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법조계, 이 가난한 변호사에게 배워라
▲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부장판사 뇌물구속' 사건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한 뒤 인사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6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직 검사장의 비리 혐의 구속에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한국 사법체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국민 사과 직후 전국법원장회의가 내놓은 법조비리 대책은 ▲ 예방활동 강화 ▲ 징계 자료 확보 내실화 ▲ 연임심사 강화 ▲ 비위법관 연금 감액, 징계부가금 부과 ▲윤리행동기준 마련 ▲법조윤리신고센터 신설 등이다.
지난달 31일 검찰이 내놓은 개혁 방안은 ▲ 법조비리단속 전담반 설치 ▲법조비리신고센터 설치 ▲법조비리 정보수집 전담팀 설치 ▲ 대검 암행감찰반 활용 ▲ 선임서 미제출 변론 전면 금지 ▲ 일선 검찰청 변론 관리대장 운영 ▲ 검찰 간부 비위 전담 특별감찰단 신설 ▲ 주식 관련 정보 취급 근무자의 주식거래 금지 ▲ 승진 대상 검찰 간부의 재산형성과정 심층 심사 등이다.
법원이고 검찰이고 '단속 강화' '신고' '감찰' '신설' 등을 반복하며 수뇌부 중심의 개혁을 내세웠다. '중앙집중식 감찰 체제'를 구축해 수뇌부가 판·검사들을 잘 단속하면 '제2의 홍만표 전관 변호사' '제2의 진경준 검사장' '제2의 김수천 부장판사'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대책이 잘 통하지 않으리란 건 검찰이 미리 보여줬다. '스폰서 검사' 비위 의혹이 검찰 내부에서 '뭉개기'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젠 검찰이 아무리 강한 자체 개혁안을 내놔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상황이 됐다.
대책 세우면서 한편으론 의혹 뭉개기?
이런 대책이 잘 통하지 않으리란 건 검찰이 미리 보여줬다. '스폰서 검사' 비위 의혹이 검찰 내부에서 '뭉개기'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젠 검찰이 아무리 강한 자체 개혁안을 내놔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상황이 됐다.
대책 세우면서 한편으론 의혹 뭉개기?
▲ 중·고등학교 동창 사업가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고 사건무마 청탁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아무개 부장검사와 사업가 김모씨의 대화 내용으로 알려진 화면 캡처본. 이들의 대화 내용에는 김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금품 등을 요구하거나 여성·친구 등의 '제3자'가 포함된 만남을 가진 정황이 담겼다. | |
ⓒ 연합뉴스 |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불거지고 그의 해명이 속속 거짓으로 판명 나고 있던 지난 5월, 대검찰청은 서울서부지검으로부터 김 아무개 부장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한 첩보 보고를 받았다. 횡령 및 사기 혐의 수사를 받던 김아무개씨와 김 부장검사 사이에 수상한 돈거래가 있다는 내용이다. 대검은 서울서부지검에 진상규명 지시를 내렸을 뿐, 감찰에 착수하지 않았다.
감찰도 소환조사도 없던 3개월여 동안 김 부장검사는 자유롭게 활동했다. 김씨의 사건을 맡은 수사검사와 식사를 하고, 검사실로 찾아가기도 했고, 김씨에게 압수수색 대비 요령도 알려주는 등 사건 무마 시도를 넘어 수사를 방해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각종 비리를 끊어내기 위해 검사들에 대한 감시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보고된 비리 의혹도 신속히 처리하지 않았던 셈이다. 검찰 수뇌부의 개혁 의지가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검사들의 생명줄'이 전적으로 '윗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국이 엄중해도, 잘못이 커도, '윗선'만 잘 무마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진경준 전 검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회사 넥슨의 주식 100억여 원어치를 차명도 아니고 본인 명의로 보유한 진경준 검사가 "장모에게 빌린 돈으로 샀다"는 해명으로 인사검증을 통과했다. 금융정보분석원에서 근무했고 금융·조세 수사를 전담한 경력이 있는 검사가 갑자기 100억 원대의 비상장주식을 갖게 됐는데,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실수로 치부하기 힘들다. 오히려 검증 책임자 한 사람에 집중된 정보와 권한 때문에 이 같은 비상식적인 인사검증이 가능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3억 빚 갚은 1만여 '민심'들
▲ 박준영 변호사. 박 변호사는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돈도 받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 |
ⓒ 이희훈 |
법조계 각 분야 수장들이 대국민 사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때, 법조계 반대편에선 스타가 탄생했다. 변호사 업계에 '재심 전문'이라는 전문 분야를 새롭게 만들어낸 '박준영 변호사 – 박상규 기자' 콤비다. 이들은 '무기수 김신혜 친부 살해 사건' 재심 결정,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재심 확정을 이끌어냈다.
정작 본인은 '유명한 변호사로 뜨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돈도 받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여기에 뜻을 같이한 기자는 사회적 약자들이 경찰과 검찰, 법원에 의해 살인범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심층 보도했다. 3~6년간 무료 변론으로 모자라 의뢰인들의 차비까지 챙겨준 박 변호사는 3억여 원의 빚을 졌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이 같은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열화와 같이 응답했다. '박준영 변호사의 빚을 갚아주자'는 박 기자의 호소로 시작된 1억 원짜리 모금은 사흘 만에 목표액을 채우더니 20일도 채 안 돼 박준형 변호사의 부채 금액과 맞먹는 금액인 3억 원을 돌파했다.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헌신한 변호사의 빚을 시민들이 대신 갚아준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금액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지갑을 연 사람들이 무려 1만 명이 넘었다는 사회적인 현상, 이들이 돈을 아까워하기는커녕 "작은 도움밖에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며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모금 액수는 올라가고 응원의 메시지는 이어지고 있다. 이참에 박 변호사를 아예 평생 약자들을 위해 변론하는 '시민 변호사'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더는 '윗선' 중심 셀프개혁은 작동하지 않는다
▲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제목이다. 공익 변론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은 박 변호사의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열화와 같이 응답했다. 펀딩 시작 사흘 만에 목표액 1억 원을 채웠다. 20일도 채 안 돼 박준형 변호사의 부채 금액과 맞먹는 금액인 3억 원을 돌파했다.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헌신한 변호사의 빚을 시민들이 대신 갚아준 것이다. | |
ⓒ 스토리펀딩 갈무리 |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시민들의 뜨거운 모금 참여와 응원이라는 또 하나의 감동을 만들어낸 재심 전문 변호사. 개혁하겠다고 해놓고 뭉개는 검찰, 이 명확한 대비에서 시민들이 법조계에 바라는 열망이 드러난다. 제발 좀 '윗선'이 아니라 이 사회의 약자, '낮은 곳'을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법조계 개혁의 방향이 있다. '윗선'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셀프개혁'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도 얻을 수 없다. 일선 검사나 판사들이 아니라 오히려 법원·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시 강화가 필요하다. 검사나 판사나 '윗선'을 바라보지 않고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개혁, 판검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의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때마침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국 지검장과 고검장을 소속 평검사가 투표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검사장 직선제 도입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법원장 주민직선제 주장도 나온다. '셀프개혁'이 분명한 한계를 보여준 이상 '선진국에서나 통할 얘기'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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