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결국은 통과되었다. 그런데 이 건의안이 가결되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의 표결 강행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또 야당 단독으로 건의안을 통과시킨데 대해 새누리당은 향후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청와대 또한 국회의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면돌파하기로 결정, 정기국회 시작부터 정국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기류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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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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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해임건의안 상정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는 이 안건이 성립되지 않게 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해임건의안을 막기 위해 새누리당이 사실상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것이다. 의총을 두 시간 반이나 하는가 하면, 밥먹고 하자며 단상을 점거해서 결국 정회에 들어갔다. 그리고도 대정부 질문이란 ‘합법적 방식’을 동원, 장관들에게 마음껏 발언하게 하는 등 사실상의 필리버스터를 자행했다.
국무위원들이 여당과 공조하여 답변으로 필리버스터에 임하는 광경은 정말 기가 막힌 현실이었다. 그래도 이런 작전이 통하지 않고 해임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건의안 본회의 가결 처리를 ‘국회를 뒤흔드는 날치기 만행’이라며 “더민주와 정세균 국회의장은 무효를 선언하고 국민께 사죄하라”고 촉구하면서 국회일정 전면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날 의총에서 나온 말을 보면 새누리당의 분개 정도를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은 “향후 국회 파행사태에 대한 책임은 정 의장과 불법 날치기 처리를 한 정당에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새누리당은 이번 폭거에 결연히 맞서기 위해 국회 일정은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국회의 책임과 의무를 내던지고 국회법을 명백히 위반하고, 대결과 갈등, 혼란과 불안을 선택한 정 의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더 나아가 “법적 요건, 절차와 내용, 명분조차도 상실한 이번 해임건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절대수용 불가’를 공식 요청한다”며 “해임건의안은 무효”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밖에 “대통령을 흔들고 국정혼란을 일으켜 정파적 이익만 챙기려는 위험한 정치테러는 협치와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는 준엄한 민심을 정면으로 배신하고 유린한 국민모독 행위”라며 “새누리당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민과 함께 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일에 혼신을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이 의회권력에 취해서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광란의 질주를 하려 하고 있다”면서 “정세균 의장은 비열하고 교활한 의원으로, 사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며 국회의장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의장에 대한 사퇴촉구 결의안 제출,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 및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모든 의사일정 중단, 권한쟁의 심판 등을 추진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자세는 새누리당이 자신들이 가진 법적 권한을 모두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이런 행위는 자신들의 지난 과거 행위를 욕하는 누워서 침 뱉는 짓이다.
지난 2001년 9월2일 국회본회의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다. 이날 실시된 무기명 비밀 투표 표결에는 재적 의원 271명 가운데 267명이 참가, 찬성 148명 반대 119명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 전원찬성과 자민련 의원들의 동조였다.
애초 DJP연합정권으로 출범했던 국민의정부는 2000년 총선에서 자민련의 참패 이후 김대중-김종필 협치가 소원해졌으며 이 해임안 투표에서 자민련은 적극적이었다. 즉 임 장관이 그해 열린 8.15평양대축전에 대규모 남측 인사들을 보내는 화해정책을 가속화하자 김종필 총재는 임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지만 김 대통령은 거부했다. 이로써 DJP엽합은 확실히 붕괴되었다.
이때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해임안 가결 후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승리가 아니라 현 정권의 잘못된 대북정책을 바로잡고 국가의 자존심을 보전하고자 하는 국민의 승리”라고 말하는 등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가결처리에 대해 정권을 이긴 힘을 가진 것에 의기양양했다.
이뿐 아니다. 이 후에도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에서 김두관 행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도 가결시켰다. 이때는 2003년 9월3일, 노무현 정권 출범 첫해다. 149석의 거대 야당 지도부가 신임 노무현 정권과 힘겨루기에서 ‘퇴로없는 전쟁’을 선언하면서 타킷을 김두관으로 잡았다.
해임안 사유도 엉뚱했다. 2003년 8월 한총련 학생들은 포천에서 훈련하던 미군부대 사격 훈련장에 진입하여 성조기를 불태우고 장갑차를 점거하는 등 강경시위를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행자부 장관이 이를 막지 못했다며 해임건의안을 제출하여 거의 한나라당 단독으로 가결시킨 것이다. 표결에는 160명이 참여, 찬성 150표, 반대 7표, 기권 2표, 무효 1표였다. 당시 한나라당 의석이 149석이므로 이탈표가 거의 없었으며 자민련 의원 소수가 찬성표를 던진 한나라당 단독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임안 처리 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만약 대통령이 해임을 거부하면 대한민국 정치현장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홍준표 의원은 ‘위헌 탄핵’가능성을 거론했으며,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 불인정’ 주장을 하고 나섰다. 소수여당과 대통령을 다수의 힘으로 압박한 좋은 사례다.
이랬던 새누리당은 지금 김재수 해임건의안 가결을 두고 “법적 요건, 절차와 내용, 명분조차도 상실한 이번 해임건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절대수용 불가’를 공식 요청한다”며 “해임건의안은 무효”라고 주장하거나 “대통령에게 ‘불수용’을 건의하겠다” 등으로 국회의 의사를 묵살하고자 한다.
그리고 청와대는 당당하게 “해임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뒤 연합뉴스는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려 “야당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은 부당한 정치공세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김 장관을 사퇴시키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는 점을 보도했다.
이어진 이 보도는 박 대통령도 ‘해임건의 수용불가’ 원칙 아래 야당의 공세를 정면돌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쓰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려 “박 대통령은 정치공세용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해임건의안은 말 그대로 해임건의일 뿐이고 장관을 퇴진시킬 아무런 사유가 없는 만큼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만약 박 대통령이 이 건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말 그대로 국정은 혼란 그 자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87년 개헌 이래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장관이 모두 물러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은 해임건의안 통과 후 '장관 퇴진'을 수용하지 않은 첫 사례가 되므로 이를 야당 측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치현장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당시 김무성 의원 말대로 ‘대통령 불인정’론도 나올 수 있다.
앞서 거론한 국민의정부 임동원 통일부 장관은 해임건의안 가결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해 사흘 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부분개각을 단행하며 물러났다. 참여정부 김두관 행자부 장관은 해임건의안 통과 14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틀 뒤 사표를 수리했다. 국민의정부도 참여정부도 거대야당의 힘으로 통과시켰지만 국회의원들의 헌법적 행위를 존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정부는 해임건의안 자체가 장관을 사퇴시킬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통령과 정부의 법적 요건을 말할 뿐 국회의 헌법적 권위와 그 법적 행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직선 대통령이 국민직선 국회의원들의 헌법행위를 불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오만이며 정국을 나락으로 끌고가는 악수다. 이 나라는 대통령만 중요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선언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선의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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