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우리 농(農) 지킬 의무는 없을까?
신동진 공정귀촌
지난번 글 순서에 글을 보내지 못했다. 폭우로 가평군에 수재가 나서 수재 복구 지원을 하다가 더위를 먹었는지 글을 쓸 기력이 없었다. 그때 쓰려고 했던 글이 황대권 선생이 쓴 7월 19일 자 민들레 광장 칼럼 ‘국민개농(國民皆農)’의 뜻을 더 강조하고 넓히고자 하는 글이었다. 그 칼럼이 게재된 날 밤 폭우는 내렸고,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산사태의 참상을 보며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사실 그런 재앙은 아직 내게 닥치지 않았을 뿐이지 국경을 불문하고, 산간과 도시를 불문하고 연례행사처럼 닥치는 것이다. 그 재앙의 강도는 세지고,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국방의 의무‘처럼 ’농사의 의무‘ 주창한 황대권 선생
인류는 이런 재앙적 삶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 속에서 생태적 삶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다시금 절감했다. 이때 ‘국민개농(國民皆農)’ 칼럼을 읽고 크게 공감해 그 후속편을 써보려 했다. 비록 한 달이 지났지만, 처서가 지나도 아직도 폭염을 견뎌야 하는 이 기후 재앙적 현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그 시의성은 여전하다고 생각해 이번 편에 지난번 못 쓴 글을 쓰는 것이다.
황대권 선생은 기후위기 해법으로 ‘국민개농’을 제안하며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만약 우리가 현생 인류와 결별하고 싶지 않다면 대규모 공장식 농업이 아니라 소농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소농 전략은 절대다수의 인구가 농사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면서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그 방법밖에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대규모 단작 농업에 의해 파괴된 지구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그 방법밖에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도시 거주 인구 대부분이 농사를 모르거나 농사짓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국방의 의무’처럼 ‘농사의 의무’를 법에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와 그 뒤에 따라올 식량위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기한 ‘농사의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농(農)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국민의 책무’로 규정한 법이 있다. 바로 「식생활교육지원법」이다.
「제4조(국민의 책무) 국민은 가정, 학교, 지역, 그밖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건전한 식생활 구현에 노력하여야 한다.」
최시형 선생의 ‘식고(食告)’ 떠올리게 한 「식생활교육지원법」 제8조
내가 이 조항을 발견하게 된 것은, 5년 전쯤 ‘공정귀촌’이라는 말을 만들면서 어떻게 전 국민이 생태적, 순환적 삶을 지향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찾을 때였다. 법에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4대 의무 외에 이렇게 분명하게 ‘국민의 책무’를 규정한 법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법은 ‘식생활’을 ‘식품의 생산, 조리, 가공, 식사용구, 상차림, 식습관, 식사 예절, 식품의 선택과 소비 등 음식물의 섭취와 관련된 유ㆍ무형의 활동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니, ‘식품의 생산’에 해당하는 농산어촌의 노동활동도 포함된다. 이 농(農)의 영역까지 포함해서 ‘건전한 식생활 구현’을 ‘국민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국민의 책무’에 따라 추진해야 할 식생활 교육의 방향은 이렇다.
「제8조(식생활에 대한 감사와 이해) 식생활 교육은 국민이 영위하고 있는 식생활이 자연의 혜택과 식생활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이 조항은 “음식을 대하면 반드시 천지에 고하여 그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며, 음식을 대할 때 반드시 천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하라는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식고(食告)’에 대한 말씀을 법조문으로 만든 것 같아 역시 놀라웠다. 내 멋대로 확대 해석을 한다면 위 조항은 해월 선생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경물(敬物)' 사상을 가르치고 배울 것을 의무화한 법 조항처럼 여겨졌다.
농사로 거덜난 지구 생태계, 친환경 식생활로 되돌릴 수 있을까?
황대권 선생은 ‘국민개농’을 해야 하는 근거 중 하나로 이렇게 말했다.
“농사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거짓일 테지만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인자가 농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대규모 단작 농업에 의존한 결과 지구 생태계가 거덜 나고 말았다. 산림과 습지가 파괴되었고 이것은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와 생물다양성 감소, 토양 침식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석유와 화학 비료에 의존한 관행 농업은 수질 오염과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34%가 농식품 산업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식생활교육 지원법」의 13조는 이렇다.
