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살던 잔가시고기가 어떻게 대구 금호강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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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살던 잔가시고기가 어떻게 대구 금호강 갔나
한반도 고유종으로수백만년 한반도 자연사의살아있는 증거139만년 전 빙하기 때 러시아서 남하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에서만 살아16만~51만년 전 양산단층 운동으로동해 남부 형산강 상류 물길이금호강으로 바뀔 때 흘러들어동해북부-동해남부-금호강 집단 다른 종보호종에서 빠졌지만 ‘멸종위기’집 짓고 암컷 너덧 마리 불러들여알 모아 지극정성 부성애로 부화시켜
» 잔가시고기 수컷(오른쪽)이 둥지를 지은 뒤 암컷을 유인하고 있다. 잔가시고기의 산란 행동은 헌신적 부성애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자연사적 가치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중앙내수면연구소 동영상 갈무리.
영화 <쉬리>처럼 소설 <가시고기>는 일반인은 거의 모르던 민물고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분히 의인화된 ‘자식을 향한 애틋한 부성애’ 말고 우리가 가시고기에 대해 아는 건 얼마나 될까.
최근 잇달아 이뤄진 한반도 고유종인 잔가시고기의 산란 행동과 유전자 표지 연구를 통해 이 민물고기의 습성과 기원, 이동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다른 물고기에도 비교적 흔한 ‘부성애’ 말고도 잔가시고기가 수백만년에 걸친 한반도 자연사의 ‘살아 있는 증거’임이 밝혀졌다.
»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기초생태와 증식을 연구중인 잔가시고기. 조홍섭 기자
2일 잔가시고기에 관한 기초생태연구를 하는 경기도 청평의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를 찾았다. 증식용 수조를 보니 손가락 두 마디에 못 미치는 작은 물고기가 빠르게 헤엄쳐 수초 틈에 숨었다.
언뜻 개울에서 흔히 보는 피라미나 납자루와 다를 바 없었다. 전시용 수조에서 보니 특이한 모습이 드러났다. 등에 푸른빛이 도는 가시가 줄지어 있고, 몸통 끝에는 마치 부채처럼 가늘고 긴 자루 끝에 꼬리지느러미가 활짝 펼쳐져 있다.
번식기 때 수컷은 화려한 혼인색
» 혼인색에 물든 잔가시고기 수컷. 중앙내수면연구소 동영상 갈무리.
잔가시고기는 3~5월 번식기 때 형태와 행동이 가장 극적으로 바뀐다. 올해 이 물고기의 산란 특성을 연구한 이 연구소 이시우 박사의 설명을 들어 보았다.
혼인색을 띤 수컷의 몸은 진한 남색으로 등과 배의 가시는 에메랄드빛으로 바뀐다. 눈은 노란 바탕에 검은 무늬가 생긴다. 수컷은 갈대 줄기나 뿌리로 수초 중간에 새처럼 둥지를 만드는데, 달걀 크기 레미콘처럼 생겨 입구와 출구가 양쪽에 있다.
» 갈대 뿌리 등으로 수초 중간에 새집 모양의 둥지를 지은 잔가시고기 수컷. 중앙내수면연구소 동영상 갈무리.
수컷마다 집 짓는 데 공을 들이는 방법이 달라 하루 만에 뚝딱 짓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꼼꼼한 수컷은 사나흘씩 걸리기도 한다. 집을 짓고 나서 알을 밴 암컷을 찾아 나서 구애를 한다. 암컷은 매우 까다로워 집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 1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난다. 한 둥지에 암컷 4~5마리까지 불러들여 둥지에는 30~700개의 알이 모인다.
» 알을 배 배가 부풀어오른 암컷 잔가시고기. 수컷의 집 짓는 품으로 짝짓기 상대인지 결정한다. 중앙내수면연구소 동영상 갈무리.
수정란이 모이면 수컷은 유명한 ‘부성애’ 행동에 돌입한다. 가시를 세워 다른 가시고기가 둥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동시에 지느러미로 물살을 일으켜 알에 산소를 공급하는가 하면 주둥이로 알에 묻은 불순물을 떼어내고 자극한다. 사흘 뒤 알이 깨어나는데, 이런 정성 덕분에 부화율은 60~70%로 높다.
