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추락, 웃기는 미국 대선 2016(2)
[칼럼]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10) |
4. 군산복합체가 주도하는 ‘군사자본주의’ 국가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군사자본주의’(the military capitalism)라는 것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학자들도 길들여져 있다. 전후 미국의 금융, 자동차산업, 정보통신산업, 에너지산업 등이 부침을 거듭하는데도 불황 없이 높은 이윤을 창출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했던 사업이 미국의 군수산업이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하나의 산업 분야가 아니라 미국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군사 케인즈 주의’ 라고도 하는데, 이 용어는 거대공룡이 되어버린 미 군산복합체를 설명하는 데는 부족하다. 군사의 산업화, 군수산업의 정치화가 맞물려 거대한 군사, 정치, 경제 연합집단, 즉 미 군산복합체로 발전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 무기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한 세계 최대의 무기수출국이다. 미국에서 가장 수지맞는 사업은 자동차 산업이나 IT 산업이 아니라 군수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의 GDP 점유율이 1.2%인데 비하여 군수산업은 그 6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군산복합체가 무기사업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의 원자력 발전 사업은 물론 정보통신, 금융, 우주산업, 항공, 석유, 식량, 철도, 철강, 컴퓨터, 인터넷, 언론, 영화, 대학,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손대지 않는 곳이 없다.
록펠러-모건, 카라일, 록히드마틴 등이 움직이는 군산복합기업 그룹은 ‘군’의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고 여타의 모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록펠러는 ABC와 CBS방송을, 로스차일드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를, 모건은 CNN·타임워너(Time·Life·Fortune지)·NBC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는 모건의 영화사이고, 20세기 폭스사의 최대주주는 록펠러이다. 한국인 감독을 영입해 만들어 최근 인기인 영화 ‘밀정’ 제작에 투자한 회사는 바로 미국 군산복합체인 모건과 록펠러가 최대주주인 워너브라더스이다. 스탠포드, 예일, 하버드, 시카고 등 대학들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도 이들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또 군사두뇌집단이자 정치가집단이다. 이들은 수많은 연구소와 재단을 운영하고 기업들과 연관을 맺으며 다양한 인물들을 정계로 배출한다.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프랭크 갈루치 국방장관, 덜레스, 러스크, 키신저, 번즈, 머스키, 조지 슐츠, 올브라이트 전 장관, 파월 등 역대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 장관 등 수없이 많은 역대 백악관 주요 인사들이 모두 이들 군산복합 기업에서 배출한 이들이다.
빌 클린턴 역시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주지사와 대통령으로 진출했다. 부시 대통령은 대놓고 군수업계의 현직 경영자들을 군의 수뇌부로 임명하기도 했다. 제너럴 다이내믹(GD)사의 부사장을 해군 참모총장에, 노스럽 그루먼사의 부사장을 공군 참모총장에 임명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와 산업은 사실상 이들 집단이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어느 당에서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됐든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이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 군산복합체의 위험에 대해 작심하고 이야기한 퇴임 연설을 되새겨 보자. “군수산업 집단의 경제적·정치적·정신적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서 모든 도시, 모든 주 의회 의사당, 모든 연방 정부 부처에 손을 뻗치고 있다”, "우리는 이들 군산복합체에 의한, 승인받지 않은 영향력들을 막아내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부상할 가능성은 현재에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군산복합체의 압박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과정을 위험에 처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것도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재 미 군산복합체는 아이젠하워 당시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커졌다. 미국 정부는 물론 지구상 어느 세력도, 그림자 권력인 미 군산복합체의 탐욕과 의지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두고 미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벌어진 일이라는 이른바 음모론이 흘러나오는 것도 결코 우연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다.
5. 트럼프는 군산복합체에 저항할 수 있나?
미국의 현재 위기는 미국이 일극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와 안간힘을 쓰는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 미국은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새로운 신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이른바 ‘양적완화’(量的緩和, the Quantitative Easing)로 미국경제의 문제를 세계경제에 전가하며 버티고 있다. 양적완화라는 일견 고상하게 들리는 이 용어는 사실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지위를 이용하며 미 달러 종이돈을 마구 찍어 낸다는 말이다. 미국의 자금경색 위기를 모면하고 문제를 다른 나라에 넘기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사실상 합법적으로 묵인된 경제폭력이자 테러인 것이다.
