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도 벼랑 끝에서 나를 보다

관매도 벼랑 끝에서 나를 보다

휴심정 2017.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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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아이들.jpg» 관매도 해변의 아이들. 사진 이병학 기자 

  작년 가을 남쪽 바다 관매도에 갔더랬습니다. 몇 시간만 걸으면 마을들을 다 둘러 볼 정도로 작은 섬이었습니다. 사는 이들도 얼마 안 되었습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올랐습니다. 능선에서 바라본 섬 남쪽은 무수한 물결들이 하염없이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벼랑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벼랑과 파도.
  조선시대 함허 스님의 금강경 해설 한 대목 풍광이 거기 그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금강경 가르침을 한마디로 줄이면 ‘무상(無相)’입니다. 세상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것이 정말로 확고하게 실체로 존재하는 양 여기지 말라. 상(相)을 가지지 말라.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상, 내가 깨달았다는 상, 내가 보시를 베푼다는 상... 상(相)을 내지 말라.

  함허는 이 무상의 반야지혜(般若智慧)를, 어디 손잡을 곳을 허용하지 않는 가파른 수미산 벼랑 꼭대기와 수없이 해안에 몰려와 부서지는 파도에 비유했습니다.

  “須彌頂上(수미정상) 외외묘난반(嵬嵬杳難攀); 수미산 꼭대기 가파르고 아득하여 부여잡고 오르기 힘들어라”
 “大海波心(대해파심) 浩浩沒涯岸(호호몰애안); 너른 바다 파도 구비구비 끝없이 물가에 몰려와 스러지고”
  스님이 이 남쪽 섬에 오셨더랬나?

-관매도.jpg» 관매도 전경. 사진 김성광 기자 
멀리 망망대해가 내려다보이는 인적 끊긴 산등성이 동백나무 숲에 누워 황동규의 연작시 “풍장1”도 떠올려 봅니다. 바람에 시신 장사지내는 풍장(風葬).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스님은 벼랑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무상(無相)’의 반야지혜를 떠올렸고, 그 후 몇백년이 지나 시인은 무인도에서 화장도 해탈도 없이 햇빛과 바람에 살을 말리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 나는 머나먼 남쪽 섬 관매도 산 정상에서 스님의 ‘무상’과 시인의 ‘풍장’을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저 옛날 스님이나 엊그제 시인이나 지금 나나 다 같은 바다로 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간을 달리해 잠시 일어난 물결이요, 저 벼랑에 부딪쳐 하얗게 포말이 되어 또 같은 바다로 돌아갑니다. ‘같은 바다.’

  작년 가을 관매도에서는 바다 멀리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깊은 바다 속에 잠긴 세월호를 꺼내려는 해상 크레인의 육중한 기둥이 어렴풋이 보였더랬습니다.
  그리고 올 봄. 곡절 끝에 육지로 끌려올라온 배 객실에서 옷에 쌓인 백골이, 복도에서 어금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함허가 돌아간,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시인과 내가 돌아갈, 저‘같은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바다로부터 잠시 일어난 물결로 바닷가 벼랑을 향하여 일렁이며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저 아이들을 죽게 만든 책임도 물어야 할 게고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우리 사고방식과 자본주의 체계도 바꾸어 나아가야 할 터입니다. 하지만 왜 이런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언제나 늘,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타고르 시인은 ‘바닷가에서’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더군요.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폭풍우는 길 없는 하늘을 헤매고, 배는 길 없는 바다에 난파하여 죽음이 넘치는데 아이들이 장난을 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크나큰 모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년 뒤에나 바닷가에 가면 늘 아이들이 뛰어다닙니다. 마치 바다에 늘 파도가 일렁이듯이 말입니다.
  벼랑으로 몰려드는 파도를 보던 스님이 바로 시인이고 또 나입니다.
  그러니 바다에서 잠시 인 물결이 ‘내가 나다’하는 상을 내지 말고, 그저 ‘바다에서 잠시 일어나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다’라 여기면, 저 백골로 돌아온 세월호 아이들이 좀 덜 가여울까요?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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