「제13조(환경친화적인 식생활 실천) 식생활 교육은 식품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을 줄이고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식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이 법에 충실하려면 우리나라의 농부들은 ‘대규모 단작 농업’이 아닌 ‘소규모다품종 농업’을 하도록 교육받아야 하고, 소비자들은 탄소발자국을 많이 남기는 수입 농산물이 아닌 지역농산물 적어도 국내 농산물을 소비하는 식생활을 하는 교육을 받고 실천해야 했다. 설령 ‘국민개농’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국민개농’을 통해 이루려 하는 저탄소 배출, 친환경 농업을 장려하고 친환경 식생활을 할 의무가 우리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자연과 모든 사람들의 공이 든 식량을 “반도체, 자동차 팔아서 번 돈으로 수입하면 된다”는 식의 얼빠진 발언은 상상할 수 없는 문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너도 나도 무지한 ‘건전 식생활’, 16년간 잠만 잔 「식생활교육 지원법」
‘국민’인 독자 여러분은 위 법에서 규정하는 바대로 ‘건전한 식생활’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노력’하라는 ‘국민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우리 농산물이 건전하게 생산될 수 있도록, 그런 생산물이 건전하게 소비될 수 있도록 소비자로서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농산물이 자연의 혜택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이 덜 배출된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40여 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쌀 한 톨도 아껴라”던 어른들의 말씀은 굶주렸던 시절 한 맺힌 배고픔에 대한 경계로 비쳤지, 그것이 천지부모(天地父母)가 주신 은혜에 대한 공경의 뜻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귀촌하고 수년이 지나 농사를 조금이라도 짓게 되면서 비로소 식농(食農)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지, 「식생활교육 지원법」의 덕으로 알게 된 것은 아니니 2009년에 입법된 이 법은 지난 16년 동안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마침, 올해는 5년마다 수립하는 <식생활 교육 기본계획>의 4차 계획(2025년~2029년)을 새로 수립하는 해였다. 그 계획서를 살펴보니 내 궁금증을 풀 단초가 조금 보였다. 정부는 지난 3차 계획 기간(2020년~2024년)의 4대 주요과제로 ‘①사람 중심 맞춤형 교육, ②농업과 환경의 공익적 가치 확산, ③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교육, ④지속가능한 식생활 실천 기반 강화’를 추진했다. 내 생각에는 입법한 해부터 주요 과제가 되었어야 할 주제들이 입법 10년이 지나서도 추진과제로 돼있다는 점에서 ‘기본계획’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여하튼 각각 과제들의 추진 상황을 살펴봤다.
10%도 안 되는 교육 대상, 일회성, 연계 부족, 협력 미비
‘①사람 중심 맞춤형 교육’으로 미래세대 식생활 교육을 지원했는데, 그 수가 2024년의 경우 어린이집, 유치원 교육 80,228명, 초·중·고 교육이 42,896명이다. 2024년 어린이집, 유치원생 수가 약 140만 명, 초·중·고 생이 약 513만 명이다. 즉 어린이집, 유치원생의 약 5.7%, 초.중생의 0.8%의 식생활 교육을 지원했다는 얘기다.
‘②농업과 환경의 공익적 가치 확산’과 관련해서는 농촌체험휴양마을, 농촌교육농장, 텃밭 등을 지원, 관리하며 대국민 인식제고를 했는데 스스로 판단하길 “대다수 교육이 일회성에 그쳐, 실천력 향상에는 한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③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교육’ 관련, 역시 자체 평가에서 ‘지역 자원을 활용한 교육 기반과 지역 사회 내 다양한 교육 수요 간 실질적인 연계는 부족한 상황’ ‘지역 내 교육 수요 발굴을 위한 교육 주체 간 협력 체계가 미비하고, 권역별로 활용가능한 교육 공간·강사 인력 등의 체계적인 DB 부재’로 한계를 밝혔다.
‘④지속가능한 식생활 실천 기반 강화’ 관련해서는, 교육 콘텐츠, 온라인 플랫폼, 표준 교재 개발 등의 사업을 했는데, 그 평가는 ‘교육 콘텐츠가 실제 교육이 필요한 현장으로 확산되지 못하였으며,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도 단순 자료 게재에 그쳐 활용도 저조’ ‘전문인력의 체계적인 양성·관리를 위한 제도의 부재로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 비정기적·산발적으로 운영 중’ 이라며 솔직하게 문제점을 밝히고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성인의 식생활 관련 교육 및 체험 경험률은 5.6%로 조사됐다. 내가 식생활교육 지원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은 이 5.6%에 들지 못한 이유였다.
가공식품 먹고 자란 아이들과 “밥은 먹었니?” 인사의 부조화
상황이 이래서야 ‘국민의 책무’ 운운하기에 너무 부끄럽다. 전 국민을 모두 불법자로 만드는 악법이요, 있으나 마나 한 법의 대표적 법이 「식생활교육 지원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니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온갖 화학성분이 들어간 인스턴트 가공식품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그렇게 도시의 가공식품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 어른이 돼 생명의 땅인 농지에 온갖 가공물들을 세우고, 버리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어른들이 만드는 농업 정책이 과연 현장에 착근(着根)할 수 있을 것이며, 만들어진 식생활 문화가 우리의 농(農)을 살릴 수 있겠는가.
우리의 흔한 인사이자 때로는 콧등을 시큰하게 만드는 인사말이 “밥 먹었니?”라는 인사다. 그 밥 인사는 단순히 끼니를 챙겨주는 것 이상의 위안을 준다. ‘세상 무슨 일이 있었어도,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도, 너는 살아야 하고 네가 사는 것을 내가 도와줄게’와 같은 뜻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살림’을 위한 나의 ‘모심’의 뜻을 담은 공생의 의지가 “밥 먹었니?”라는 인사말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밥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자연과 수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밥 한 그릇은 세상 생명의 기운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해월 선생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밥 한 그릇에 담겨 있다(만사지식일완 萬事知食一碗)”라고 말씀하셨으리라고 추측한다. 「식생활교육지원법」이 명실상부하게 지켜져서 온 국민이 밥 한 그릇에서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닫는 ‘국민개농’의 시대를 향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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