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을 한다고요?] 산불은 끝났지만, 삶은 타들어간다

 


기후재난에 맞서는 '회복의 서사' 필요

  •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10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어촌마을이 산불에 파괴돼 있다. 주민들은 산불이 마을을 덮치던날 해경선을 타고 바

    다로 대피했다.2피해액 1조 818억 원, 83명의 인명 피해에 10만4000 헥타르(ha) 산림 훼손.

    지난 5월 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봄에 발생한 영남 지역 초대형 산불 피해액을 이렇게 밝혔다. 1987년 공식 통계 이후 최대치다. 정부는 그동안 농작물 보상에서 제외되었던 산림작물을 포함시키고, 특별재난지역 8개 시군에 대한 국세 납부 유예 및 국민건강보험료 경감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의 발표만 보면 산불 진화 후 피해 현황 파악에 따른 보상이 단계별로 잘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고령화지역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대형 산불의 피해는 이제 없던 일처럼 잘 수습되고 있는 게 맞을까?
     
    재난회복 시스템은 왜 '삶터 회복'을 담지 못하나

    기존 재난 대응 체계에서는 산불 진압 후 보상이 끝나면 종료되는 시스템이었다. 피해를 계산하고 지원한 양만큼 복구가 되면 완료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영남 산불에는 이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최악의 산불이었다는 2022년 동해안 산불에 비해서 피해 주택 수는 10배, 피해 주민 수는 100배에 달할 만큼 사회적 피해가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남 산불로 주택 3,848채, 농어업시설 6,106곳이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 수만 명 주민이 일상과 공동체를 잃고, 장기적인 불안과 고립 속에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일단 피해 지원 상황부터 살펴보면 재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삶을 제대로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주택 피해 지원은 기존보다 상향된 금액이 지급될 예정이지만, 피해액 산정 기준이 획일화되어 실제 피해만큼 지원받지 못하기도 한다. 농업의 경우도 100% 실비로 보상을 하겠다고 하지만, 과수 농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3-4년이 필요한데 그 기간 동안의 생활자금 지원이나 소득보전 방안이 없기 때문에 막막할 뿐이다. 농기계, 창고는 이미 빚을 내고 소유했던 경우가 많은데, 저리 융자 방식으로만 지원되기 때문에 추가 빚을 져야만 한다. 귀농인들은 주택을 빌려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임차인들에게는 주택 피해 지원이 없다. 산불 발생 당시 남을 돕다가 다친 경우는 아직도 화상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주택이 반파 또는 전소된 주민들은 지금 대부분 임시주거단지에 머무르고 있다. '선진이동주택'으로 명명된 이곳은 긴급 대피했던 체육관보다는 나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1~2년을 머물러야 할 것을 생각하면 최선의 주거 시설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색없이 모두 똑같은 공간에다가 12평정도로 협소하다. 마을회관 같은 커뮤니티 공간이 없어서 이웃들과 아픔을 나누거나 애도할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없어서 고립감이 더 커진다. 주민의 상당수는 "불확실한 1년짜리 거처"에 묶여 미래를 계획하기 힘들다.

    행정안전부가 과거 산불 피해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2024년), 발생 2년이 지났어도 피해자의 95.7%가 경제적 회복이 되지 않았고, 54.3%는 정부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산불이 다른 재난에 비해서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피해 회복지원이 부실하면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해지고 정치적 신뢰도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의 신속 복구 지원 방식과 구조 자체가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할 때다. 지원 대상으로만 여기고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산불은 사회가 만든 재난이다
    회복의 서사를 쓰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


    이번 산불은 단순히 ‘불이 나서 피해를 입었다’는 자연재해 사건이 아니다. 기후위기, 빈곤·고령화·지방소멸, 행정 공백, 피해자의 소외가 얽힌 복합 사회재난이다. 따라서 신속한 외형 복구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회복'은 그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행정과 정치에 요구되는 과제는 명확하다. 삶터 회복을 위한 서사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이를 실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택을 피해액에 따라 산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존에 마을 주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대감이 되살아나거나, 더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갑자기 통장에 입금된 보상금이 무슨 내역으로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영문도 모른 채 받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이웃 간의 갈등만 부추기게 된다. 정보권과 참여권은 기본 중의 기본일 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 유통으로 지역사회의 갈등이 조장될 여지도 커진다. 보상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보이지 않게 마을에 스며들어서 공동체로서의 분열을 조장할 위험성을 키운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의 경우, 비용이 더 들더라도 더 안전하게 복구한다는 기준을 세운 바 있다. 도로, 의료·돌봄, 교육, 주거, 커뮤니티 공간을 통합 설계하면서 산불방어공간을 설정한다. 인구 2만 명 정도의 캘리포니아 파라다이스 마을은 2008년, 2018년 두 번의 산불 이후 내화성 건축 기준을 강화하고 공공임대 주택을 설계하고, 계층별 주거 모델을 도입하는 등의 포용적 모델을 주민이 주도해서 만들어냈다. 이런 주택은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는 노력까지 병행되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정착률은 높지 않은 것을 보면, 산불 이후 지속가능한 정주 여건을 만드는 일은 도전적인 과제임이 분명하다. 

    세계적 추세가 그렇듯이 국내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피해가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이번 영남 산불은 평년 대비 높은 온도, 30% 이상 줄어든 강수량, 강해진 바람 등의 영향을 받았다. 점차 산불은 잦아지고, 대형화되고 있다. 2019년 호주 산불이 ‘기후행동을 촉발하는 전환점’이 되었던 것처럼, 영남 산불이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촉발점이 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미 기후변화의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만큼, 적응적 관점이 중요해졌다. 적응이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줄이고 회복력을 높이는 것으로,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공공과 공동체가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재건(회복)'을 목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개인이 빚을 지고 주택을 짓고, 농기계를 사들이는 방식 말고도 기본소득을 도입하거나, 농기계를 공유하는 일이 활성화되거나 사회주택이 도입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큰일의 시작에는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모으는 이야기 모임이나 글쓰기가 있을 수도 있다.

    산불 피해지역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초등학교 앞 부지에 21일 경북도가 지원한 모듈러 주택 40동이 설치되고 있다. 2025.5.21 ⓒ뉴스1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이 한 마을의 임시주거단지에서 머무르는 주민들과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연세가 꽤 있는 주민분에게 까맣게 타버린 앞산을 가리키면서 매일 그 현장을 보는 마음이 어떤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민은 덤덤한 말투로 "그래도 자세히 보면 매일매일 초록이 싹트고 있다"고 답했다. 이 마을에도 초록이 싹틸 수 있는 회복적 관점이 도입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것은, 불길은 꺼졌지만, 파괴된 삶터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025.04.10 ⓒ뉴시스
  •  
  • 발행 2025-06-19 08:29:07





     
    • “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 응원하기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전쟁은 안된다.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