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원장 비판하려다 정신병원 간 스님, 불자들이 나섰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불교계 언론인 <불교 닷컴> <불교포커스>와 함께 '불교 적폐 청산' 공동기획 기사를 내보낸다. [편집자말] |
▲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하고 있는 적광 스님. | |
ⓒ 김병기 |
[이전 기사] 납치 폭행 당한 스님, 지금은 정신병동에
한 달 전 정신병동에서 만났던 적광 스님(운정 스님)은 결국 경찰을 고소했다.
스님은 2013년 8월2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집단 폭행 사건 피해자다. 이번에 고소한 경찰은 그가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종로경찰서 소속 그 경찰이다. 당시 스님이 신변 보호를 요청해 출동했는데도 경찰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실상 직무유기했다. 적광 스님이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한 이유다. 스님은 골절상 등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고, 지난 4년간 정신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7월 19일 전철과 KTX, 버스, 택시를 갈아타면서 그가 은거하는 곳에 도착하니, 녹색 철망 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마중 나왔다. 환자복이 아니라 밀짚모자에 승복을 입었기 때문일까? 그는 한 달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적광 스님(운정스님)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농가주택을 개조한 곳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서까래가 드러난 처마 밑에 까치집이 보였다. 쪽마루에 올라 한 평 반 남짓한 방에 들어갔다. 책장에는 <서양 철학사> <인도 철학사> <코란> <플라톤의 국가론> 등 묵직한 책이 꽂혀 있다. 경전 공부하면서 수기로 써서 요점을 정리한 파일도 100여개나 있다.
"요즘은 책을 못 봅니다. 우울증이 심해서. 전에는 공부를 많이 했지요. 파일을 정리해서 책도 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폐인이 다 됐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평온하던 표정이 굳어졌다.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등을 뒤로 젖혔다. 잠깐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4년 전 공포스러운 장면이 스쳤다.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할 말이 남은 까닭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그의 말을 노트북에 담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다. 그와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와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벤치에 앉아 한 시간마다 한번 오는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4년 전, 그가 조계사 앞에서 호법부 승려들에 의해 납치돼 끌려가면서 외친 뒤 이번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한민국 경찰, 이건 아닙니다."
적광 스님(운정스님)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농가주택을 개조한 곳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서까래가 드러난 처마 밑에 까치집이 보였다. 쪽마루에 올라 한 평 반 남짓한 방에 들어갔다. 책장에는 <서양 철학사> <인도 철학사> <코란> <플라톤의 국가론> 등 묵직한 책이 꽂혀 있다. 경전 공부하면서 수기로 써서 요점을 정리한 파일도 100여개나 있다.
"요즘은 책을 못 봅니다. 우울증이 심해서. 전에는 공부를 많이 했지요. 파일을 정리해서 책도 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폐인이 다 됐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평온하던 표정이 굳어졌다.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등을 뒤로 젖혔다. 잠깐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4년 전 공포스러운 장면이 스쳤다.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할 말이 남은 까닭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그의 말을 노트북에 담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다. 그와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와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벤치에 앉아 한 시간마다 한번 오는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4년 전, 그가 조계사 앞에서 호법부 승려들에 의해 납치돼 끌려가면서 외친 뒤 이번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한민국 경찰, 이건 아닙니다."
▲ 4년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호법부 승려들에게 납치되는 적광 스님. | |
ⓒ 불교닷컴 |
[4년 뒤] "용서할 수 없다"
적광 스님의 절규는 4년 뒤인 지난 7월 13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그는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자, 제가 먼저 외치겠습니다. 적광 스님이 호법부 승려들에게 끌려가면서 외친 말이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적광스님 폭행에 따른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의 사회자인 '명진 스님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의 조영선 변호사가 선창하자, 참석자들은 따라 외쳤다.
적광 스님과 정의평화불교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바른불교재가모임, 명진스님제적철회를 위한 원로모임 등은 당시 폭행에 가담한 7명의 호법부 소속 승려와 재가 종무원,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1명의 고소‧고발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접수했다.
호법부 소속 승려들은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경찰관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다. 적광 스님이 4년 전 '나홀로 소송'을 해서 1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폭행 가해자 2명(승려 1명, 재가 종무원 1명)은 제외됐다.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적힌 고소‧고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지난 7월13일 서울 조계사 일주문에서 열린 '적광스님 폭행에 따른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 | |
ⓒ 불교닷컴 |
1) 적광 스님의 탄원, 기자회견에도 자승 총무원장의 도박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2) 집단 폭행에 따른 상해행위임에도 승려 및 재가 종무원 2인만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3) 형사처벌 받은 2인에 대한 조계종단의 징계도 없었고, 그들은 현재 그 직을 수행하고 있다.
