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이 놓쳐서는 안 될 윤석열 검찰총장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19일 조선일보에 실린 양상훈 주필의 칼럼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2024년 총선 직전 친윤 핵심 정치인이 “총선을 치르려면 김건희 여사 특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특검을 수용하되 특검 수사는 총선 이후로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이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 같은 방안을 언급하자 윤석열이 격분해 이른바 ‘총선 후 특검 수용론’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칼럼에 의하면 윤석열은 이후 김건희 특검에 대해 ‘특검을 수용하면 온갖 것을 다 파헤쳐서 일이 더 커진다’는 취지의 논리를 들며 주변에 완강한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은 얘기지만, 이게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당시 ‘총선 후 특검 수용론’의 판을 깐 게 다름 아닌 조선일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회고해보자.
총선을 앞둔 2023년 말, 인요한 혁신위가 친윤 불출마 혹은 2선 후퇴론을 들고 나오면서 국민의힘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일각에선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직계 인사를 여의도에 대거 진출시켜 국민의힘을 완전히 ‘윤석열당’으로 만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할 것이고, 이를 위해 친윤 주류의 주요 정치인들에게 지역구를 비워 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여의도 호사가들은 이런 식으로 국회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윤석열 군단’이 거의 50명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친윤 주류 정치인들이 순순히 희생을 택할 리는 만무했기 때문에 혼란은 지속되었고 결국 전당대회에서 친윤의 힘으로 당선됐던 김기현 대표는 우왕좌왕 좌충우돌 끝에 직을 내려 놓아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윤이 만든 거나 다름이 없는 김기현 대표까지 대통령과의 충돌 끝에 낙마했다면, 이제 국민의힘은 누가 이끌어야 한단 말인가?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 당시 TV조선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이 여당의 대표격 인사로 직행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며칠 간 고민하다 그 해 12월 19일 쯤 기자들에게 사실상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의사를 밝혔는데, 문제의 발언은 이때 나왔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독소조항이 들어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선전선동하기 좋은 악법’이라면서도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이 보고 느끼기에도 그래야 한다”고 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원론적 입장 표명에 불과한 이 말에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한 것은 조선일보였다. 다음 날 조선일보의 1면 헤드라인은 <‘총선 후 김건희 특검’ 급부상>이었다. 한동훈 장관의 발언을 ‘독소조항을 없애고 총선 이후에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면 김건희 특검 수용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보도가 한동훈 장관 쪽의 의중인지, 아니면 조선일보의 ‘코치’인지는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번 양상훈 주필의 칼럼 내용은 이미 ‘조건부 수용’이라는 해법 자체는 정권 내에서 논의되던 바 있었고 이 점을 조선일보도 인식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바는 2024년 1월 5일 TV조선의 보도 내용을 봐도 뒷받침 된다. 여기서 TV조선의 기자는 “지난 12월 중순쯤 여권 핵심부에서 이러한 내용들이 검토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친윤 핵심’들도 필요성을 인정한 이 해법에 대한 당시 윤석열의 반응이다. 양상훈 주필의 앞서 칼럼은 윤석열의 ‘격노’를 뒷받침한다. 실제 당시 뉴스1은 윤석열이 ‘격노’했다고 보도했는데, 이후 ‘불쾌감’으로 톤을 조절해 여러 의문을 낳았다. 이는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한동훈 장관이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직후인 그 해 12월 24일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례적으로 정책이 아닌 현안인 김건희 특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 마디로 하자면 특검에 반대한다는 거였다. 다음 날인 12월 25일,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총리 공관에서 당정협의를 열어 ‘조건부 수용을 포함한 김건희 특검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날은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의 취임 하루 전이었다. 즉,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취임하기 전에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김건희 특검과 관련한 조건부 수용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인 12월 28일에는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사임하고 이 자리를 이관섭 정책실장이 메꾸는 일도 있었다. 이관섭 정책실장은 국정기획수석에서 정책실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JTBC는 대통령실의 비서관급 인사가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익히 알려져 있는, 눈발 속 ‘폴더 인사’(2024년 1월 23일)를 통해 갈등이 봉합된 사퇴 압박 시기(2024년 1월 21일)보다도 이른 시점이다. JTBC는 당시를 취임 1주일이 되지 않은 때였다고 했는데, 적어도 2024년 1월 3일 이전에 이미 사퇴 압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른바 ‘김건희 문자 무응답’ 사건은 이로부터 일정 시간이 흐른 후 김건희 씨가 사태 수습을 위해 한 시도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종합하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시에 원론적 차원에서 한 발언이 ‘총선 후 특검 조건부 수용론’으로 해석된 것만으로도 윤석열은 여당의 대표격 인사를 사퇴시키려 하는 등의 비이성적 태도를 그 당시에도 이미 드러냈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입장에선 총선 승리를 위해 모처럼 만든 판이 이런 황당한 이유로 어그러진 것에 대한 분노와 회한이 있을 법 하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심지어 불법적 계엄 선포로 이어졌다면? 양상훈 주필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사건으로 한동훈 전 대표가 위기에 몰렸을 때 일부 언론이 ‘한동훈 전 대표가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라고 보도를 한 예를 들며 “윤 전 대통령 반응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직후 계엄이 터졌다. 김건희 특검법이 계엄의 모든 원인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방아쇠가 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라고 썼다. 조선일보 인사들이 김건희 특검을 불법적 계엄 선포의 핵심 이유로 꼽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겪어서 알기에 할 수 있는 얘기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보면 양상훈 주필 칼럼의 또다른 맥락이 보일 것이다.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선거 패배도 감수할 수 있다. 선거에 패배해도 계엄을 선포하고 장기집권으로 가버라면 그만이다’라는 것은 권위주의-전체주의자가 대통령이라는 직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이다. 이 사람은 검찰총장이었다. 이 시절에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겠는가? 의심되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무엇을 얼마나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김건희 특검의 수사 범위가 실제로 어디까지 미치게 될지는 실제 수사를 진행해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놓칠 수 없는 대목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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