미 연방 재정적자의 주요 요인은 표면상 스스로 자임한 ‘세계 경찰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비 지출에 있다. 사실상 미국 군산복합체를 먹여 살리는데 쓰이는 고정 예산에 있는 것이다. 이 미국 군산복합체의 21세기 새로운 사업전략과 먹잇감이 바로 전 지구적인 차원의 MD(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이다. 이들은 사실 MD의 성능과 과학자들의 성능과 관계된 비난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것은 미국정부가 악마국가(북한, 시리아, 이란, 러시아)를 만들어 개척한 그들의 보장된 비즈니스이고, 그저 언젠가 달성하면 되는 장기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정적자 위기의 규모를 살펴보자. 미국의 재정적자는 2000년 이후 급증해 2014년에 17조 달러(약 1경 9000조원)를 돌파해, 2020년 이후에는 매년 한국 돈으로 약 1000조원 이상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약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재정적자가 이런 속도로 계속 폭증하면 연방재정파탄사태는 일상사가 되며 미국은 망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의 ‘2014년 세계 군비지출·무기이전 (WMEAT)’ 보고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미국의 순 군비 지출은 7390억 달러(약 813조원)로서 간접군사비용까지 포함하면 1조 달러(약1100조원)를 훌쩍 넘는 액수였다. 한국 내년 국가 총예산(약 400조)의 2배가 넘는 규모이다. 이는 세계 2위인 중국의 군비지출(1700억 달러·실제 시장 환율 기준)보다 4.3배 많다. 3위인 러시아(702억 달러·구매력평가 기준 환율 적용 시 최대 1180억 달러)에 비해서는 10.5배 수준이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정책이 진실이라면 우선 이 재정적자 문제의 주원인인 군수산업에 대해 칼을 대야 한다. 미국은 과연 군사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까? 보호무역주의로만 미국의 추락을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은 트럼프가 미국 군산복합체에 반항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제로(0)%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도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 후 이미 말을 바꾸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5월 미 군산복합체 배경을 가진 외교 전문가인 헨리 키신저를 만났다. 이후 트럼프의 변화를 보면, 그는 중국에 대한 초기의 강경했던 태도를 바꾸었고 최근에는 ‘미국 국방비 증강’을 공약했다. 9월 7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유세에서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즐기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트럼프는 “우리는 확실한 군사력 우월성을 토대로 갈등을 피하고 예방할 것”이라며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했다. 가장 근본적인 쟁점을 둘러싸고 그는 이미 전향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집권하면 즉시 의회에 2013년 발동된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조치(시퀘스터) 폐지를 요구하고 국방력을 증강할 새로운 예산안을 제출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한 술 더 뜨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집토끼 표를 의식한 발언이자 미 군산복합체에 대한 ‘백기투항’ 선언이다.
6. 미 대선과 한반도 평화협정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거 방식의 유지고수인가, 새로운 모색을 할 것인가? 힐러리 클린턴의 방향은 월가와 군산복합체의 기득권과 패권주의 노선을 인정하는 현상유지의 방향이다. 실패로 끝났지만 버니 샌더스의 정책방향은 군비를 대폭 줄이고 미국도 북유럽 복지국가 지향의 사회민주주의노선을 시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과 대안은 미국에서 너무나 미약하다. 트럼프의 방향은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접고 경제적 국수주의를 지향하며 미국부터 먼저 챙기자는 현상 타파의 흐름이다.
트럼프의 선거 정책은 방향은 있으나 아직 정교한 정책은 없다. 만약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미국은 인종 계급적으로 더욱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고 분열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방향이 힐러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미국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경향이 바로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쉽게 결정되지는 않는다.
오바마가 지난 대선 기간에 긍정적 신호로 보여 주었던 대북정책 발언들도 실제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미군 철수를 공약하고 당선된 카터조차도 주한미군을 전면 철수할 수 없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특수성을 지닌 미 군산복합체의 특별한 전략 문제에 속한다. 따라서 설사 다소 새로운 성향의 대통령으로 교체된다고 해도 그 교체가 한반도 평화협정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직접적으로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한국 보수정부와 주류언론은 미국 주류 기득권 정치세력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편이다.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입장은 심란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대비는 아직 없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어도 그가 북미관계 평화협정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한국정부에 대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와 통상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더불어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과 범 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이 지연될 수 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위협하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요구도 유사할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한미 FTA 등도 재검토, 재협상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상태다.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편이다.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입장은 심란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대비는 아직 없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어도 그가 북미관계 평화협정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한국정부에 대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와 통상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소련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내부로부터 조금씩 안으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를 찬성한 브렉시트 현상이 미국 동맹국들 체제 내부의 균열조짐이라면, 트럼프 현상은 미국 국내정치체제 내부로부터 형성된 대중들의 이반과 균열을 의미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현상’이지 ‘조직된 대중의 힘’이 아니다. 역사상 조직된 대중의 힘이 없이 거대한 기득권 세력, 즉 미 군산복합체와의 전쟁에서 이긴 사례는 없다. 따라서 트럼프 현상은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가능성이 높고, 설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는 기존 체제 내의 한 정치인으로 길들여질 것이다. 트럼프는 길들이기 어려운 상대일 뿐이지 결코 체제를 위협하는 별종은 아니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되든 상관없이 한반도 문제가 결론을 내릴 중요한 시기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극한점에 이른 북-미관계의 추이와 절박한 남한의 정권교체 문제가 더 중요해 보인다. 만약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다시 현상유지정책, 즉 대북 적대정책을 지속한다면 이는 지난 시기와는 다르게 한반도의 전쟁(국지전 확전의 전면전 혹은 통일대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동맹과 이념이 아니라, 미국을 대내외적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 중의 하나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차기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종전과 통일이라는 주제와 피할 수 없는 인연과 운명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정훈 위원은 1985년 고려대 광주학살원흉 처단투쟁위원회 위원장, 삼민투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3년 옥고를 치른 뒤 오산과 수원에서 노동자회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런던대 아시아태평양 지역학 석사과정,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교육위원, 경실련 하이텔정보교육원 이사, 사람과 사상 소리클럽 출판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민플러스 편집기획위원으로 국제팀장을 맡고 있다.
이정훈 편집기획위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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