4) 고소인은 집단 폭행 트라우마로 현재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5) 조계종 내의 폭행, 도박 등 위법, 일탈된 행위가 빈번함에도 자정 내지 처벌되지 않고 있다.
6) 국민을 보호하고 위법행위를 저지해야 할 경찰관은 오히려 방관함으로써 폭력행위가 노골적으로, 집단적으로 전개되도록 용이하게 하였다.
"그날 제가 외친 것에서 '대한민국 경찰'이 빠졌네요. '이건 아닙니다'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 이건 아닙니다'였습니다. 납치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5명의 경찰관들에게 '제발 나를 구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경찰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들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신경을 안정시키는 정신과 약을 매일 한 주먹씩 입에 털어 넣어도 꺼지지 않는 분노. 이걸 이해하려면 2013년 8월 21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 청사 앞 우정공원 입구 인도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아야 한다. 아래 영상을 클릭하면 적광 스님이 이곳에서 13명의 호법부(조계종 경찰-검찰격) 승려와 종무원에게 끌려갈 때 무전기를 들고 지켜보던 경찰이 나온다.
적광 스님은 이날 자승 총무원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납치돼 조계사 경내에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1층으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그가 호법부 승려들이 내민 '환속제적원'(조계종 승적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강제로 지장을 찍고 다시 끌려나와 식당에 갔을 때에도 경찰 2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제 흉측한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경찰들이 경찰서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상황이 끝났는데 무슨 소용이 있냐'고 대꾸했습니다. 경찰에게 '왜 저를 지켜주지 않았냐'고 싫은 소리도 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갔습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늦더라도 추궁당해야 마땅합니다. 이래저래 마음은 무겁지만, 그래서 경찰관도 고소한 겁니다."
당시 납치-폭행 현장을 묵인한 경찰의 행태가 그에게 미친 참담한 상황은 아래 기사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다.
☞ "나는 도살장 끌려온 한 마리 짐승... 1200만원 돈 봉투에 영혼 팔 수 없었다"
[4년 전 열지 못한 기자회견] 자승 원장을 고발하고 싶었다
4년 전 그가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실패한 장소는 을사늑약 후 민영환이 자결로 항거한 우정국 터 앞이다. 적광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재임을 막고 불교계를 바로잡고 싶었다"면서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이 고통과 위협을 무릅쓰고 독재에 항거했듯이 저도 그런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자회견 장소에서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하고 끌려갔다. A4용지 5쪽짜리 기자회견문과 <신동아>의 자승 원장의 도박 의혹 기사 복사본 100여 부도 호법부 승려들에게 빼앗겼다.
- 호법부 승려들은 어떻게 알고 그 자리에 왔나?
"기자회견을 한다고 10여 개의 불교계 언론에 알렸다. 조계종 총무원의 입장에 충실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그걸 총무원에 알렸을 것이다."
- 당시 기자회견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자승 원장의 거액 상습 도박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자승 원장이 재임을 위해서 자기 사람들을 주요 요직에 앉히는 등 불교계를 정치 세력화한다는 비판 내용도 있다."
- 당시 못다한 기자회견을 지금 한다고 해도 같은 생각인가?
"조만간 총무원장 선거가 열릴 텐데, 자승 원장은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줬듯이 자기 후계자를 심어놓고 나갈 것이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불교계의 정치세력화를 완성시켰다. 불교의 미래가 없다. 어쨌든 사람마다 자기 몫이 있는데, 저는 그 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폭행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적광 스님. | |
ⓒ 김병기 |
[찬란했던 그의 과거] 무소의 뿔처럼
<오마이뉴스>가 4년 만에 그를 인터뷰한 기사 (☞ 납치 폭행당한 스님, 지금은 정신병동에)에 달린 댓글 중 이런 게 있었다.
"속세에서의 이종사촌 형으로서 적광스님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누구보다 진리추구에 밝았던 빛나고 찬란했던 젊은 열정을 지녔던 스님을 저렇게 만든 적폐세력은 새로운 정부 출범과 더불어 깨끗이 일소되고 새롭고 정의로운 종단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서박사)
적광 스님도 그 댓글을 보고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데 저를 끔찍하게 아끼던 형이었다"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의 '찬란하고 젊은 열정을 가졌던' 때가 궁금했다. 조계종 호계원(조계종의 사법기관-법원격)이 승적을 박탈해서 '선학원'으로부터 다시 계를 받아 '운정 스님'으로 살고 있는 적광 스님.
