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의 ‘대동계’와 이석기의 ‘알오(RO)’- 박근혜 시대, 선조시대보다 나아진 게 뭐란 말인가
역사에는 숱한 비극이 있었고, 그 비극 속에는 으레 비운의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3년 전인 1589년에 발발한 기축옥사는 조선시대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비극적 사건의 소용돌이에는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라는 희귀한 비운의 주인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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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스페셜’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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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에 죽은 정여립은 최소한 그가 죽기 6년 전까지는 당대 최고 수준의 엘리트로 살았다. 전라도 전주에서 군수, 첨정(종4품)을 지낸 정희중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4세 때인 1570년(선조 3년)에 과거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1583년 예조좌랑(정6품)이 되었고, 이듬해 청요직인 홍문관 수찬(정5품)에 등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여립은 당대의 최고 중요 인물이었던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등으로부터 각별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이가 영수 격으로 있던 서인 편을 이탈하여 동인의 편에 가담한다. 그리고 이 석연치 않은 당파 변경은 그의 비운을 촉발하는 동기가 되었다.
정여립은 군주(선조)가 자기의 당파 변경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자 홀연히 관직을 내던지고 전라도로 낙향해 버린다. 이후 그가 전라도에서 벌인 일은 ‘대동계’라는 이름의 무사 결사체를 조직하여 활동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모반죄로 고발당하여 도망했다가 관군의 포위를 받게 되자 자결해 버렸다.
이와 달리 서인 편에서 기획적으로 정여립을 유인하여 죽이고는 자결한 것으로 보고함으로써 그의 모반을 기정사실화하려 한 음모였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정여립의 관직 사퇴와 갑작스런 죽음은 둘 다 매우 이례적이고도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이것은 그만큼 그의 성정과 인격이 직정적이고 비범했음을 짐작케 한다.
정여립은 분명히 ‘비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동계라는 이름 자체에서도 모종의 변혁 지향이 읽히는 데다, 그는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될 수 있다(何事非君)’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왕촉(王燭)의 것이고 후자는 맹자(孟子)의 것이지만, 당시 보수적인 왕조국가였던 조선의 권력자들로서 정여립의 생각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정여립을 선구적인 혁명 사상가로 인정한다. 그렇긴 해도 당대로서 그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모반 인물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여립이 직접 조직하여 활성화한 대동계는 결사체로서 ‘실체’였다는 점이다.
“여립이 본디 발호(跋扈)하는 뜻이 있었는데 억누름이 심하게 되자 배반하려는 모의를 더욱 펴게 되었다. 이에 강학(講學)을 가탁하여 무뢰배를 불러 모았는데, 무사와 승도(僧徒)들도 그 가운데 섞여 있었다. 여립은 서적을 중국에서 사다가 무리들과 강설(講說)하였고, 국가에 장차 임진왜변(壬辰倭變)이 있을 것을 알고 때를 타고 갑자기 일어나려 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계(大同禊)를 만들어…(후략)” (선조수정실록 23권, 선조 22년(1589년) 10월 1일 자 기사 발췌)
이로부터 420년이 지난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현직 국회의원 이석기가 정권으로부터 불온한 인물로 낙인찍히는 일이 빚어진다. 이석기는 친일 행적을 보인 음악가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종북보다 종미가 더 문제’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이석기는 ‘숭미’의 행적을 보인 한 부도덕한 인사의 장관 임용을 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도한 권력일지라도 이런 것들만으로는 그를 잡아 가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프락치를 사서 가공해낸 것이 이른바 ‘알오(RO, Revolution Organization))’라는 결사체였다. 그러나 알오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 사법기관에 의해 최종 판정되기에 이른다.
2014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문제의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자체가 미지수이며 검찰이 내놓은 증거들로는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로는 RO의 결성 시기와 과정, 조직 체계, 회합 참석자 130여명의 가입 여부 등의 활동 내역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RO가 존재하고 이 의원 등이 그 구성원이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의 핵심증거인 제보자 이 모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말단 세포원이었던 이 씨가 조직의 다른 구성원이나 체계는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회합 참석자들이 RO의 구성원이라는 이 씨의 진술, 그리고 RO의 성격, 구성원 및 조직 체계 등에 대한 설명은 개인적인 의견 내지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알오의 비실체성을 명백히 천명한 것이다. 420년 전 정여립은 제거되었고 오늘의 이석기는 격리되어 있다. 그런데 두 사건은 비슷한 것 같지만 판이하게 다른 면도 있다. 정여립의 대동계는 실체가 있었지만 이석기의 알오에는 실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석기는 9년 장기형에 7년 자격정지형을 선고 받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박근혜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박근혜 시대는, 조선을 안다고 하는 오늘의 사람들이, 조선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경멸해마지 않는 선조시대보다 과연 나아진 것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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