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아닌 구조 바꾸자”…청년, 대한민국을 다시 설계하다
HERI 이슈: 2030이 주도한 연속 정책토론회
정은주기자
수정 2025-06-09 07:15등록 2025-06-09 06:00
2030세대가 주도하는 ‘다시 만드는 대한민국’ 토론회가 더불어민주당 진짜 대한민국 선대위 국가미래정책위원회 주최로 지난달 19일부터 27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6차례 열렸다. 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분야를 △여성안전 △군과 안보 △주거 △교육 △외교·평화 △저출생 등 6개로 나누고, 각 분야를 직접 경험한 청년들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존 청년 담론이 경제적 어려움 등 결과적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번 토론회는 사회 구조적 문제와 패러다임 전환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한겨레는 ‘다시 만드는 대한민국’ 연속토론회에서 발표한 패널 6명과 기획자를 인터뷰해 이 시대 청년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과제를 정리했다.
“여성 안전은 기초적 권리…성범죄 생태계 없애야”
여성 안전 분야 토론회에서 이화여대 대학원생(사회학) 유하영(27)씨는 “20~30대 여성들이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불안이 크다”며, 디지털 성범죄 관련 플랫폼 운영자·소비자까지 형사처벌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연구소 인턴 시절 겪은 디지털 스토킹 피해 경험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깊이 인지하게 됐다. 그는 “현행 제도는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이 협소하고 처벌 기준도 높아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며, 피해자 지원 확대와 근본적 예방책, 그리고 강력한 생태계 차단 대책을 정부에 촉구했다.
―피해자 보호에 있어 보완할 점은.
“피해자 보호를 넘어서 회복까지 나아가야 한다. 상담, 법률,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해야 하며, 피해 경험을 이야기할 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예방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젠더 감수성 교육과 사법부 훈련, 남성 커뮤니티 내 혐오 콘텐츠 감수 체계 강화 등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단순한 장난이나 실수가 아니라, 성범죄가 중대한 범죄임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점은.
“여성 안전은 가장 기초적인 권리다. 이재명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피해자 회복에 실질적이고 강력한 정책을 펼치길 기대한다. 단순한 감시나 삭제를 넘어서, 성범죄 생태계 자체를 차단하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군 초급간부 지원 급락…처우 개선 시급”
군·안보 분야 토론회에서 ‘경기청년랩’ 대표 이중민(36)씨는 최근 군 초급 간부 지원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정책적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지원율 하락으로 우수 인재 선발이 어려워지고, 군 조직의 신뢰도 저하 및 사회적 인식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군 초급 간부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초급 간부란 보통 소위부터 대위, 하사·중사 등 1~5년 차의 군 간부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육군3사관학교나 학군장교(ROTC) 등 비육사 장교 임관 과정, 부사관 시험 등 다양한 경로로 임관하며, 군의 실무를 담당하고 현장에서 병사를 직접 통솔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이씨는 육군 3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초급 간부로 군 생활을 했다.
―최근 초급 간부 지원율은.
“2014년 학사장교 지원율은 6대 1이었지만, 2023년에는 2.39대 1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부사관 지원자도 5년 새 50% 넘게 줄었다.”
―지원율 하락한 이유는.
“일반 병사 월급은 2013년 13만 원에서 현재 205만원으로 10배 이상 올랐지만, 하사 월급은 95만원에서 117만 원으로 소폭 인상에 그쳤다. 하사보다 병장이 더 많이 받는 역전 현상이 생긴 것이다. 학사장교의 실수령액은 260만원 안팎이지만, 세금과 4대 보험료를 빼면 병장 월급과 실질 차이가 없다. 반면 복무 기간은 학사장교가 병사보다 10개월 이상 더 길다.”
―처우 개선 방안은.
“진급을 못 해도 우수한 간부가 장기 복무할 수 있도록 진급 제도와 계급 직책 등 군 체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또 초급 간부가 사회에 나와도 경쟁력이 있도록, 복무 경험이 취업 등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복무 기간에 따른 군 가산점제를 논의해봐야 한다.”
“전세 사기는 개인 부주의가 아닌 시스템의 실패”
주거 분야 토론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인 안산하(28)씨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1동 신축 빌라에 전세로 입주했다가 집주인 파산으로 보증금을 잃게 된 사례를 공개하며, 현행 전세 사기 특별법의 구제 사각지대와 금융·중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전세 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이자 사회적 재난”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선구제 후구상 청구’ 등 실질적 대책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6월 현재 특별법 인정 3만400명) 75% 이상이 20~30대이며, 사망자만 9명에 이른다. 단일 부동산 사기 사건 가운데 역대 최다 인명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를 어떻게 겪게 됐나.
“지난해 12월 영등포구 대림1동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받아 계약했고, 1월에 입주했는데 한 달 만에 집주인이 파산을 선언했다. 집 전체에 14억 원의 근저당이 잡혀 있었고, 23가구가 피해를 보았다. 내 전세금은 1억2500만원이다.”
―피해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느꼈나.
“공인중개사가 건물 시세와 임대인 정보를 속였다. 은행도 임대인의 재정 파악 등 대출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는 세무사와 함께 등기부 등본도 확인했지만, 제공된 정보만으로는 위험을 알기 어려웠다. 피해자 책임으로만 돌리는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내가 더 꼼꼼히 알아봤어야 하나’ 자책했지만, 이제는 더는 나를 탓하고 싶지 않다.”
