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에게 할 말이 생겼습니다”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박성호 방송기자연[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방송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방송3법 가운데 남은 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을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이로써 방송계와 시민사회의 숙원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절차가 완료될 전망이다.



방송법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 이용마 MBC 기자다. 그는 6년 전인 2019년 8월 21일 복막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일에 방문진법 개정안이 상정, 처리될 예정이다. 이용마 기자는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노조 홍보국장으로 투쟁을 주도하다 부당해고를 당했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힘썼다. 이 기자와 함께 해직되었던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이번 방송3법 통과 과정을 어떻게 봤을까. 지난 14일 박 회장과 전화 연결해 방송3법 관련 내용과 소회를 들어봤다. 다음은 박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MBC 스트레이트 보도화면 갈무리)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MBC 스트레이트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5일 방송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동료였던 고 이용마 기자의 유지였죠.

“제가 방송법 통과에 집중한 데에는 직능단체장으로서의 책무도 있지만, 고인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이용마 기자와의 마지막 만남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2018년 말에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 나서 출국 직전에 분당 집에 찾아가서 단둘이 대화를 나눴었거든요. 그때 3년 임기 마치고 와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고 했더니 고인이 현실적인 얘기를 하라며 손을 젓더라고요. 그러더니 자기가 제안했던 ‘시민의 손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것, 방송법이 바뀌는 걸 꼭 보고 싶었대요. 자기가 혹시 그런 날을 못 보면 방송법이 바뀔 수 있도록 관심 잃지 말아달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 이용마 기자는 공영방송 사장 선출에서 정치권이 완전히 손을 떼야 된다는 입장이었었고, 저는 그렇게 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실현 가능하겠냐는 의문을 가졌어요. 어찌 됐든 이번 입법 과정에서 저도 국회 비중을 낮추는 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그런 부분이 최종안에 반영돼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곧 다가올 기일에 가서 이용마 기자에게 할 말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용마 기자가 제안했던 안과 이번 개정안은 차이가 있나요?

“이용마 기자는 국민 대리인단 만들어서 100% 시민의 손으로 뽑자는 안이었거든요. 그게 이번에 사장 추천위에 반영돼 있습니다. 다만 지금 방송법은 시민 참여가 중간단계로 들어간 것이죠.”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선공개 영상 (사진제공=MBC)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선공개 영상 (사진제공=MBC)

이번 개정안의 사장 추천위원회 구성과 이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전 구조와 달리 상당히 개방된 것이죠. 신입사원 선발로 예를 들면 앞단계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일반 국민참여형으로 콘테스트 하는 방식을 거쳐 올라오면 이사회가 최종 선출하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이전 이사회는 굉장히 단일한 성격이었잖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로 이사회가 구성됩니다. 그런 점이 차이가 있죠.”

문재인 정부에서 공영방송 사장 선출 때 국민 면접 같은 절차를 거쳤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것과 사추위는 다른 건가요?

“이전에도 MBC, KBS 같은 경우에 국민 면접 과정이 시행됐고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라고 봐요. 다만 그전에는 이 절차가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았잖아요. 국민 면접 제도라는 것은 당시 방문진이나 KBS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도입해서 시행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용마 기자가 제안했던 시민참여형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걸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번 개정안은 사추위가 법제화되었단 점에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이전 국민 면접 제도는 정권 바뀌고 또 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집권할 경우에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이번에 법에 명시해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게 MBC, KBS에만 부분적으로 시행되던 것인데 이번 개정안을 통해 보도전문채널 같은 데도 확대 적용되잖아요. 보도라는 공적책무를 수행하는 방송사는 국민들에게 사장 선출 과정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법제화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지난달 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복원 위한 방송3법 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긴급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지난달 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복원 위한 방송3법 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긴급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후 민영방송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번에 민영방송은 포함이 안 됐죠. 민영방송의 지배구조 문제라 고려를 했던 것 같은데요. 제도가 잘 정착돼서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놓는 것 같다 싶으면 민영방송 내부에서도 종사자들의 요구가 나올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해 그동안 언론계가 주장했던 핵심은 정치 후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번 개정안에 국회 추천 비중이 40%인데, 조능희 전 MBC 플러스 사장은 정치권 아닌 여권이 중요하고 20% 정도라 잘된 거라고 평가하던데.

“그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왜냐하면 정치권 추천 비중을 줄이자는 것은 곧 집권 세력의 개입 정도를 줄이자는 의미이고, 그 목소리가 반영됐던 논의라고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여당이 개입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든 건 맞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집권하자마자 여당이 법안을 처리해 다행이라고 봅니다.

물론 학자들 지적대로 숙의가 중요하고 토론 과정도 더 열렸으면 좋았겠지만, 정치·경제적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그럴 경우 방송법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거든요. 게다가 어떤 권력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받다 보면 공영방송이 왜 자기편 안 들어주냐며 지금 상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조기에 처리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앞으로 달라진 추천 주체들이 공적 책무와 사명감을 갖고 정치 논리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여전히 추천 단체가 정치권의 영향 받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아직은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이잖아요. 이제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텐데 본인들의 사명감과 식견에 따라서 고민하고 잘 결정하리라고 기대해보는 것이죠.”