대구 능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수재였다. 한양대학교는 법과대학을 키우려고 고시반 제도를 운영했다.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선발해 4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시를 준비하게 했다. 1981년에 그는 한양대에 입학했고, 4년 장학금에 매월 10만원의 생활비도 받았다. 50명의 동기생 중 35명이 고시에 합격했지만, 그는 2학년 때부터 불교에 빠졌다.
"세상의 영광보다는 진리의 세계가 좋았어요. 세상의 길이 모래와 돌의 길이라면 불법의 길은 황금의 세계로 보였습니다. 법구경, 화엄경 등을 보면서 진리 추구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출가를 하려는데 부모님들이 학교 졸업은 해야 한다고 반대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포스코 계열 회사에서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어요. 그 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부모님들이 허락을 했어요. 그 때 39살(2000년)이었습니다."
그는 출가한 뒤에도 서강대 종교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동국대학교는 물론 서강대에서도 장학금을 받았다. 그래도 불교 공부에 대한 갈증은 식지 않았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에 있는 연화사에 들어가 3년 동안 기도만 하고 나왔다. 그는 청송교도소에서 3년 동안 법회를 주관했고 경북 포항 자장암 주지를 지냈다.
- 불교에 귀의해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참선 수행을 많이 하고 싶었다. 깨달음의 세계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옛날 일이 됐다."
- 폭행 사건을 당한 뒤에 환속(다시 속세로 돌아옴)의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
"추호도 없다. 지금 우리의 불교가 타락했지만, 나 혼자라도 바로 살면 그게 승려의 길이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
"맞다."
- 지금도 출가할 때의 그 꿈을 꾸고 있나?
"불교뿐만 아니라 우리 세상이 모두 평화로운 불법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그 꿈을 꾸고 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몸이 빨리 나아지면."
그는 지난 4년간 악몽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약을 끊은 적이 없다. 최근 우울증 증세가 악화돼 35일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담당 의사는 계속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퇴원했고 한 달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때마다 우울증 치료약을 한 보따리씩 가져 온단다.
"몸조리하는 데 전념하고 있어요. 외출은 하지 못하지만, 집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풀도 뽑고 운동도 합니다. 건강했을 때에는 매주말 산행을 할 정도로 건강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니 몸에 힘이 없습니다."
[정신과 치료, 그 후] "조계종 적폐 청산 촛불을 들 때"
▲ 적광스님 폭행 관련 고소고발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재동 화백. | |
ⓒ 불교닷컴 |
최근 적광 스님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후원모임이 생겼다. 스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최근 조계종 승적을 박탈당한 명진 스님 제적 철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조계종 적폐청산시민연대 등이 주축이 돼 후원모임을 결성했다.
지난 13일 조계사 앞에서 열린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 때 적광 스님 후원모임의 공동대표인 박재동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한 달에 한 번씩 비구들을 모아놓고 그동안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비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걸 '포살과 자자'(포살은 자신의 잘못을 대중들 앞에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고 자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잘못을 지적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지적 받는 것.)라고 합니다. 이때 부처님이 제일 먼저 나서서 '내가 깨닫지 못한 나의 허물을 지적하고 비판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조계종 총무원이 자승 원장의 허물을 비판하려는 적광 스님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잡아서 족쳤습니다. 승복도 벗겼습니다. 종교의 문제 이전에 인간의 인권 문제입니다. 사적 형벌을 금지하는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경찰은 폭력을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고 방조 묵인했습니다. 종단 적폐를 촛불 정신으로 청산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적광 스님 후원모임은 앞으로 치료비를 위한 모금과 소송 지원 등을 할 예정이다.
적광 스님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우리 불교,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종교는 종교다워야 합니다. 성직자가 신도들의 아픔을 보살피고 신도들과 함께하는 게 종교인데 불교계는 일부의 일탈된 세력들이 성직자의 본분을 버리고 범계 행위를 저지르며 사유재산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불교계의 적폐죠. 이걸 드러내고 불태워야 할 자승 총무원장은 전국의 사찰을 자기 정치 세력으로 만들어서 미래가 암담합니다.
불교 수장이 부처님의 법에서 일탈한 것도 문제인데, 행동하는 승려가 없습니다. 하나둘씩 모이면 모두 이런 불교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이걸 고치려는 승려가 없습니다. 그나마 최근 재가자(불교 신도)들이 불교 적폐를 없애려고 행동에 나서고 있는데, 이게 희망입니다."
심한 우울증을 앓는 그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4년 전의 기억을 들고 나온 것은 재가자들이 만드는 희망에 한 점 보태기 위해서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지만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촛불 한 개 들고 싶다는 뜻이다. 그가 힘겹게 다시 시작한 심판을 응원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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