―전세 사기 특별법의 한계는.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임대인의 ‘의도적 기망’을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실질적 구제가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 지원은 실제 집행률이 3%대에 불과하고, 무이자 상환도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피해자로 인정받더라도 50만원씩 20년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실효적인 예방과 구제 대안이 절실하다 ”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점은.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과 함께, 금융·중개 시스템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억대 빚을 떠안고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전세 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대학의 위기, 국가경쟁력의 위기”
교육 분야 토론회에서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 이우창(39)씨는 “한국 대학 정책이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에만 매몰돼, 대학의 질적 성장과 연구 인재 육성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외면해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처럼 인재가 대학원을 떠나고 연구가 위축되는 구조가 지속하면, 20~30년 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심각하게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의 질적 성장이 왜 중요한가.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와 인재 양성의 핵심 공간이다. 고등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자가 줄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성장동력과 혁신역량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대학원과 연구자 지원의 현실은.
“등록금 동결 이후 대학들은 신규 교수 채용을 줄이고, 대학원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 대학원생들은 연구보조, 행정, 아르바이트 등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고, 박사 후 연구원은 물론 이공계조차 대학원 진학을 꺼리는 상황이다. 유능한 인재들은 해외로 떠나는데, 한국에서는 연구자로 성장할 경로와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의 재정지원과 생애주기별 연구자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를 방치하면, 한국 사회 전체의 역량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점은.
“고등교육 재정교부금 등 안정적 재정확보 장치를 마련해 대학이 장기적 관점에서 인재를 유치·육성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원과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국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와 인재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영 논리에 ‘탈북’하는 북한 전문가들”
외교·평화 분야 토론회에서 ‘한반도청년미래포럼’ 국내지부 대표 박준규(32)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180도 달라지고, 이로 인해 국민 여론이 분열된다”며, “이런 반복이 청년 세대까지 전이되어 통일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영 논리가 미치는 영향은.
“남북문제는 본래 객관적 사실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보수는 친일파’, ‘진보는 빨갱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이 만연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널뛰고, 국민들도 진영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실무 인재들이 현장을 떠나는데 북한 분야를 떠난다는 의미로 ‘탈북’이라고 말한다.”
―왜 현장을 떠나나.
“진보·보수 진영 논리에 휘말려,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학계·연구기관에서 일하기 어렵다. 북한학과 통일연구기관 출신 인재들이 갈곳이 없어 헤매거나 생계를 위해서 전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책의 지속성과 실행력을 높이려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된 대북·통일 정책을 법제화·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세대 교체가 절실하다. 기성세대는 정치나 이념이 다르면 소통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경직돼 있다. 사고의 유연성을 갖춘 2030세대 젊은 인재들이 대거 유입돼야 한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스템을 구축해 실무자·연구자·활동가가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남북관계가 필요한가.
“이념 기반 남북관계의 시대는 끝났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장점을 추출해 시행착오를 학습하고, 일관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구도가 필요하다.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과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육아수당을 지역화폐로…두마리 토끼 잡았다”
저출생 분야에서 강진군의회 의원 노두섭(40)씨는 강진군이 육아 수당 정책을 도입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한 사례를 소개했다. 강진군 육아수당 조례는 노씨의 주도로 2022년 10월에 제정됐다. 핵심 내용은 자녀 수와 상관없이 출생아 1명당 매달 60만 원씩, 만 7살(84개월)까지 총 504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이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강진군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지역 화폐(모바일 강진사랑 상품권)로 지급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했다.
―육아수당 정책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나도 아이를 키워봐서 알지만, 부모들이 처음 아이를 낳을 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 국가가 실질적으로 지원해주면 아이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지역화폐로는 아동에게 필요한 물품 구입이 어렵다는 불만이 컸다. 학부모들이 ‘강진군에서 유모차를 팔지 않는데 지역화폐로 어떻게 사냐’고 항의했다. 토론회와 공청회를 수차례 거치고, 반대하는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설득했다.”
―정책 시행 이후 변화는.
“정책 시행 3년 만에 출생률이 전국 2위까지 올랐다. 2022년 93명이던 출생아 수가 2023년 154명, 2024년 170명으로 급증했고, 둘째 이상 자녀를 낳는 가정이 크게 늘어 다자녀 출산 비율이 50%에 달했다. 강진군으로 전입하는 가정도 많아져 인구 유입 효과까지 나타났다.”
―강진군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고, 지역경제까지 살린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18살 미만까지 확대하고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하되 지방에서부터 먼저 시행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점은.
“부모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지역에 필요하다. 아이가 시골에 살아도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비교해 부족함이 없도록, 문화공연·교육·의료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주길 바란다.”
“2030세대는 내 편, 네 편 아니다”
‘다시 만드는 대한민국’ 토론회를 기획한 ‘다시 만드는 세상’ 대표 봉한나(32)씨는 “12.3 내란 이후 민주주의와 시민의 삶이 크게 흔들”린 뒤 “이념이나 당파를 떠나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각자의 전문성과 식견으로 새로운 나라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시 만드는 세상’은 정책 제안에서 입법과 실행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밸류 체인’을 설계해 정책을 실질적 변화로 이끄는 시민 참여 정책 플랫폼이다. 청년 정치인인 봉씨와 경제·정책 전문가인 이원재씨가 공동운영한다.
―토론회에서 발견한 긍정적인 점.
“20명 미만의 소규모로 진행했지만, 대부분의 토론회가 시간을 넘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20·30세대는 이기적인 세대가 아니라, 나라 걱정을 많이 하며, 단순히 수혜자가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끌 주체임을 확인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토론했다. ”
―20·30세대와 기성세대의 정치 인식 차이는.
“기성세대는 특정 정치인이나 그의 서사에 자신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바라보지만, 2030세대는 정책과 이슈별로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 기성세대는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피아 식별’ 문화가 강한데 반해 2030은 훨씬 유연하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점.
“변화한 시대와 삶에 맞는 구조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창조적 혁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와 젊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해 새로운 정책 실험에 나서야 한다.”
글 정은주 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사진 봉한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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