에 더 아프다"며 울먹였다. 김미숙 이사장이 고개를 떨궜다. 강은미 의원도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반갑고, 가장 설레는 소식은 중대재해법 이야기다. 이용관 이사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국회 내 처리'를 약속한 것을 두고 "힘들지만 뭔가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강은미 의원 역시 "이 대표가 처음으로 (법안 처리) 시기를 얘기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봤다"며 "국민의힘도 임이자 의원이 오늘 이종배 정책위의장을 만나 논의한다더라"고 말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 방문한 이낙연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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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오마이뉴스>와 약 1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끝낼 무렵, 이낙연 대표가 예고 없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민주당 우원식·오영환·이탄희 의원도 연달아 찾아왔다. 모두들 세 사람을 바라보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관련 기사 : 이낙연 이어 주호영도 농성장행... 중대재해법 탄력받을까).
그때마다 강은미 의원은 "김용균 어머니, 이한빛 아버지가 연말은 가족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용관 이사장이 직접 얘기할 때도 있었다. 이들의 소원이 이뤄질까.
"다들 말렸지만...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 김미숙·이용관 두 분 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가족들이 단식을 반대하진 않았나.
김미숙 : "저는 워낙 주장이 강해서 그냥 말 안 하고 왔다. 어차피 알면 속상해할 것 같아서... 그런데 단식을 하려니까 아예 TV에 다 나오더라. 그래서 금요일(11일) 기자회견 하고 저녁에 옷 같은 것 챙기러 집에 갔을 때 '단식하러 간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냥 방문 닫고 들어가더라. 속상하죠. 자기가 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그냥 하니까."
이용관 : "10일에 잠깐 외출했을 때 (부인에게) 얘기했다. '다른 어머님이나 아버님들은 지방에 계시고, 김미숙님 혼자 들어갈 수 없지 않냐'고 했더니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는데, 왜 나이 든 당신이냐'고 조금... 나중에는 결국 (단식) 들어간다는 내 의지가 강하니까(이해했다)."
▲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 촉구하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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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결심했나.
이용관 : "정기국회가 끝난 9일이었다. 임시국회 안에라도 처리하게 하려면 뭔가 투쟁이 필요한데, 단식을 해서 동력을 높여야겠다는 판단을 저랑 김미숙님이 한 거다. 제일 문제된 건 저였다. 나이가 많다고. 우리 내부에서도, 산재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도 그렇고, 중대재해법 제정운동본부에서도 그렇고. 제가 56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예순 다섯 살이다. 저는 우리 아들 죽고 나서 간 농양으로 중환자실까지 갔다. 그 상황을 아는 지인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렸다(눈물). 누군가 하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 만류를) 그냥 뿌리치고 제가 들어왔다."
김미숙 : "저 안(국회 본청)에서도 시위했는데, 아예 성사될 가능성이 안 보였다. 내년에 선거도 있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 만드는 건 아예 물 건너갈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다."
- 정치인들이 그래도 좀 찾아오는 것 같던데.
김미숙 : "(중대재해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사는 되게 많이 표명했는데, '언제까지'라는 게 안 정해지니까 '말뿐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서도 '하겠다'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야 하는 거니까, 우리는 더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거죠."
이용관 : "법안 발의할 때부터 금방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길 희망했는데... 이대로는 (논의가) 실종될 것 같아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두 분 다 아들이 사망한 후 계속 싸워왔고, 2년 전 김용균법 때도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다시 중대재해법 때문에 농성하는 상황이 속상할 것 같다. 그런데도 이 법을 만들기 위해 단식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미숙 :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위험의 외주화' 막겠다고 법을 통과시켰는데, 죽음을 거의 막지 못하고 있다. 산안법은 원청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안은 원청 책임도 묻고, 공무원 책임도 묻고, 일반 사회에서 사고 났을 때(시민재해) 책임도 물으니까. 또 (산안법상) 벌금이 너무 적으니까 계속 (노동자들이) 죽어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수위를 많이 높여서 법을 만들자는 거다."
이용관 :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면, 한국 기업의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산재가 획기적으로 금방 줄진 않겠죠. 하지만 최고책임자까지도 처벌을 받으니까 이제는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기업의 가치, 철학 등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건 산안법만으로는 할 수 없다."
"기업 문화가 변해야... 산안법만으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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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 현재 강은미 의원안말고도 박주민 의원안, 임이자 의원안에 오늘 박범계 의원안까지 나왔다. 큰 틀에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데, 꼭 빠져선 안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김미숙 : "원청 처벌과 벌금이나 징역형 수위를 높여서 (책임자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돈 몇 푼 수준이었고, 징역도 3년 이하라 다 빠져나갔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사고 나면 (산재 여부를) 그동안 유족이 밝혔잖아요? 회사가 입증하도록 한 부분도 꼭 있어야 한다."