2024년 7월 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송장악법 거부 피켓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024년 7월 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송장악법 거부 피켓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통과됐는데.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 가장 좋죠.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상대방인 국민의힘이 지난해 방송법 논의 과정에서 사실상 반대로 일관했잖아요. 그 반대도 자신들의 입장을 내놓고 ‘우리 의견은 이렇게 다르다’는 반대가 아니라 아무런 안도 내놓지 않고 무조건 반대했고,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잇달아 거부권을 행사했어요.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어떠한 개정 노력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합의 처리를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합의가 안 돼서 아쉬운 게 아니라, 의회의 한 축인 야당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점이 아쉬운 거죠.”

국민의힘은 왜 아무런 안을 내놓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의도는 제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표명하는 입장과 발언을 보면, 지금 나와 있는 법안도 추천 주체를 다양화했다기보다 노조가 장악하는 식의 새판짜기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어서 아예 세부적인 논의를 안 하겠다는 입장 같아요.”

이번 방송법 개정안이 공개된 후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논란이 불거졌어요. MBC 본사와 KBS, 보도전문 채널만 적용하게 한 건 어떻게 보세요?

“그 부분은 입법 과정에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현장의 우려와 목소리가 국회에도 잘 전달돼서 법 개정 등 손질에 나선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이 문제는 좀 넓혀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 방송사나 민방을 제외한 게 본질이 아니라 임명동의제 대상이 ‘보도책임자’로만 좁혀진 게 문제라고 생각되거든요.”

지난달 15일 '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의 방송3법 비판 현수막 게재(왼쪽). 지난달 2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용산 대통령실 앞 EBS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  (사진=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 언론노조 EBS지부)
지난달 15일 '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의 방송3법 비판 현수막 게재(왼쪽). 지난달 2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용산 대통령실 앞 EBS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 (사진=공영방송 지역MBC 노동조합연대회의, 언론노조 EBS지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MBC 같은 경우는 보도국장뿐만 아니라 편성국장도 임명동의 대상이에요. 그리고 지역 MBC 같은 경우 지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편성·경영국장도 임명동의제의 대상이거든요. 그러니까 MBC 같은 곳은 보도 이외 두세 개의 주요 보직자들을 임명동의 대상으로 삼아서 시행하고 있는데 이번 법안에서 보도로 좁혀진 거예요.

임명동의 대상의 범위가 좁아진 건데, 문제를 달리 보면 더 강력한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기도 해요. 지금 새로운 법에는 노사가 편성위원회를 구성해서 편성규약을 제정하고, 그걸 사측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됐어요. 그것이 갖는 의미가 간단치 않거든요.

노사가 합의해서 임명동의제를 편성규약에 집어넣으면 사측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형사 처벌이 될 수 있습니다. 편성규약에 임명동의제 보완 부분을 집어넣어서 더 강력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고, 그렇게 되면 내부적으로 공정성 강화를 위한 장치가 마련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방송법 개정안 통과로 방송독립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제도가 부실하면 답이 없지만 제도를 완비한다고 해도 그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운영의 문제이고 결국 운영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잖아요. 지난해 비상계엄 내란으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휘청거리는 걸 봤죠. 방송3법이 도입된다 해도 앞으로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사를 추천하는 주체들, 이사회 구성원, 그리고 무엇보다 종사자들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절차 마련과 후속 조치가 굉장히 중요하죠. 방송3법 통과로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아요.”

뉴스 앵커 돌연 교체, 박민 KBS 사장 "재창조 수준 개혁" (MBC 뉴스데스크 2023년 11월 13일 보도화면 갈무리
뉴스 앵커 돌연 교체, 박민 KBS 사장 "재창조 수준 개혁" (MBC 뉴스데스크 2023년 11월 13일 보도화면 갈무리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할까요?

“내부적으로는 편성규약을 잘 만들어서 제작 자율성,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할 것 같고요.

외적으로 보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해서 법정제재를 가하며 방송 독립성을 침해하는 심의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방심위라는 심의기구를 통해서 공정성 조항 잣대로 비판적인 방송사들에 대해 정치 심의, 편파 심의, 표적 심의로 언론자유를 위축하고 입 틀어막는 행태를 보였단 말이죠. 이런 심의기구를 통한 강제도 재발되지 않도록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고 생각합니다.”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맡으신 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소회가 어떤가요?

“방송기자연합회장으로서 방송3법 추진을 위해 작년부터 현장에서 다른 단체들과 협력해 목소리를 냈고 그런 노력이 결과를 보게 돼서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물론 EBS와 지역 MBC, SBS 등 여러 회원사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문제 제기하는 점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일단 더 늦지 않게 제도로 확립한 데 의미를 두고 아쉬운 부분은 향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기자뿐만 아니라 PD, 기술인 등등 재직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 지원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 완전히 폐지됐거든요. R&D 예산을 반토막 내면서 방송 현업에 관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거죠. 그래서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꾸준히 지원 필요성을 설명했고, 그것이 최근 들어 복원돼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방송기자연합회가 현직 방송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 ‘저널리즘 아카데미’
방송기자연합회가 현직 방송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 ‘저널리즘 아카데미’

남은 임기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잘 진행되도록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처럼 생성형 AI에 대한 저널리즘 준칙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어요.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관련 대책에 대해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스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언론개혁과 언론계 현안에 대해서 미디어스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적해서 보도하는 걸 잘 보고 있어요. 미디어스 독자분들도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공영방송이 잘되고 안 되고는 시민은 물론, 언론을 감시하는 또 다른 언론들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관심 가져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많이 살펴보고 관심과 비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합회장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