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쏜 경찰, 추모 분향소까지 '조직적 방해'?


16.09.27 18:01l최종 업데이트 16.09.27 18:11l





기사 관련 사진
▲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 직사'를 맞고 쓰러진 뒤 치료받다 숨진 농민 백남기(69)씨와 관련해, 경찰이 백남기씨의 분향소 설치 차단 등 시민 추모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사진은 27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경찰 내부 업무연락 문서.
ⓒ 표창원 의원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 직사'를 맞고 쓰러진 뒤 치료받다 숨진 농민 백남기(69)씨와 관련해, 경찰이 백남기씨의 분향소 설치 차단 등 시민 추모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27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백남기 농민 사망에 따른 지역별 분향소 설치 등 대비 철저 지시'라는 제목의 경찰청(경찰청장 이철성) 업무연락 문서에는 "경찰서 주변에 분향소 설치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 "폭력 등 발생 시 대비경력이 적극 개입, 불법 행위자는 현장검거 등 엄정 대응" 등의 자세한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경비국장'(이승철 경찰청 경비국 국장) 명의로 발송된 이 문서는 백씨가 사망한 9월 25일 당일 전국 지방경찰청 경비과장 앞으로 하달됐다. 이는 시민들의 추모를 방해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경찰이 지난해 11월 물대포 직사로 백씨를 쓰러지게 만드는 등 과잉진압을 벌인 데 이어, 백씨가 사망한 이후엔 추모 방해까지 나선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경비국장, 백남기 분향소 설치 전·후로 나눠 경찰의 '적극 차단' 주문
기사 관련 사진
▲  지난 25일 백남기씨가 숨을 거둔 서울대병원 안팎에서는 고인에 대한 강제적인 부검 집행을 우려하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대치가 벌어졌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는 이날 한 제보자를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따른 지역별 분향소 설치 등 대비 철저 지시'라는 문서에 담긴 내용을 인지했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을 통해 이러한 내용이 남긴 경찰청 업무연락 문서를 확보했다. 


경찰은 먼저 "(백남기) 대책위가 9월 25일 10시 대표자회의에서 '서울대병원 최대한 조문, 지역 분향소 마련 조문 진행' 등 사망시 긴급대응지침 하달"했다며 "이와 관련 각 지역별로 경찰관서를 포함, 주요 공공장소에 분향소 설치 시도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경찰은 백남기 농민 지역별 분향소 설치 전·후로 상황을 나눠 경찰 대응을 지시했다. 분향소 설치시에는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로법 위반 등에 해당하는지 살펴 이를 근거로 분향소 설치를 차단하라는 내용이 3개 '지시사항'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분향소 설치와 관련해 설치 전이면 "소유주 측에 관련 내용을 알려, 장소를 선점하는 등 시설 관리권 차원에서 대응 조치"하도록 하고, 이미 설치됐을 경우 집시법·도로법 위반 등 근거로 "신고 집회의 경우 천막 등 분향소 설치 용품은 미신고 용품으로 차단, 집회신고 없이 분향소 설치시 미신고 집회 개최로 차단" 등 처리하라는 지시다.

또 분향소가 설치되는 장소와 관련해서는 "도로와 인도 등 공공부지는 관리주체가 사전 제지토록 하되, 폭력 등 불법행위 발생시에는 대비경력이 적극 개입, 불법행위자 현장검거 등 엄정 대응" "특히 경찰관서 주변인도 등에 분향소가 설치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 등의 지시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이 문서에는 경찰의 "적극 개입" "엄정 대응" "적극 차단" 등 단어가 지속해서 등장한다. 경찰이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 설치를 차단하라는 지시다. 이런 '지시사항'을 경찰청 경비국장 명의로 전국 지방경찰청에 보낸 것은 '조직적 추모 방해'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에 이러한 문서 내용을 제보한 인사는 "이는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분향소 설치를 경찰이 사전에 차단하도록 하고, 그것이 안 될 경우 경찰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표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경찰의 이런 지시사항과 관련해 "경찰이 시민들의 순수한 추모마저 불법으로 간주해 기획적으로 막으려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는 고인과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백씨의 사망 직전이던 24일 밤부터 병원 인근에 경찰 병력 3개 중대 250여 명 배치, 사망 직후인 25일 오후 병력 3600여 명 투입 등으로 인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에도 백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25일 시신 부검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기각했음에도 26일 잇달아 부검 영장을 재신청하는 등 논란을 빚었다.

백씨, 물대포에 쓰러졌으나... 경찰 "명확한 사인 밝혀야" 부검영장 재신청
기사 관련 사진
▲ 경찰, 부상자 발생에도 무차별 물대포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쏜 물대포를 안면에 직격으로 맞은 백남기씨가 바닥에 쓰러진 모습.
ⓒ 이희훈

애초 백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 직사로 쓰러졌다. 백씨는 지난해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쌀값 21만 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려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백씨가 쓰러지는 당시 모습은 <오마이TV>가 촬영한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민과 경찰이 대치 중이던 민중총궐기 당일 오후 7시께, 백씨는 캡사이신 섞인 물대포를 안면에 직격으로 맞은 뒤 바닥에 쓰러졌다. 백씨는 이후 정신을 잃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당시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백씨와 그를 구조하러 다가온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 살수를 멈추지 않았다.



쓰러질 당시 백씨가 입고 있던 하늘색 조끼에는 '밥쌀용 쌀 수입 반대, 보성군농민회'가 적혀 있었다. 백씨는 이후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등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 넘게 뇌수술 등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했고,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 동안 투병하던 중 지난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사망했다.

[관련 기사]
[영상] 머리에 물대포 맞고 쓰러지는 농민 백남기씨
[기사] "국정화 중단", "쉬운 해고 박살" 광화문에 울려 퍼진 8만 함성들

그러나 경찰은 백씨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며 백씨가 사망한 25일 오후 시신 부검을 위한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백씨 부인, 큰딸 백도라지씨 등 유가족은 "(애초)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것도 경찰"이라며 시신 부검에 반대했으나, 경찰은 26일에도 부검 영장을 법원에 재신청해 무리한 부검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앞서 25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환자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 "사망 선언 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된다"는 등 성명을 발표한 뒤였다(관련 기사: 검경,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 '재청구').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도 27일 오후 1시께 국회 정론관에서 경찰의 부검 영장 재청구와 관련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과 백남기 대책위(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대책위를 투쟁본부로 개편하고, 29일 비상시국 선언 개최를 비롯해 10월 1일 오후3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27일 현재 농민 백남기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남아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 여부는 이르면 27일 오후 결정날 예정이다. 앞서 경찰은 백씨 사망 직후인 25일 오후에도 병원 인근에 경찰을 배치해 조문하러 온 시민들과 충돌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차려진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 수많은 시민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유성호

관련 콘텐츠 더 보기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