이용관 : "통계에 따르면, 산재 관련 벌금이 평균 450만 원 정도다. 기업한테는 껌값이다. 안전장치 설치비용보다 훨씬 적다. 또 산안법은 안전관리 책임자, 즉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만 처벌하는데 사실 그 사람도 기업의 구조 속에선 희생자다. 예를 들면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안전관리소장만의 책임이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용균이만 해도, 2인 1조로 일했으면 안 죽었다. 사고가 난 후에도 몇 시간씩 방치됐다. 이런 구조에서 무엇이 변할까."
강은미 : "산재(예방에)는 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경영자와 원청의 책임을 묻는 부분은 후퇴할 수 없다. 또 가습기 살균제처럼 인체에 유해하다는 실험결과가 나왔음에도 기업이 그 결과를 속이고 사용해서 수백 명이 죽고, 수만 명이 평생 장애를 갖고 사는 경우가 있다. 과연 해외 사례처럼 해당 기업에 전년도 매출액의 10% 정도를 벌금으로 부과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제가 발의한 법안 6조 2항 내용인데) 정말 필요하다."
- 다른 쟁점 중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강은미 의원안은 손해액의 3~10배)'다. 임이자 의원안은 아예 이 부분을 뺐다.
김미숙 :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이용관 : "'이렇게 제대로 안전장치 안 하고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기업은 망한다'고 해야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면 안 바뀐다. 벌금 몇 푼으로 손해 봤다 수준이 아니라 '잘못하다간 문 닫겠다' 할 지경까지 가야 바뀐다."
- 민주당 쪽에선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 소상공인·자영업자 제외' 얘기도 나온다.
강은미 : "접근방식이 아쉽다. 지금까지 어떤 법도 원안대로 통과된 적 없다. '이 법 만들자'고 논의하면서 조정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으니 제정하면 안 된다'? 왜 이렇게 다루는 건가. 가령 박주민 의원안에는 제 법안에 없는 인과 추정 부분이 있다. 또 임이자 의원안은 사망사고 발생시 사업주를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수위가 가장 세다. 이런 것들을 조정하면서 가면 된다."
이용관 : "50인 미만 사업장 문제 같은 경우, 거기서 사망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그래도 50인 미만이든, 30인 미만이든 사업장에 준비기간을 주기 위해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시행을 유행한다면 양보할 수 있다. 수십 년도 참았는데 6개월을 못 참겠나."
김미숙 : "하지만 (시행 유예기간을) 4년까지 간다는 건, 안 하는 것과 똑같다. 그 부분에서 박주민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세월호도 산재도 우리 일... 바꿔보려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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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 개혁성향 정부에서 오히려 시민운동이 주목받기 힘들다고도 한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서 농성이 외롭진 않은가.
강은미 : "그래도 김용균 어머님이 잘 싸워 주셨고,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라 '과연 지금 노동자들은 어떤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또 언론이 계속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맙다. 시민들도 정말 많이 응원해준다."
이용관 : "저희가 국회에서 농성도 하고, 단식까지 하니 (정치권에서 법 제정을) '안 하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심지어 국민의힘도 하겠다고 했다. 다만 국민들은 정기국회에선 될 줄 알았는데, (미뤄져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계속 투쟁하면서 상황을 알리니까 연이어 지지 성명들이 나오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촛불도 든다고 한다. 이렇게 열심히 지원해주니 고맙고 힘이 된다."
- 아들이 죽고 난 뒤, 힘들게 싸워왔는데 다시 또 단식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싸워나간다면 바뀔 수 있다고 믿는가.
김미숙 : "바꿔내려고 하는 거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고. 매년 11만 명이 (산재로) 다치고 죽는다. 집계된 게 이 정도인데, 안 된 건 (몇) 배가 되지 않을까. 20년 넘게 산재공화국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해온 걸 정치인들이 바꿀까? 나라가 방치해왔는데 (이제 와서) 할까? 절대 안 한다. 국민들이 나서야만,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야만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생각에 나섰다. 저도 우리 가족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제 가족을 지키지도 못했다. 주변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기 것만, 자기 가족만 살피지 말고 우리나라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마나 안전한지를 보고, 언제라도 죽거나 다칠 수 있으니 이런 것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용관 : "제가 죄책감을 느끼는 게 세월호 참사가 우리 아이보다 2년 전 일이다. 그때 한빛이 첫 월급의 절반가량을 416연대 후원금으로 냈다. 아이가 죽기 전까지는, 세월호는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니까 우리 일이더라.
김미숙 : "우리 일이에요."
이용관 : "제가 살아보니까 우리 같은 일이 남의 일 같다가 나의 일이 되더라. 국민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같이 해주셔야 한다고 부탁드리고 싶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대오각성해서 (법 제정을) 해주진 않을 거다."
강은미 : "사람한테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 저야 몇 끼 좀 굶는 거지만, 노동자들이 한 명이라도 죽지 않도록 빨리 이 법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다. 여러 차례 양당에서도 입장을 표명했으니 이제 그 논의를 좀더 구체적으로, 앞당겨서 하자고 얘기하고 싶고, 결국 이 사회를 바꾸는 건 국민들의 마음이다.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는 만큼 하루라도 (법 제정을) 더 앞당길 수 있다. 댓글, SNS 등으로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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