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 후방기지? 윤석열 정부가 국민 몰래 한 일
[강명구의 뉴욕 직설] 12·3 비상계엄 혼란 속 통과된 미 국방수권법 뜯어 보니... 2~3개월 내 중대 결정해야
25.06.27 06:58ㅣ최종 업데이트 25.06.27 06:58
"2024년 국방수권법 제842조 (h)항 (2)에 규정된 '대상 국가' 목록에 (B)항 다음에 '(C) 일본', (D)항 다음에 '(E) 대한민국'을 각각 추가한다."
지난해 12월, 우리 사회가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미국에서 통과된 2025 국방수권법(NDAA 2025) 제821조의 전문이다. 지난 6개월간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해당 조항의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제842조 (h)항 (2)는 2024년 국방수권법으로 신설된 '경쟁적 군수지원 시범·시제품 개발 프로그램'의 대상국 목록을 말한다. 기존에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을 새로 추가한 것이다.
'경쟁적 군수지원'(Contested Logistics)이란 적의 방해가 예상되는 분쟁 상황에서도 미군이 필요한 탄약, 연료,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다. 쉽게 말해 한국과 일본의 항만과 기지를 미군의 분산 보급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한 줄짜리 조항이지만, 우리나라 안보에 미칠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관련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관계 부처에서 준비하고 있겠지만, 미 국방부가 올해 9월까지 이행계획을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진지한 검토와 사회적 토론이 시급하다.
국방수권법 제821조의 전략적 의미
미국의 2025 국방수권법 제821조는 언뜻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조항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에게 일어날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은 이미 호주, 영국, 캐나다와 함께 '경쟁적 군수지원'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호주 다윈항이다. 2022년부터 건설 중인 이곳 연료기지는 11기의 대형 탱크에 군용 항공유 3억 리터를 비축할 수 있다. 대만 유사시 미 공군의 후방 보급 허브로 설계된 이 시설에서는 B-52 전략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의 순환 배치를 뒷받침하는 실전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는 현지 전투 장비 수리가 가능한 '전장 정비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전면전 시에도 병력을 후방으로 철수시키지 않고 인근 제3국에서 무기와 차량을 수리해 재투입하는 분산 정비 개념이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군수 물자의 사이버, 물리 보호 체계와 분산 운송망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전시에도 연료와 탄약, 예비 부품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이미 가동 중인 '후방 군수 네트워크'에 우리나라와 일본을 공식 편입시키겠다고 법에 명시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 협력이 아니라 미군 전시 작전 인프라에 우리가 직접 들어가게 됐다는 뜻이다.
이 조항이 국방수권법에 포함된 것은 미 의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이 급속히 강화된 배경이 있다.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에서 핵협의그룹(NCG) 창설에 합의했고,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는 "새로운 수준의 안보협력"을 천명했다.
이 과정에서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연합훈련 확대, 방산기술 협력 등이 구체화되었고, 결국 미국 의회는 국방수권법 제821조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을 경쟁적 군수지원 네트워크에 공식 편입시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다시 말해, 이 조항은 단순한 법률 조문이 아니라 지난 2년간 한미 정부 간 긴밀한 협의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런 중대한 변화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조항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뀔까? 예를 들어 부산, 포항, 목포 같은 항만은 미군이 탄약이나 연료를 보급받는 주요 거점이 될 수 있고, 김해공항에는 미군 항공기의 정비 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창원이나 대전에는 미사일을 조립하거나 점검하는 설비가 생길 수도 있다.
단순히 우리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시설만이 아니다.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우리 항만과 공항이 미군의 작전 출발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쟁이 우리 땅에서 시작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미군의 '전진 보급 기지'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호주 모델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특히 호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호주는 2022년부터 다윈항에 3억 리터 규모 항공유 저장기지 '프로젝트 케이머스'를 건설하면서 '위험은 분담하고, 이익은 챙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비용 분담부터 달랐다. 총사업비 2억 7000만 달러 가운데 50%는 미국 국방예산이, 나머지 50%는 호주 북부개발기금과 민간 컨소시엄이 부담했다. 단순히 땅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절반의 현금을 투자하도록 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간 4억 달러 규모의 시설 유지·정비(MRO) 서비스를 호주 업체가 독점하도록 계약에 명문화한 점이다.
공론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2022년 호주 언론이 "대만 유사시 다윈이 미군 전구 보급소가 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보도했지만, 정부는 이를 회피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효과와 동맹 강화"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적극 대응했다. 연방정부는 "인프라 투자 1달러마다 지역경제 파급 2.4달러"라는 구체적인 경제성 분석을 공개해 여론을 선점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안보 이슈를 은밀하게 처리하려 할수록 국민의 의구심과 반발만 커진다. 차라리 투명하게 공개하되 경제적 이익과 안보적 필요성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교훈이다. 호주 정부는 위험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명확히 제시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운영 방식에서도 실질적 통제권을 확보했다. 다윈항 연료기지는 미군 단독 시설이 아니라 호주-미국 합동관리위원회가 운영하며, 호주의 동의 없이는 연료를 반출할 수 없다. 형식적으로는 미군 시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호주가 통제권을 유지하는 구조다.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및 전략 환경은 호주와 분명 다르다. 그래서 고려해야 할 내용도 다르고, 전략적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처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시험대
미국의 국방수권법 제821조는 우리에게 양면성을 갖는다. 한미 간 투자형 방위비 분담, 첨단 무기 공동생산, 항만 인프라 현대화 등의 기회가 있는 반면, 중국의 경제 보복, 의도하지 않은 분쟁 연루, 신북방 정책과의 충돌 등 위험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선택지가 '찬성 아니면 반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주는 미군 기지를 받아들이되 건설비를 미국이 절반 부담하도록 협상했다. 미국의 국방수권법 제821조 참여를 전면 거부하면 우리만 소외될 수 있고, 무턱대고 받아들이면 다른 나라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조건부, 단계적 참여를 검토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내세우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를 공언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념적 접근이나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론 같은 거대담론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얻을 이익과 떠안을 위험을 전략적으로 계산해 명확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시급성이다. 9월 20일 이전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이행계획을 제출하면, 그 안에 우리의 조건이 담겨야 협상력이 유지된다. 관련 부처에서 내부 분석이 진행되고 있겠지만,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면 공개 설명과 사회적 토론이 병행돼야 한다. 호주처럼 투명성과 조건 협상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면서 실익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가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고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이번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실용외교의 진가가 발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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