그렇다면 알려진 대로 수컷은 새끼가 깨어나면 삶을 마감할까. 이 박사는 “새끼가 깨어나면 곧 죽는 게 아니라 번식기가 끝날 때까지 살아 있다. 또 1년 넘게 살기도 했는데 수명은 2~3년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적은 수의 알을 둥지에 낳아 잘 보살핀 덕에 잔가시고기의 부화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중앙내수면연구소
사실, 부성애가 가시고기만의 행동도 아니다. 채병수 담수생태연구소장(어류학)은 “버들붕어와 가물치는 둥지를 만들어 돌보고 꺽지, 동사리 등은 돌 밑에 알을 낳아 지킨다”며 “해마처럼 수정란을 주머니에 담거나 아예 입속에 보관하는 시클리드 등은 부성애 측면에서 가시고기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부성애'일 뿐 실제로는 생식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석호영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가시고기류에서는 알을 잘 키우는 수컷이 암컷에게 인기가 높다"며 "심지어 좋은 아빠라는 증명인, 다른 암컷의 알을 키우는 '유부남'을 더 좋아하는 암컷도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남의 둥지를 빼앗아 자신이 아빠 행세를 하거나 자신이 짝짓기 해서 얻은 알을 뺀 나머지 알을 먹어 버리기도 한다. 석 교수는 "이런 행동은 큰가시고기에서 주로 관찰되는데 사람이라면 부성애는커녕 가정 파괴범이나 유괴범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말했다.
당시 동해는 호수와 비슷한 상태
가시고기의 가치는 정작 자연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잔가시고기는 강원도 고성군 명파천, 자산천 동해 북부와 경북 포항 형산강, 울산 태화강 등 동해 남부, 그리고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 일부 수역에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멸종했다.
큰가시고기과 어류는 북방계 어종이어서 빙하기 때 옛 아무르강의 영향을 받은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에서만 산다. 그렇다면 빙하기 때 옛 황하의 지류였던 낙동강에 어떻게 잔가시고기가 살게 됐을까.
1980년대부터 어류학자들은 동해 하천에 주로 서식하는 잔가시고기가 뜻밖에 금호강 일부 수역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익수 전북대 교수 등은 동해로 흐르던 형산강 상류 일부의 유로가 바뀌어 금호강 쪽으로 흐르게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그런 ‘하천 쟁탈’ 가설을 유전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석호영 교수 등은 지난해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에 실린 논문에서 잔가시고기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집단유전학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한반도의 잔가시고기는 빙하기 때 러시아 연해주 쪽에서 이주해 왔고 금호강 집단은 동해 남부 집단이 지각변동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러시아 집단과 한반도 각 지역 집단의 돌연변이 정도를 비교했더니 약 139만년 전 빙하기 때 러시아 가시고기가 남하해 한반도 잔가시고기로 분화했음이 드러났다. 당시 동해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200m 낮아 호수와 비슷한 상태였고 다량의 강물이 유입해 염도는 현재의 59% 수준이었다.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 서로 연결돼 있지는 않았지만 홍수가 났을 때 염도가 낮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연구자들은 보았다. 석 교수는 “동해 북부와 남부 집단은 각각 독립적으로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해에 연속적으로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시 남하할 수 있던 기회의 창은 아주 짧은 기간만 열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식지 규모 작고 주변 공사 많아
» 잔가시고기의 서식지인 울산 태화강 하류. 물이 잔잔하고 맑으며 수초가 많은 곳을 좋아한다. 연합뉴스.
이 연구에서 금호강 집단은 약 31만년 전 동해 남부 집단으로부터 분화한 것으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양산단층이 16만~51만년 전 움직인 사실에 주목했다. 지층이 무너져 내리고 솟는 단층운동이 형산강 상류의 유로를 금호강으로 바꾸었고, 그곳에 살던 잔가시고기는 이후 섬처럼 고립·진화해 현재의 집단을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한반도 잔가시고기의 유전 다양성은 매우 낮았다. 소수의 조상이 남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같은 잔가시고기로 취급해 왔지만 세 분포지의 잔가시고기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석 교수는 “동해 북부와 남부, 금호강 집단은 유전적으로 완전히 달라 별개의 종으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채병수 박사는 “3개 지역 잔가시고기가 형태적으로도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새로운 종으로 나누는 것은 전체 가시고기류 분류의 틀까지 건드리는 문제여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보잘것 없는 작은 물고기이지만 잔가시고기는 유전다양성 보전 측면에서 보호 가치가 매우 높다. 조홍섭 기자
어쨌든 이 연구 결과는 잔가시고기의 보전과 관리를 위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물고기는 2005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됐지만 2012년 보호종에서 빠졌다. 석 교수는 “서식지가 넓고 개체수도 많다는 이유로 보호종에서 제외했지만 사실 다 다른 종이어서 분포지도 좁고 개체수도 많지 않다”며 “멸종위기종에서 빼서는 안 되는 종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서식지 규모가 작은 금호강 집단은 위태롭다. 석 교수는 “금호강 서식지는 100~200m 범위에 불과한데 주변에서 공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병수 박사는 “제방 공사를 하면서 하천을 직강화하고 하천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공사는 가시고기뿐 아니라 모든 물고기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유전적 차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잔가시고기를 증식해 마구 방류하는 일도 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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