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안중근 동상' 미스터리... 시진핑 지시 여부도 논란


17.07.12 20:49l최종 업데이트 17.07.12 20:49l






 의정부시가 밝힌 '안중근 동상 설치 조감도'.
▲  의정부시가 밝힌 '안중근 동상 설치 조감도'.
ⓒ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제작돼 국내에 반입된 뒤 현재 의정부시(시장 안병용) 모처에 보관 중이라는 '안중근 의사 동상'의 행방이 묘연하다. 의정부시가 안중근 동상의 소재 여부를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동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제작됐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안중근 의사와 연고가 없는 의정부시에 동상이 세워진다는 점을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의정부시가 혈세를 들여 과정과 배경이 불명확한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 의정부시 관계자는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중근 동상이 5월 중순 인천항을 거쳐 의정부에 도착했다, 한중 관계를 고려해 그동안 공개하지 않고 모처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1일 의정부시 공보팀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직 안중근 동상이 국내에 들어온 게 아니다"라면서 "안중근 동상 제작이 추진 중에 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의정부시가 밝혀온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다.

안중근 동상의 의정부시 유치는 안병용 의정부시장의 숙원사업이다. 의정부시는 그동안 "2013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당시, 시 주석이 안중근 동상 제작을 지시했다"며 "민간단체인 차하얼학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안중근 동상을 의정부시에 유치할 계획이다, 동상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라고 밝혀왔다. 중국 동상 제작을 맡은 차하얼학회는 한화 16억 원을 들여 동상을 제작해 의정부시에 기증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안병용 시장의 관심 역시 지대하다. 안 시장은 2014년 9월 19일 차하얼학회가 개최한 차하얼 평화포럼에 참석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고찰과 현대적 재조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동상 유치에 공을 들여왔다. 같은 해에는 2014 안중근평화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월엔 "동상, 모처에 보관 중"... 7월엔 "동상, 현재 한국에 없다"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의정부 장암동 인근에서 열린 동부간선도로 개설 준공식에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축사하고 있는 모습.
▲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의정부 장암동 인근에서 열린 동부간선도로 개설 준공식에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축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의정부시 관계자들은 그동안 나왔던 의정부시의 반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복수의 의정부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안중근 동상 세우기 사업은 현재 추진 중"이며 "안중근 동상은 현재 한국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 사업에 관여했던 관계자 A씨는 "사드 때문에 한중 관계가 안 좋지 않나, 중국에서 동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지금의 외교 상황 상) 한국에 (동상을) 줄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지난 6월 의정부시는 왜 '의정부시가 안중근 동상을 보관 중'라는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요청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까. 의정부시 공보팀 관계자 B씨는 "(해당 언론 보도에 대해) 따로 대응하라는 지시가 없어서 정정보도요청 등을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안병용 의정부시장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공보팀은 "시장님 일정이 바빠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정부 시민모임 '버드나무포럼'은 12일 안중근 동상에 대한 의정부시의 엇갈린 설명을 비판하고 나섰다. 버드나무포럼은 의정부시에 '안중근 동상의 의정부 도착에 관한 정보 일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구진영 버드나무포럼 이사는 "행정 기관이 시민을 상대로 거짓말하면 안 된다, 만약 동상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의정부시는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해야 하고, 기사에 언급된 '시 관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라며 "만약 동상이 도착했다면 의정부시는 어느 곳에 동상을 보관 중인지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시진핑, 동상 제작 지시했다" vs. "한중 정상간 동상 관련 약속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을 마친뒤 환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6월 27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을 마친뒤 환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안중근 동상의 제작 배경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의정부시는 그동안 해당 동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에 의해 제작됐다'라고 밝혀왔다. 안 시장은 지난 2015년 5월 14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한중 공공외교 평화포럼'(의정부시·차하얼학회 공동 주최)에서 "(2013년) 한중 정상회담 때 박근혜 대통령이 하얼빈역에서 역사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자 시진핑 주석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제작을 지시했다"라면서 "이에 차하얼학회가 쌍둥이 동상을 만들어 한국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하얼빈역에서 만난 2013년 6월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시 주석의 안중근 동상 제작 지시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기념 표지석을 하얼빈역에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시 주석이 "관련 기관에 이를 잘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답했다는 기록은 있다.

외교부 동북아3팀 관계자는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시 주석의 안중근 동상 제작 지시가 있었는지 파악된 게 없다, 한중 정상간의 논의에 따라 진행된 것은 안중근 기념관 개관뿐이다"라고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같은 반응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안중근 동상 제작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 정부간 약속된 사안은 없다"라면서 "시 주석이 차하얼학회에 따로 지시했을 수 있는데, 이는 중국 국내 정치 사안이므로 외교 라인에서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차하얼학회의 대표인 한핑밍(韓方明) 주석은 2016년 12월 의정부·차하얼 공공외교 평화포럼 연설에서 "차하얼학회가 의정부시 시민들에게 선물할 '대한의사 안중근' 대형 동상이 이미 완성돼 적당한 시기에 의정부 기차역 평화공원에 설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이와 관련해 차하얼학회에 시 주석 지시 여부를 확인하고자 문의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중근과 관련 없는 도시 의정부, 왜 동상 유치할까"

'왜 안중근 동상이 의정부시에 설치돼야 하나'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구진영 이사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나 왜 의정부시에서 이 사업에 적극적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의정부시가 밝힌 동상 설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 의정부시가 경기 북부 독립운동 활동의 근거지이며 평화·통일의 중추적인 곳에 있다는 점 ▲ 한중우호관계 증진 ▲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바로 그것. 

하지만 안중근 의사 관련 단체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인물과 연결고리가 있는 곳에 동상이 세워지는데 의정부시는 안중근 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면서 "2006년에 중국 하얼빈에 세워졌다가 열흘 만에 중국 정부에 의해 철거된 안중근 동상이 (안 의사와 관련이 없는) 2009년 부천에 세워진 것도 부천시와 하얼빈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부천시는 안중근 동상을 유치하면서 동상 주변에 '안중근 공원'을 조성했다. 또한 관련 단체는 이 공원에서 매년 안중근 의사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한편, 의정부시가 들여온다는 안중근 동상 디자인은 그동안 차하얼학회가 여러 단체 및 기관에 기증해왔던 동상 디자인과 동일하다. 차하얼학회는 2014년 4월 안중근의사숭모회에 소형 동상(높이 40cm가량)을, 같은 해 5월에는 북경은제예술관(北京银帝艺术馆)에 소형 동상을 기증했다.

안중근 동상을 둘러싼 의정부시의 불명확한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진영 이사는 "안중근 동상을 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의정부시가 투명하지 않은 과정으로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추진하는 건 큰 문제다"라면서 "게다가 시진핑 주석이 동상 지시를 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의정부 시정을 홍보하는 건 보여주기 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안중근 동상이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절차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예산만 쓰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4월 차하얼학회가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안중근 의사 소형 동상. 의정부시가 유치하겠다는 동상과 같은 디자인이다. 크기만 다를 뿐이다.
▲  지난 2014년 4월 차하얼학회가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안중근 의사 소형 동상. 의정부시가 유치하겠다는 동상과 같은 디자인이다. 크기만 다를 뿐이다.
ⓒ 안중근의사숭모회 제공

 지난 2014년 5월 차하얼학회가 중국 북경은제예술관에 기증한 안중근 의사 동상. 의정부시가 유치하려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디자인이 동일하다.
▲  지난 2014년 5월 차하얼학회가 중국 북경은제예술관에 기증한 안중근 의사 동상. 의정부시가 유치하려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디자인이 동일하다.
ⓒ 차하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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