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 끝판왕, 죽은 자도 살려냈던 조선시대 ‘아전’

‘더 강력해진 박원순표 공직쇄신안, 부정부패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임병도 | 2017-07-25 09:38:0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중 청백리는 단 218명에 불과할 정도로 조선시대는 부정부패가 심했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를 뜻합니다. 의정부 및 사헌부, 사간원 등의 추천을 받아 임금의 결재를 받아 내리는 칭호입니다. 청백리는 후손들에게 벼슬을 할 수 있는 특전을 줄 만큼 명예롭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공무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을 ‘청백리상’이라고 할 정도로 그 의미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청백리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1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정에 청백리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은 있으나, 오직 뇌물을 쓰는 자들이 벼슬을 하고 청백리 자손들은 모두 초야에서 굶주려 죽고 만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왜 조선시대에는 청백리가 그토록 적었고, 뇌물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많았을까요?

‘월급을 받지 않았던 조선시대 공무원’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를 ‘아전’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정식 공무원보다는 대를 이어 지방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명예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관청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리켜 ‘경아전’, 지방관아는 ‘외아전’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세금 징수나 지방의 잡무, 수령의 둔전을 관리하는 업무 등을 맡았습니다.
▲ 황구첨정, 백골징포 등의 폐단이 조선 시대에 만연했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군포나 공납의 폐단을 없애려고 했지만,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오늘의조선왕조실록 유튜브 화면 캡처

조선시대 지방행정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유 중의 하나가 아전입니다. 왜냐하면, 아전에게는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아전’은 원래 녹봉이 지급됐지만, 나라에서 지급하지 않거나 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지방 아전은 아예 월급 자체가 없었고, 오히려 관아에서 쓰는 비용 등을 자신의 돈으로 채워야 할 때가 잦았습니다. 고정적인 급여가 없다 보니, 아전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통해 모자란 급여를 대신했습니다.
아전의 비리가 제일 심한 것이 ‘세금 착복’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세금은 ‘군포’와 ‘공납’이 대표적입니다.
군대에 가야 하는 장정이 농사 등의 생계를 위해 일 년에 베 2필을 내면 ‘군역’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전들은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군역을 물리는 ‘황구첨정’,이미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둔갑해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군역을 피해 도망간 사람의 군포를 이웃이나 친척과 이웃에게 물리는 ‘족징’과 ‘인징’을 통해 세금을 착복했습니다.
공납은 원래 세금을 지방 특산물로 내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이나 특산물 대신에 방납업자의 물건을 구입해 내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아전들은 상인과 짜고 시가보다 수십 배 비싼 물건을 사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아전은 상인으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조선시대 세금을 거둬들이는 행정 실무를 맡은 아전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각종 세금을 착복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조정의 재정은 약해졌습니다.

‘양반까지 무시했던 아전의 권력’
▲조선시대 고을 관아의 모습. 수령과 아전이 서 있고 백성이 앉아 있다 ⓒ구글이미지

근래 아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에서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 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은 자가 고을 안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나하며 자(字)를 부른다. (정약용, 목민심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보면 아전이 얼마나 위세가 높았는지, 중인 계급임에도 양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전이 이토록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 사정과 실무에 밝아 수령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령이 아전을 무시하면 태업이나 파업 등으로 수령을 골탕 먹이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지방 관아로 내려오는 수령은 지방 사정을 잘 몰라 아전에게 실무를 맡겼습니다. 아전들은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고 뒤로 더 많은 세금을 빼돌려 자신들의 곳간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수령은 임기를 떠나면 그만이니, 백성들은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아전을 더 무서워했습니다.
요새도 공무원 사회에서 선출직 시장이나 도지사는 선거 때면 사라져도, 공무원은 평생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의 입김에 따라 인허가 업무가 지연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본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오히려 말단 공무원이 더 껄끄럽습니다.

‘더 강력해진 박원순표 공직쇄신안, 부정부패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부정비리 차단 종합대책 ⓒ라이브서울 화면 캡처

지난 7월 19일 서울시는 ‘부정비리 차단 6대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동일 인‧허가 업무 5년 이상 담당 공무원의 전보 의무화로 부정부패를 사전 차단하는 등의 공직쇄신안을 담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차단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박원순법’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최근에 버스업체의 노선 신설 조정과 증차 등과 관련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전‧현직 공무원이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박원순법 (서울시 공무원 행동강령): 서울시 공무원이 직무와 관계없이 단 돈 천 원만 받아도 중징계, 한 번만 걸려도 ‘원 스트라이크 아웃된다. 고위공직자와 가족 보유 재산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도 심사받는다.
과거보다 현저히 줄었지만, ‘김영란법’보다 더 강하다는 ‘박원순법’이 있음에도 서울시 공무원들의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업무를 맡았던 퇴직공무원이 현직 공무원에게 뇌물과 압력 등을 통해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직 공무원이 퇴직 공무원과 골프, 사행성 오락, 여행, 행사 등의 사적 접촉을 제한하고, 만약 만났다면 서면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박원순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아전처럼 실무에 밝은 공무원들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무원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의 감사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입니다.
다행히 서울시는 이번에 안전, 토목, 소방, 수도 등 기술 감사 분야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된 ‘시민감사자문단’과 시민들의 제보와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시민 감사요청란’을 홈페이지에 개설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아전처럼 비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퇴근하라고 해도 퇴근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공무원도 많습니다.
문제는 소수의 비리 공무원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이 더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을 놓고 본다면 비리 공무원은 더 철저하게 처벌하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에게는 진급 등의 혜택을 줘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전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이 부정부패를 발견하면 신고할 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불법 민원이나 단순 불평불만이 아니라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감시 활동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서울시도 이번 기회를 통해 법과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 부정부패를 원천 차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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